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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니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이 가난이란 단어를 공유했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집만 가난한 것도 몰랐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말과 글을 배우고 어른들이 하는 대화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겨울 농한기에는 농협에서 대출해 주는 영농자금을 받기 위해 동네 사람들끼리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대출금 총액은 정해져 있는데 돈이 필요한 집은 많으니 항상 모자라는 것은 당연했다. 봄이 오기 전에 빌려서 가을에 정부 수매로 벼를 팔아 돈을 갚는 별로 나아질 것 없는 가난의 순환구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매년 학기 초 선생님은 아이들을 상대로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프라이버시 존중은 애당초 없었다. 그냥 모든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해당되는 친구들의 숫자를 선생님이 교무수첩에 기입하는 방식이었다. 부모님 최종학력의 질문에는 대부분 친구들 부모님이 초등학교 중퇴나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전화가 있는 집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컬러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그 숫자가 더 줄어들었고 자동차가 있는 집은 읍내에서 아버지가 '올림픽 낚시점'을 하시는 태환이 한 명이었다.

가난했지만 별로 부족한 것은 없었다. 우리 집에 흑백 텔레비전이 있어도 친구들 대부분이 흑백 텔레비전이었다. 우리 아버지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라도 친구들 아버지 상당수가 같은 초등학교 졸업이고 어떤 분은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으신 분이 계셔서 이 또한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가난이라는 것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 그 절실함을 깨닫는다. 친구들이 생라면을 사서 부셔서 분말 수프를 뿌려먹으면 옆에서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몇 덩이를 얻어먹었다. 요즘은 겨울 패딩으로 부모들의 부를 가늠하고 신분이 정해진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읍내 5일장에서 산 '돕바'라고 불리는 고만고만한 싸구려 외투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부족하고 부러운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책이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우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가난이 대세였던 당시 그 친구네 집은 우리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집이었다. 어느 날 혼자 그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 내 인생 처음으로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2스푼이라는 황금비율의 커피를 마셔 보았다.

하지만 처음 경험했던 커피의 맛보다 놀랐던 것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학년별 새로운 동아전과와 위인전, 세계명작동화들이었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안중근> 위인전을 몰래 빼서 봤다. 몇 페이지 읽었다. 친구가 돌아왔다. 그냥 조용히 책장에 꽂았다. 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불쌍한 눈으로 연기하며 생라면을 얻어먹던 내가 책을 빌려달라는 목소리는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우현이보다 내가 공부를 조금 더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책 없이도 내가 더 공부를 잘한다는 사나이의 자존심이었을까?

요즘은 아기들 돌만 지나도 집에 넘쳐나는 흔한 책이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난 책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활자로 된 문서는 그냥 모두 읽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달되었던 농민신문, 누나들 사회 교과서, 전과 중간중간에 있던 옛날 이야기까지 배가 고픈 것이 아니고 책이 고팠다.

그나마 빨리 읽지 않으면 변소 화장지 대용으로 그 용도가 변경되기 때문에 새로운 인쇄매체가 있으면 재빨리 읽었다. 교과서 읽는 것도 재미있었고 방학이 되면 나누어 주던 탐구생활은 몇 시간 안에 다 읽어 버렸다. 하지만 그 책의 갈증은 풀지 못하고 시간은 흘렀다.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갈수록 그 책이 고팠던 소년은 그저 평범한 청소년이 되었다.

거실 책장
 거실 책장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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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거실에 있는 책장을 봤다. 애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내와 내가 읽는 책들로 가득 차 있던 책장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내 책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딸아이의 책들에게 양보하고 상당수의 책들이 골방으로 사과 박스 안으로 사라졌다.

아내는 열심히 책을 모았고 지금도 열심히 수집 중이다. 처형에게 아는 언니에게 철 지난 책들을 얻어오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책들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을 열심히 딸아이에게 읽어 주었다. 두 돌 지난 딸아이는 아직 한글도 모르지만 책을 꺼내서 읽으려고 하면 책 제목을 이야기한다. 오늘은 <아기돼지 3형제>책을 꺼내놓고 혼자 갈대집, 나무집, 벽돌집이라고 중얼중얼 거리며 읽는 흉내를 낸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것이다. 책 읽기는 더욱더 그러한 것 같다. 어릴 때 부모님이 내게 좀 더 많은 책을 사 주었더라면 하는 핑계에 가까운 부질없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책을 사주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식새끼들에게 먹고 입히는 것이었다. 먹이고 입히는 것 해 주기에도 빠듯한 지독한 가난에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책이라는 존재는 가시처럼 아픈 또 하나의 "한(恨)"이었으리라.

이 밤 문득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다.


태그:#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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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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