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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빌은 지름 10km 원형이다. 크게 국제구역, 주거구역, 문화구역, 상업구역으로 나뉜다. 중심부 마트리 만디르가 있는 구역은 평화지역, 원 모양의 테두리는 그린벨트 지역이다.
▲ 오로빌 모형 오로빌은 지름 10km 원형이다. 크게 국제구역, 주거구역, 문화구역, 상업구역으로 나뉜다. 중심부 마트리 만디르가 있는 구역은 평화지역, 원 모양의 테두리는 그린벨트 지역이다.
ⓒ 오로빌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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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로빌에 일주일 동안 있었습니다. 대안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오로빌은 넓고 다양했습니다. 제가 일주일간 보고, 듣고, 느낀 대로만 썼습니다. - 기자 말

대학 졸업까지 마지막 한 학기를 남기고 인도로 어학연수를 나왔다. 뭐 먹고 살지? 내가 취업은 할 수 있을까? 정말 나한테 맞는 적성이 뭐지? 사실상, 이런 고민을 안고 도피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듣게 된 오로빌은 내겐 신세계였다.

"무상 의료, 무상 교육, 8시간 의무 노동을 하고 모두가 똑같은 돈을 받는다. 자급자족 경제를 통해 최소한의 삶만 유지하며 주민 모두가 마음을 수양한다. 행정 관료가 없고 주민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주민들은 본인의 재능을 기부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푸투스'에서 식료품을 필요한 만큼 무료로 가져온다. 종교, 인종, 국적을 초월해 모두가 평등하다."

인도에 그런 곳이 있다고? 오로빌은 마치 잘 작동하고 있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같았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취업이 목젖에 다가온 나로서는 완벽한 도피처를 안 기분이었다. '헬조선'에서 아등바등 살 이유가 무엇 있나. 욕심을 조금만 버리고 오로빌에 들어가서 살면 되지! 오로빌과 관련된 기사를 모조리 찾아 공부했다. 오로빌을 향한 내 환상은 더욱 커졌다. 일주일간의 어학원 수업을 몽땅 빼먹기로 하고, 인도 반도의 동남쪽에 있는 뿌두체리행 버스표를 끊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공동체' 꿈꿨던 미라 알파사

미라 알파사는 스리 오로빈도의 사상을 기초로 오로빌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은 오로빌리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로빌 곳곳에서 이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 '마더' 미라 알파사와 스리 오로빈도 미라 알파사는 스리 오로빈도의 사상을 기초로 오로빌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은 오로빌리언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로빌 곳곳에서 이 두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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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빌은 '마더'라 불리는 미라 알파사라는 인물의 주도로 인도 타밀나두주 코로만델 해안 근처에 건설된 계획도시다. 엄밀히 말하면 도시라기보다, 인도 주 정부로부터 독자적인 행정권을 따낸 자치구역이다.

오로빌은 지름 10km의 정확한 원형 모양이다. 면적은 25㎢로 '콩알만 한' 공동체가 아니라 '통 큰' 공동체였다. 5만 명이 살도록 설계됐지만, 현재는 2700여 명이 살고 있다. 이렇게 큰 공동체가 이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면? 국가에도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뭔가 모를 희망이 솟구치는 동시에 뭔가 모를 불안감도 저편에 깔렸다. 정말 잘 작동할까?

미라 알파사는 그녀의 스승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사상을 기초로 오로빌을 건설했다. 스리 오로빈도는 영국을 향한 무장투쟁을 통해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지식인이다. 여러 번의 투옥 통해 자신의 사상을 확립했다.

그는 인간의 신체는 진화를 마쳤으나, 인간은 영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봤다. 명상과 수양을 통해 인간이 '초의식(Divine Consciousness)' 상태에 도달하면, 인간은 분리된 개인이 아닌 모두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상태에 이르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노력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위해 일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스리 오로빈도의 기본 생각이었다.

