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2일, 안산 합동분향소로 가는 길. 갓 피어난 노오란 꽃다지 닮은 봄볕은 간지러울 정도로 다사로웠다. 그러나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는 여전히 차갑고 시린 겨울이 도사리고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가지마다 그렁그렁 탐스러운 꽃망울이 하나둘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봄 기운이 감돌고 있었지만, 이곳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세월호'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대체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우리 아이가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을 뿐인데... 저희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정부와 정치권이 이럴 줄 몰랐어요. 언론과 수사기관과 사법부도 실망입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분명 참사잖아요. 대통령도 인정하고 특별법과 특검 통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러나 무엇이 지켜졌나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진실규명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과 음해"라고 호소했다.

창현 아빠 이남석님은 "반정부 세력, 종북 세력, 심지어 테러집단으로 매도하고, 자식을 볼모로 얼마나 더 보상을 받으려 그러느냐? 이제 지겹다 그만 좀 해라"는 말을 들을 때 "숨이 멎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며, "그만 잊자, 묻어버리자 하는데, 솔직히 우리도 그만 두고 싶다. 그러나 밝혀진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제발 우리가 2년 동안 왜 싸우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귀 기울여주면 좋겠다. 처절함을 몰라주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기약없는 싸움에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힘들어도 산 자의 책임"이라며, "창현이를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진실을 찾는 고단한 작업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민 엄마 전인숙님도 "'거지근성' '시체장사' 등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 막말한 사람이 비례대표 후보라니 기가 막힌다"며 "지금도 정치권에 뒤통수 맞은 기분인데 이런 사람이 국회 들어가면 더하지 않겠나 싶어 걱정된다"고 했다. 또한 "정부여당과 국회에 약속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너희들은 왜 정치를 하느냐?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호통을 치는 바람에 마음 아프고 조심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생일에 미역국도 끓여 주지 못하는 부모 마음

새하얀 국화꽃 향기가 마음을 찌르는 합동분향소 안에 들어갔다. 대형 모니터에는 '고 권순범, 고 김동협, 고 김민규, 고 김승태...' 등 자막과 함께 희생된 아이들이 교복을 입은 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순서대로 소개되고 있었다.

저렇게 새파랗게 젊은 학생들에게 '고인(故人)'이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경민 엄마 표현대로 "금방이라도 벌컥 문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꿈이었다는 수정이, 광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던 지윤이, 자동차 공학을 꿈꿨던 주현이...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가슴 설레며 떠난 제주도도 못 가보고 '하늘로 간 수학여행'... 비록 이 땅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저 하늘에서나마 꼭 꿈을 이루기를 두 손 모았다.

3월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부모님의 생일선물
▲ 영정 앞에 놓인 생일 축하 꽃 3월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부모님의 생일선물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희생자 영정 앞에 줄줄이 놓인 '생일 축하 꽃다발과 화분, 정성 어린 편지들'... 울컥한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알고 보니, 3월 생일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부모님들의 생일 선물이란다. 먼저 보낸 자녀의 생일을 잊지 못하고 이곳을 찾아 이런 모양으로 챙길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시린 마음을 생각하니 명치 끝이 아파왔다.  

영석 엄마 권미화님도 영석이 생일 때, "차마 미역국을 끓일 수 없어 마음이 미어졌다"고 한다. "물론 365일 모든 신경이 온통 영석이를 향해 있지만, 생일 날은 특히 아이의 얼굴이 손에 만져질 정도로 자꾸만 떠올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대신하고자 케이크와 예쁜 화분을 영정 앞에 선물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영석이 친구들을 모아 그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대접했지만, 영석이를 보고 싶은 간절함에 하루 종일 눈물만 흘렸다"고 토로했다.
 
먼저 보낸 자녀의 생일을 잊지 못하고 이곳을 찾아 이런 모양으로 챙길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시린 마음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아파왔다.
▲ 영정 앞에 놓인 생일 축하 꽃 먼저 보낸 자녀의 생일을 잊지 못하고 이곳을 찾아 이런 모양으로 챙길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시린 마음을 생각하니 명치끝이 아파왔다.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권미화님은 2년 동안 쉬지 않고 이른바 '투쟁'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우리들이 지쳐 쓰러지고 그렇게 포기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다"며 "우리네 싸움이 대답 없는 메아리 같아 맥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대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정부여당에 대한 서운함과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인숙님도 약을 달고 산단다. 처음에 한 알이던 것이 이제는 5~6알이란다. 이렇게 병원과 약국을 찾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단다. 극도의 스트레스와 무력감, 우울증 등으로 다들 고생이란다. 그러나 아프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생각하며 젖 먹던 힘까지 낸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 3월까지만 치료비가 지원되고 4월부터는 끊긴다고 한다.

