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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자소설' 쓰다 왔어요.
 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자소설' 쓰다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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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을 원하지 않는 취업준비생입니다. 일을 하기는 싫지만 먹고살고는 싶거든요. 요즘 상반기 취업 시즌이죠.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자소설'을 써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남에게 평가받는 내 인생, 타인에게 보여지는 내 마음 모두가 부끄럽기 때문에요.

물론 난 스펙과 능력이 좋은 다른 누군가만큼 여러 가지로 무장된 사람도, 당장 현장에 투입돼도 무리 없을 만큼 준비돼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난 그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 문장 몇 줄을 읽을 줄 알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여행 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제가 가진 이런 성향을 겉으로 드러낼만한 자격증은 없어요. 자기소개서에 쓰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그래 난 내 인생을 스펙으로 사용해보자! 하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항목으로 가기도 전에 제가 초라해지는 걸까요. 인생을 말해달라는 항목에 도달하기도 전에 저를 압도하는 여러 스펙에 대한 문답들, 경력 기술란들이 '네 인생 궁금하지 않으니까 어쭙잖게 기웃대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물론 취업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데나요. 조건이 붙어요. 영어로 치면 wherever(어디든지) 정도로 말하면 될까요? 제가 원하는 일, 제가 찾고 있는 일, 할 수야 있어요. 근데 조건이 붙어요. '얼마든 상관없이'라고요. 먹고살 수 있는 길은 막히겠지만 할 수야 있겠죠.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난 그만큼의 열정도 있지 않은 것 같아서 거울 앞에서도 몇 번은 더 초라해져요. 욕심은 열정을 앞서고 현실은 그 욕심을 앞서고 제 무능함은 결국 그 현실까지 앞섭니다.

성과 없으면 노력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냥 전 즐겁게 살고 싶어요. 열정 페이를 받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든, 많은 돈을 받으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든 현실은 제 즐거움을 뛰어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있어요. 아니, 현실이 사실은 제 편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의 눈을 키우고도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합리화를 하거나 온갖 능력으로 무장된 사람이 돼야겠죠.

얼마 전, <강남 좌파>라는 책을 읽었어요.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강남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심리와 그 사회적 현상을 설명한 책이었어요. 상상이 가시나요? 좌파이면서 강남이래요. 근데 그게 대체 왜요? '좌파이니까 강남에 살고 싶은 거 아닐까요?'라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쥔 게 없어요, 억눌려 살아온 세월이 어마어마해요, 난 그래서 강남에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돕고 싶어요. 이게 대체 왜요? 이 모습이 단순히 무능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대자로 편히 누워서 너희가 번 돈으로 밥 달라고 빼액 거리다가 사회적 덕망까지 챙기고 싶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요?

성과가 없으면 노력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최선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갖고 계세요? 왜 산출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나요? 과정은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전 교육자 아버지가 계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호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어려움 없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누리면서 살아왔습니다. 고작 6년동안만요. 그 후엔 집안의 경제적 위기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여러 어른들 밑에서 이동생활을 즐기듯 경험하며 자랐어요. 어제는 거기,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일까? 막연한 생각으로 사계절을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자랐네요.

다시금 안정적인 가정이 됐고 이제 됐구나, 다시 돌아갔구나 싶었던 시절이 왔어요. 그런데 엄마가 아프대요. 그것도 엄청나게요. 상대적으로 공부보단 돈이 되는 일을 찾는 게 급선무였어요. 고작 17살, 공부에 흥미를 잃었어요. 난 머리도 좋지 않았고 공부에 관심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하질 못했어요. 막연했어요. 그냥 난 뭐가 돼 있겠지,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서툰 무대 연출자가 만든 세트장 안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됐는데 난 뭐가 돼있지 않았어요. 김연수 작가의 <스무살>에서 보면, 스무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고 돼 있네요. 정말 제게도 스무살 이후가 왔어요. 나이를 하나하나 가늠하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10대와 20대의 경계에서만 저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의미 있는, 그런 아무것도 아닌 스물한 살이 제게도 왔어요.

