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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높이기 위한 산학협력 제도, 학교와 기업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 '취업사관학교'가 된 대학과 기업의 '부당 거래' 취업률 높이기 위한 산학협력 제도, 학교와 기업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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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부에서는 교육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인력개발(기업교육)로 학위를 땄다. 그리고 현재 기업 내 교육담당자로서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끔 각종 학교 관계자들이 산학협력을 제안하며 만나길 원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산학협력을 확대하려는 노력 역시 게을리할 수 없다. 기업으로서도 특정 기업에 특화된 교과목으로 적합한 인재를 육성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없다.

이렇게만 보면 산학협력은 학교와 기업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제도인 듯하다. 그 때문인지, 산학협력은 계약학과 개설 등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확대되고 있다. 나 역시 이제까지는 별 문제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산학협력 확대, 기업의 '책임 떠넘기기'다 

교육을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가정 교육, 학교 교육, 기업 교육이 그것이다. 모두 익숙하고 자주 들어봤던 개념이다. 각 교육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가정 교육의 목적은 기본적인 인성과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고, 학교 교육의 목적은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민주시민을 양성하여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 교육은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산학협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경제의 세 주체는 가계, 국가, 기업이다. 이 세 주체는 저마다 경제활동을 수행하고, 그로 인한 경제적 과실을 공유한다. 경제적 과실을 공유하는 만큼 책임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 중 하나가 바로 각 주체별로 역할에 맞게 미래의 경제 주체가 될 사회구성원을 길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학교 교육의 책임은 국가와 사회의 몫이고, 기업 교육의 책임은 기업의 몫이다. 각 교육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에 필요한 비용은 해당 책임 주체가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산학협력의 확대는 기업이 부담해야 할 교육 비용을 국가와 사회로 떠넘기는 것이 될 수 있다.

보통 대기업의 경우 공개 채용 과정만 몇 달이 걸린다. 그렇게 힘들게 신입사원을 뽑으면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 교육을 하고, 각 현업 부서에 배치한다. 그 이후에는 조직에 빨리 적응하도록 멘토링이나 OJT(On the Job Training)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기업 기준으로 신입사원 한 명을 제대로 키우는 데 억 단위의 비용이 쓰이는 경우도 많다.

산학협력을 활용할 경우,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산학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학교와학과 인원을 우선 선발하게 되면, 채용에서부터 큰 수고를 덜게 된다. 이미 학교를 통해 어느 정도 검증된 인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사 후에 시켜야 할 직무 교육 역시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이미 학교 수업으로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규모 공채가 가능한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이 인재 육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만큼 또 다른 형태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학교에 장학금이나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재 육성을 직접 담당할 때 소요되는 비용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전문계 학교와 각종 전문 대학이나 연구실과의 산학협력 등 모든 산학협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학교가 함께 연구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무분별한 산학협력의 확대 이면에는 인재육성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는 기업과 '어찌 됐든 취업률만 높이자'는 학교의 이해관계도 숨어 있다. 

학생회장과 일반 학생들이 모인 '성신여대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는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구조조정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성신여대생들 학생회장과 일반 학생들이 모인 '성신여대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는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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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취업률 높이자'는 학교도 문제 

다른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교 역시 유지와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학교에 입학할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 기업의 지원금은 학교 운영에 꼭 필요하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교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우선하여 개설하게 된다. 그리고 그 교과목을 담당할 수 있는 교수를 찾게 된다.

기업의 요구사항이 바뀌면 학교의 운영 방향도 바뀐다. 그래야 기업의 지원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 지원금을 받는 학과는 각종 기자재와 시설을 확충한다. 그렇지 못한 학과는 돈이 없어 교육 인프라 개선은 물론, 유능한 교수진 영입 역시 꿈도 꿀 수 없다. 학교는 산학협력을 많이 따오거나 취업 잘 시키는 교수를 우수하게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학문적 역량보다는 기업과의 인맥 형성에 유리한 사람을 전략적으로(?) 초빙하여 교수로 앉힌다.

기업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교과목과 학과는 폐지되거나 통합된다. 학교의 대외협력과 직원은 수시로 기업의 채용담당자나 교육담당자를 찾아다녀야 한다. 학교는 기업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학문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결국 모든 피해는 단기적으로는 학생들에게 가고,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다른 기업의 교육담당자들과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너무 나쁘게만 본다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국가 정책이다. 모든 것을 취업률로만 판단하는 정책이 유지되는 한 학문의 다양성과 자율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예체능 학과를 취업률로 평가하겠다는 생각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가능한 걸까?

지난 3월 2일 치러진 안동대학교 입학식에서 대학의 프라임사업 응모에서 폐과 계획이 있는 음악과 학생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구조조정 백지화하라 지난 3월 2일 치러진 안동대학교 입학식에서 대학의 프라임사업 응모에서 폐과 계획이 있는 음악과 학생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권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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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교든지 홍보 자료에 '취업률 1위', '기업 맞춤형'이라는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취업사관학교'라는 말로 학교를 홍보하기도 한다. 학교가 이제 직업훈련소가 되어간다. 산학협력이 확대되는 만큼 국가와 사회는 학교 교육을 통해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데 투입하는 비용을 줄이고,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지 여기저기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넓은 마음으로 기부금을 '베풀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인재 육성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기업뿐 아니라 다른 경제 주체들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비판없이 수용하게 될 때 여러 이기심이 끼어들고, 그 때문에 망가지는 경우를 우리는 적잖이 경험했다. 그렇기 때문에 산학협력 역시 기업이 경제적 주체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손쉽게 우수 인재를 확보하여 경제적 과실만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지, 국가 역시 학교 교육의 책임을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내용은 구미지역언론협동조합 뉴스풀(newspoole.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기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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