경빈엄마는 “추모관이 마련되지도 못했는데, 방 빼라는 식으로 교실을 비우라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라는 포스터 경빈엄마는 “추모관이 마련되지도 못했는데, 방 빼라는 식으로 교실을 비우라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추모관도 마련 안 됐는데, 단원고 교실 비우라니

유가족 대기실에는 '우리의 교실을 지켜주세요'라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교실 얘기를 꺼내기 무섭게 다들 답답하다는 반응과 함께 눈물을 보였다. 경빈 엄마는 "추모관이 마련되지도 못했는데, 방 빼라는 식으로 교실을 비우라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교실을 얼마든지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 잃을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우리들에게 양보하라니..."라며 "마지막 흔적마저도 내놓으라 하니 가슴을 칠 노릇"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긴 호흡으로 멀리 보고 가자는 뜻에서 작업 공간을 마련했단다. '엄마의이야기공방'과 '아빠들의목공방'이 바로 그것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그래도 이곳에 오면 동병상련의 마음가짐으로 함께하기에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엄마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찢어내듯 자신이 입던 한복을 찢어 ‘꽃만장’을 만들고 있었다.
▲ 한복을 찢어 만든 꽃만장 엄마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찢어내듯 자신이 입던 한복을 찢어 ‘꽃만장’을 만들고 있었다.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엄마의이야기공방'은 유가족 대기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으로, 지난해부터 리본을 만들어 팽목항·광화문 등 세월호 관련 현장에 보내는 일을 했단다.

올해는 특히 몸과 마음을 찢어내듯 자신이 입던 한복을 찢어 '꽃만장'을 만들고 있었다. 호성 엄마 정부자님은 "잊히지 않게, 꽃으로 피어나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또한 "나쁜 기운을 없애라는 뜻에서 '탈'도 만들고 있다"며 "304개를 만들어 '4.16 2주년 걷기행사'에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416희망목공방'은 합동분향소 주차장 한쪽에 있다. 미지 아빠 유해종님은 "이렇게 목공예품을 만들면서 서로의 아픈 마음들을 다독이고 있다"며, 그동안 공들여 만든 '휴지 케이스, 작은 의자, 책장, 간이 책상' 등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이 물건들은 "지난해처럼 문화 장터 '엄마랑 함께하장'을 개최하여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 했다.

미지아빠 유해종 님은 “목공예품을 만들면서 서로의 아픈 마음들을 다독이고 있다”고 말했다.
▲ ‘416희망목공방’ 미지아빠 유해종 님은 “목공예품을 만들면서 서로의 아픈 마음들을 다독이고 있다”고 말했다.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세월호는 송곳 같은 것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 가족들 대부분의 가정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입을 모았다. 정상적인 가정 회복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국민적 공분에 힘입어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 등도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2년이 지난 지금은 아픔과 상처만 남았다며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또한 "416 이전과 이후가 분명 달라져야 하고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함에도 왜 자꾸 덮으려고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어쩌다 세월호가 불편한 진실이 되었고 어쩌다 우리들이 불편한 존재가 되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통탄했다.

그리고 "세월호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고 내 가족 이야기"라며, "시민들이 다시 한번 2년 전처럼 뜨거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야 진실규명에 소극적인 정부여당이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경빈 엄마 전인숙님은 특히 "일부 희생자 가족들이 이제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끝나기 전에 꼭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러기 위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절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진실을 밝히는 이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고 끝내는 이길 것"이라고 희망을 얘기했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한 순간에 잃은 이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누가 이들을 화살나무로 만들고 있을까
▲ 화살처럼 생긴 '화살나무' 생때같은 자식들을 한 순간에 잃은 이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누가 이들을 화살나무로 만들고 있을까
ⓒ 김형태

관련사진보기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화살나무를 보았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한 순간에 잃은 이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누가 이들을 화살나무로 만들고 있을까 답답한 생각마저 들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이미 우리의 슬프고 뼈아픈 역사가 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슬픔과 분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6.25 전쟁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처음부터 회사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안전은 뒷전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할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더 큰 참사를 빚었다. 신속하게 대응하여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음에도 황금 시간을 놓쳐버렸고, 진정성 있게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함에도 상처를 주고 분노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과 민낯을 극명하게 보았다.

이제라도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왜 구조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하고, 그리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엄청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태그:#세월호 2주기, #세월호 희생자 가족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