미라 알파사가 오로빌 중심에 '마티르 만디르'(Matir Mandir)를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는 오로빌 주민들이 노동을 통해 배움을 얻고,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며, 명상을 통해 초의식에 도달하길 바랐다.

마티르 만디르는 명상을 할 수 있는 장소다. 2008년 완성됐다. 길이 36M, 높이 29M의 타원형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황금이다. 오로빌리언은 오전 6~8시, 오후 5~8시에 출입이 가능하다. 방문자 출입은 오전 9~11시까지 가능하고 내부 출입과 사진촬영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은 타원형 내부의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공간 내부는 조명을 제외하고 죄다 하얀색으로 신비감을 더한다. 방은 원 형태다. 12개의 기둥 가운데, 사람 앉은키 만한 수정구슬이 있다. 사람들은 수정구슬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 마티르 만디르 마티르 만디르는 명상을 할 수 있는 장소다. 2008년 완성됐다. 길이 36M, 높이 29M의 타원형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황금이다. 오로빌리언은 오전 6~8시, 오후 5~8시에 출입이 가능하다. 방문자 출입은 오전 9~11시까지 가능하고 내부 출입과 사진촬영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은 타원형 내부의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설계돼 있다. 공간 내부는 조명을 제외하고 죄다 하얀색으로 신비감을 더한다. 방은 원 형태다. 12개의 기둥 가운데, 사람 앉은키 만한 수정구슬이 있다. 사람들은 수정구슬을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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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라 알파사의 뜻 아래, 1968년 2월 28일 오로빌 기공식이 열렸다. 세계 124개국 청소년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흙을 한 곳에다 쏟아부었다. 그중엔 한국의 흙도 있다. 이는 국적, 인종 그리고 종교를 뛰어넘는 '세계의 도시' 오로빌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라 알파사는 오로빌 헌장을 통해 "오로빌은 특정 개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오로빌은 인류 전체에 속한다, 하지만 오로빌에서 살고자 하면, 기꺼이 초의식에 도달하고자 해야 한다(Aurovile belongs to nobody in particular, Aurovile belongs to humanity as a whole, But, to live in Aurovile, one must be a willing servitor of the divine consciousness)"라고 선언했다. 미라 알파사가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을 위해 자립과 '준비된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착하자마자 깨진 환상

오로빌의 '시청' 역할을 한다. 오로빌리언은 행정 업무나 금융 업무 등 대부분의 민원은 타운홀에서 해결한다.
▲ 타운홀(Town Hall) 오로빌의 '시청' 역할을 한다. 오로빌리언은 행정 업무나 금융 업무 등 대부분의 민원은 타운홀에서 해결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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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두체리 해변을 도착해 곧장 릭샤를 타고 달렸다. 풀 한 포기 없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만 보였다. 포장과 비포장 그 중간 쯤되는 도로를 8km 쯤 달리다 보니 우거진 숲이 나왔다. 오로빌이었다. 1968년 당시 오로빌은 풀 한 포기 없이 붉은 흙이 깔려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나무가 자생해 숲이 됐다.

오로빌 방문자 안내소(Visitor Centre)를 거쳐 숙소를 잡았다. 오로빌에는 오로빌에 속해 있는 게스트하우스만 75개다. 25세 여주인이 날 맞았다. 이름은 엘리스(가명), 그녀는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오로빌에서 나고 자란 오로빌리언이었다. 하루에 500루피(약 9000원), 그녀에게 6일 치 방값을 한 번에 지불하려고 하자, 그녀는 말했다.

"나한테 돈 줄 필요 없어. 내일 나랑 같이 타운홀(Town Hall)에 갈 거야. 금융 센터(Finance Center)에 가서 방값을 지불하면 돼."

오로빌에 왔구나 싶었다. 그녀에게 고갯짓으로 물음표를 던지며 물었다.

"게스트하우스 수익금은 오로빌에 내고, 너 Maintenance(자기유지금)만 가지고 생활하니?" 

잠시 눈을 반짝였지만 기대는 엇나갔다.