공부를 해야만 했어요.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이대로는 인정은커녕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을 것만 같았어요. 난 그래도 끊임없이 나를 놓지 않는 사람이었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었거든요. 감사하게도요.

돌아 돌아 대학생이 됐어요. 늦은 나이에 3학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마치 신입생처럼 학교 생활을 즐기고 누렸어요.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내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는 매우 서툰 제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다신 오지 않을 하루처럼 일상을 살았어요. 물론 제가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에서만요. 모험심이 강한 것에 비해 마무리는 약한 저였기에 결과에 매달리기보다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어요. 전 성과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즐겨요, 웃자고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 안개 너머 뭐가 있을는지.
 앞이 보이지 않아요. 안개 너머 뭐가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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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제 인생이에요. 난 이렇게 살았어요. 누가 보면 별 것 아닌 인생, 또 누가 보기엔 버거운 인생, 재미없는 인생이 될 수도 있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무채색의 인생일 수도 있어요. 평가받으려고 적은 건 아니니까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어요.

그냥 나란 사람도, 이렇게 살아온 나도 부끄럽지만 꽤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제 무능함을 현실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어리석은 날들도 제겐 많고, 정말로 현실의 벽을 느껴 좌절해버리는 날도 제겐 너무나 많아요.

하지만 전 항상 안개 속을 걷고 있습니다. 그 안개가 걷히고 나면 어떤 것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어요. 그것이 멋진 나이아가라 폭포같은 경관일 수도 있고, 폭포 그림을 그려넣은 진짜 같은 가짜 그림일 수도 있어요. 절대로 만질 수 없는. 하지만 몰라서 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만약 안개가 아니었다면, 그냥 깨끗하게 모든 것이 보였다면 난 나를 괴롭히지 않았을 거거든요. 그냥 맞춰 살아가겠죠. 이미 답이 나와있으니 더 이상 머리를 굴려 생각할 여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해 울음을 터트리는 놀라운 감정도 없겠죠.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분들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생각 많이 하지 말아요 우리. 어떻게 될까 나는. 10년 뒤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봤자 우린 당연하게 10년 뒤를 살고 있을 것이고, 그때의 우리는 지금 우리가 생각한 모습에서 적어도 50%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예요.

자기 자신도 통제하기가 힘든데 매일 매일 달라지는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통제하겠어요. 현실은 여전히 우리보다 높고 변화무쌍한걸요. 즐겨요, 여러분. 이건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모험만을 추구하라는 독단적 메시지도 아니고, 뜬구름 잡기식의 응원가도 아니에요. 그냥 정말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꼭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능력이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나이가 많든 적든 하고 싶은 일을 하든, 하기 싫은 일을 하든 그때그때 솔직하게 즐깁시다. 저처럼 걷히지 않는 안갯속을 걸으라고 말하진 않을래요. 그냥 여러분만의 세상을 만들고 적어도 그 안에서는 마음껏 누리고 생각하세요. 아파해도 좋고, 넘어져도 좋고, 미친듯이 웃어도 좋아요.

여러 번의 이력서 제출과 여러 번의 낙서를 끄적거린 뒤 여러 번 고쳐 쓴 이 글을 이제서야 올리네요. 푸념입니다. 제 인생이에요. 화려하지도, 영화 같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이렇게 다 말하기에도 부끄러웠던 제 일상을 글로 적을만한 용기는 제게 생긴 것 같네요. 아마도 '자소설'의 영향이겠죠?

전 다시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즐겁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러 갈게요. 전 정말 뭐가 돼도 될 거거든요. 그 고민이 고민에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의 안개는 그래도 조금 걷히길 바라며, 내일의 세트장으로 또 들어갈 준비를 하며. 안녕!


태그:#청년, #꿈, #학생, #취업, #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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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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