"너가 타운홀에 돈을 내면 오로빌은 33%의 기여금(Contribution)을 갖고, 나머지는 내 오로 계좌(Auro account)에 넣어줘."

쉽게 말해, 오로빌은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나머지 수익금을 엘리스에게 주는 것이다.

오로빌 내에는 수많은 유닛(Unit)이 있다. 게스트 하우스나 식당, 기업체 등 수익을 내는 단위를 유닛이라 부른다. 유닛은 오로빌 지원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오로빌리언 개인이 짓는다.

돈은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자기유지금을 모아 유닛을 차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닛은 만들어지는 동시에 오로빌에 기부된다. 유닛의 최고 책임자는 '주인'이 아니라 Executive(관리자)라 불린다. 기여금 33%를 제외한 나머지는 관리자의 재량에 맡겨진다. 즉, 오로빌 내에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했다.

내가 아는 오로빌은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오로빌에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본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무엇인가 다르니까 이상 사회라 부르는 것이겠지'라며 속으로 나를 다그쳤다.

"다를 게 없어"

오토바이를 빌렸다. 오로빌은 좁은 흙길이 많아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다니기 최적의 장소다. 대부분 오로빌에 사는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오토바이는 하루에 60루피, 연료는 1리터에 70루피였다. 두 곳 다 오르빌에 있었지만 오로빌리언이 아닌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오로빌리언은 대부분 자기 오토바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토바이 대여점에서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연료를 살 수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서는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현금으로 계산했다.

준비해온 질문은 다 잊었다. 처음 3일 동안은 만나는 사람에게 '오로빌이 자본주의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부터 했다. 사람마다 코웃음을 치거나, 빙그레 쓴웃음을 보이는 등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항상 같은 대답을 내놨다.

"중심에 마티르 만디르가 있다는 것 말고는, 다를 게 없어.(Nothing is different)"

케샵은 4년 전 네팔에서 오로빌로 와 길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로빌리언이 아니라 고용된 일꾼이었다. 그는 "만약 오로빌에 오기 전에 돈이 많았다면 오로빌에 식당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라면서 "자본주의와 다를 게 없다"라고 설명했다.

오로빌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바깥세상과 왕래는 자유로웠고, 별다른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오로빌이 만들어지던 당시, 오로빌은 오로빌 지역 땅의 반만 샀기 때문에 오로빌 내에는 지역주민도 많이 살았다. 오로빌리언이 된다는 것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굳이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자원봉사자(Volunteer)들은 하루 8시간 안팎의 노동을 한다. 노동의 형태는 본인이 선택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작물이 끝난 땅이 마르지 않도록 나뭇잎을 덮어주고 있다.
▲ 일하는 자원봉사자 자원봉사자(Volunteer)들은 하루 8시간 안팎의 노동을 한다. 노동의 형태는 본인이 선택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작물이 끝난 땅이 마르지 않도록 나뭇잎을 덮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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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을 의무적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말과는 달리 오로빌에서는 굳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됐다. 노동을 강요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마더' 미라 알파사의 뜻에 따라 강요는 없다. 모든 것은 개인의 의지에 맡겨진다.

다만, 하루 8시간 주 35시간을 채우면 Full maintenance로 1만 루피(약 18만 원)를 받고, 그 절반을 일하면 Half maintenance로 5000루피를 받는다. 한국인 뉴커머(Newcommer) 이경연(43)씨는 "아파서 빠지든, 그냥 빠지든 노동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라면서 "노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오로빌리언은 자신이 직접 노동을 선택해 오로빌에 Commitment(약속)한다. 즉, 돈이 있으면 비교적 쉬운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이 그 예다. 돈이 있어야 게스트하우스를 지을 수 있고,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야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관리자인 엘리스의 경우 별다른 육체노동을 하지는 않았고 낮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 밤에는 경비 서는 아저씨를 고용해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 경우 노동 시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녀는 영어 시험에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예 노동을 약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로빌에 18년째 살고 있는 가네쉬(가명)는 "가령 유럽에서 은퇴한 후 오로빌에 온 사람들의 경우 충분한 돈이 있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기도 한다"라면서 "원칙으로서는 일을 해야 하지만 사실 오로빌에는 노동을 강요할 특별히 규정이 없다"라고 전했다.

'돈'이 없으면 오로빌리언이 되기 힘들다

자원봉사자(Volunteer) 최소 3개월, 뉴커머(Newcommer) 최소 1년을 거쳐야 오로빌리언(Aurovilian)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이때, 자원봉사자와 뉴커머는 오로빌리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워킹 그룹(Working group)인 엔트리 서비스(Entry service)의 심사를 받는다. 심사를 통과하고자 하면 자원봉사자와 뉴커머는 주 35시간 일을 하는 게 좋다.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자원봉사자와 뉴커머 신분일 때는 자기유지금을 받지 않는다. 관리자의 재량에 따라 자기유지금을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예외적이다. 반면 기여금은 내야 한다. 자원봉사자는 한 달에 900루피, 뉴커머는 2500루피를 낸다. 숙소 문제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보통 자원봉사자나 뉴커머를 위한 값싼 숙소나 하우스 시팅(빈집을 돌봐주며 사는 것)을 하는 방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 이 기간에는 오롯이 자신의 주머닛돈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이 없으면 오로빌리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마이클(29)은 프랑스에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오로빌에 와서 5년째 자원봉사자로 지내고 있다. 그는 5년 동안 프랑스에서 벌어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마이클은 "한 달에 5000루피(약 9만 원)면 생활하는 데 충분하다"라면서도 "돈이 없으면 자원봉사자나 뉴커머 생활에 뛰어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원봉사자와 뉴커머에게 기여금까지 받는다니 오로빌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라면서 "점차 정책이 바뀌고 있고, 그래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오로빌에는 화폐가 없을 뿐, 돈은 필요하다 

푸투스의 점원이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푸투스는 '프리스토어'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오로 계좌의 자기유지금(Maintenance)을 통해 계산이 이뤄진다.
▲ 푸투스 계산대 푸투스의 점원이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푸투스는 '프리스토어'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오로 계좌의 자기유지금(Maintenance)을 통해 계산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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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가 무엇인가? 지폐나 동전을 화폐라고 한다면 오로빌에는 화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화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로빌리언은 화폐 대신 '등록 번호'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로빌리언이 되면 오로 계좌를 열게 되고 등록 번호를 부여받는다.

등록 번호 하나면 오로빌에 속해 있는 어떤 시설에 가도 화폐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물건을 사거나 밥을 먹을 때 등록 번호를 불러주면 끝이다. 애플페이나 삼성페이와 같은 결제 방식이다. 하지만 현금도 받는다. 일주일 간 오로 계좌를 열지 않고 생활했지만 현금으로 결제되지 않아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오로빌에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게 많아서 돈 쓸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로빌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혹은 외부와 단절해서 살 것이 아니라면 돈이 필요하다.

솔라키친과 푸투스는 오로빌을 상징하는 식당과 식료품점이다. 솔라키친은 싼값으로 오로빌리언들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푸투스는 '프리스토어'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 화폐를 주고받지 않을 뿐 물건마다 가격이 정해져 있고 물건을 산 사람은 자기유지금을 지불한다. 물건값을 알려달라고 하면 잘 정리된 가격표를 보여준다.

오로빌에는 의료 기관이 세 곳 있다. Health Centre, Santé, Dental Clinic. 이 세 곳은 오로빌리언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주고 있지만, 약값은 따로 지불해야 한다. 사실상 무료가 아닌 셈이다. 게다가 진료 수준이 낮아 사실상 병원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딸과 함께 오로빌에 2년 반째 살고 있는 한국인 김해인(가명)씨는 "여기 병원은 아주 기본적인 치료밖에 못한다"라면서 "정말 제대로 된 병원이 필요하면 뿌두체리에 나간다"라고 말했다.

"미라 알파사의 꿈은 꿈이었을 뿐"

오로빌리언들이 솔라키친에서 배식을 받고 있고, 직원이 오로빌리언을 체크하고 있다. 오로빌리언이 먹은 밥값은 자기유지금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솔라키친은 태양열을 통해 발생한 수증기로 조리하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오로빌리언이나 오로빌리언에 속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게스트는 솔라키친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 솔라키친 오로빌리언들이 솔라키친에서 배식을 받고 있고, 직원이 오로빌리언을 체크하고 있다. 오로빌리언이 먹은 밥값은 자기유지금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솔라키친은 태양열을 통해 발생한 수증기로 조리하는 식당으로 유명하다. 오로빌리언이나 오로빌리언에 속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게스트는 솔라키친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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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빌리언은 한 달에 자기유지금 1만 루피(약 18만 원)를 받고, 그중 3400루피(약 6만 원)를 기여금으로 낸다. 자기유지금만으로 아주 기본적인 생활만 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생활 패턴을 바꾸기 어려운 외국인이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 보였다.

가네쉬는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자기유지금으로 살 수 있다"라면서도 "다만 좋은 옷, 좋은 음식은 포기해야 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나 아이가 있으면 자기유지금으로 기초 생활만 하는 것이 힘들다"라면서 "만약 아이가 지나가다 케이크를 보고, 먹고 싶다고 울면 어찌할 건가? 아이에게 기초 생활을 유지하라고 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가네쉬는 "세상이 변하면서 오로빌도 조금씩 천천히 변해왔다"라며 "예전엔 삶에서 배우고자 노동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돈을 벌고자 노동한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마더의 꿈은 꿈일 뿐이었다"며 "우리는 아직 그 꿈을 따를 만큼 준비돼 있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80%는 은퇴 후, 10%는 사업하러... 10%만 '마더' 좇아"

찬드리마(61)는 13세 소녀의 나이로 '마더'의 선택을 받아 오로빌 창립 멤버가 됐다. 당시 그녀는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변해가는 오로빌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찬드리마(Chandrima) 찬드리마(61)는 13세 소녀의 나이로 '마더'의 선택을 받아 오로빌 창립 멤버가 됐다. 당시 그녀는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변해가는 오로빌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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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드리마(61)는 13살 소녀의 나이로 오로빌 창립멤버가 됐다. '마더'의 선택을 받아 1968년 당시 인도 23개 주중 1개 주를 대표해 손수 흙을 뿌렸다. 그녀는 변해가는 오로빌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뿌두체리에서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나무를 심었어요. 서로 함께 고생해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엔 가능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노동했죠, 내 기억이 맞다면 오로빌은 1982년까지는 잘 작동했어요. 세상이 변하면서 오로빌도 서서히 변했죠. (중략)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현재 아마 80%는 유럽의 금융 위기를 피해서 오로빌에 와 있는 거 같아요. 여기 물가가 싸고 시설이 잘 돼 있으니까 살기 좋은 거죠. 은퇴 후에 받는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이 되죠. 10%는 사업을 하기 위해 오로빌에 온 것 같아요. 돈을 벌러요. 나머지 10%만이 '마더'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고요. 저로서는 안타까움(Sorry)을 느끼죠 물론, 하지만 사람이 밉지는 않습니다. 그 돈을 벌려는 생각 방식이 미울 뿐이죠. (중략) 

오로빌이 변하기 시작한 이유는 창립멤버가 많이 떠났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창립 멤버들이 많이 떠나갔죠. 몇몇은 자연스레 자신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고, 몇몇은 오로빌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돌아갔어요.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는 내가 만들었고 내 고향과도 같기 때문이에요. 난 이곳을 사랑해요. (중략)

그래도 난 믿어요, 또 10년, 20년, 혹은 50년 후에는 '마더'가 그렸던 모습으로 오로빌이 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태그:#오로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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