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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 글자를 적었다. 깜박이는 커서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쁘다는 건 핑계였고,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샨티학교는 4월 첫째 주, 세월호 추모기간을 가졌다. '세월호 영상제'를 열어 <다이빙벨>과 <나쁜 나라> 등을 상영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월호를 알면 알수록 슬프고, 화가 치민다고 했다. 하지만 몇몇의 학생들은 "왜 계속 세월호만 얘기하나요?"라고 물었다. 추모기간 내내 영상을 보여주고, 세월호 이야기만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에서도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함께 읽었다. 나는 칠판에 '세월호'라고 적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떠오르는 것을 얘기하자고 했다. 한마디씩 할 때마다 세월호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런지를 치밀하게 물었다.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필 검정색 펜이 없어서 온통 붉은색으로 적은 세월호 마인드맵은 분노와 슬픔의 상징이 되었다.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 중에 '세월호'를 적고, 샨티학교 학생들에게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말해보라고 했다. 연상되는 단어들을 적으며 학생들의
생각하는 세월호를 알 수 있었다.
▲ 세월호를 기억하다 <글쓰기를 부탁해> 수업 중에 '세월호'를 적고, 샨티학교 학생들에게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말해보라고 했다. 연상되는 단어들을 적으며 학생들의 생각하는 세월호를 알 수 있었다.
ⓒ 조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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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을 한 후 세월호와 관련된 사람에게 편지를 쓰자고 했다. 천진난만한 학생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들은 단원고 학생들과 유가족에게, 대통령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특히 대통령에게 적은 편지는 차마 보낼 수가 없다(마음껏 상상하시길). 편지 가득 분노의 목소리가 넘쳤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자신에게 편지를 쓴 친구는 세월호 사건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며 물었다.

"선생님, 저는 왜 그럴까요? 사건 당일 뉴스를 보던 엄마도 제게 '너는 슬프지도 않냐'고 하셨어요. 제가 이상한지 몰라도 슬프지가 않아요."

나는 그 학생에게 슬픔은 강요되어선 안 된다고, 괜찮다고 얘기해주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삶을 만난 시간

지난 2년 동안 많은 간담회를 다녔지만, 10대 학생들을 처음 만나 본다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모습
▲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는 샨티학교 학생들 지난 2년 동안 많은 간담회를 다녔지만, 10대 학생들을 처음 만나 본다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모습
ⓒ 유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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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에 있는 샨티학교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있는 대안학교지요. 4월 첫째 주 세월호 추모기간에 유가족 분들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부르시면 어디든 가야지요. 특히 십대들이 있는 곳이라면."

전화기 너머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 상주에서 <나쁜 나라>를 상영했을 때 만난 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그때 하셨던 말씀이 귓가를 스쳤다.

"아이는 제게 우주였어요. 저는 지금 우주를 잃었어요."

지난 6일, 빛바랜 목련꽃이 뚝뚝 떨어진 샨티학교 운동장. 먼 길을 달려온 어머니 세 분이 노란 옷을 입고, 노란 리본을 잔뜩 가지고 오셨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면 힘이 생긴다던 말씀이 생각났다.

샨티학교 학생들이 강당에 동그랗게 모였다. 2014년 4월 16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평범한 주부에서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샨티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만나는 100분 동안 정말 진지했다. 3주 전부터 세월호 참사를 깊이 공부한 19살 학생들은 국회 청문회에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 떠난 아이는 어떤 존재였는지, 세월호 인양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단원고 교실은 어떤 상황인지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 앞에서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진행을 하는 내내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사실 부모들에겐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입니다. 다만 아이가 왜 죽었는지 밝히는 일이 제가 살아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죽은 아이 덕분에 세상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10대들을 만난 건 처음이에요. 일반학교에서는 불러주지도 않지요. 다른 유가족들이 대안학교에 가신 적은 있는데 제가 만난 건 처음이에요. 여러분들 보니까 아이 생각이 나서 힘들기도 하고, 우리 아이도 이런 곳에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피해자예요. 그런 부모들에게 정치색을 입혀서 괴롭히는 게 제일 힘겹습니다. 오랜 투쟁으로 인해 부모님들 모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요. 하지만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4월 25일 단원고 교실이 없어집니다. 이건 명백히 수업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모든 아이가 돌아오기까지 없어져선 안 되는 교실입니다. 그 전에 샨티학교도 단원고에 와서 아이들이 공부했던 교실을 보면 좋겠습니다."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아이가 저를 자주 안아줬어요. 아들이었지만 참 다정한 아이였죠. 그럴 때마다 징그럽게 왜 그러냐고 했어요. 그때 같이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돼요. 그리고 4월 16일 아침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한 게 제일 후회됩니다. 여러분도 집에 가면 부모님을 자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얘기해주세요."

세월호 유가족과의 대화를 마치고, 샨티학교 학생들이 어머니들을 안아주는 모습.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모두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세월호 유가족을 안아주는 모습 세월호 유가족과의 대화를 마치고, 샨티학교 학생들이 어머니들을 안아주는 모습.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모두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 조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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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학교는 학생들을 집으로 보낼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준다. 긴 시간을 마치고 격려의 박수를 쳤을 때, 누군가 외쳤다. 우리 모두 어머니들을 안아드리자고.

노란 옷을 입으신 어머니 세 분을 한 명씩 가서 안아드렸다. 집 안에서만 우시고 밖에서는 안 우신다는 어머니의 눈가도 촉촉해지셨다. 딸과 아들이 안겨올 때 먼저 떠난 아이 생각에 안 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모든 샨티학교 식구들이 오랫동안 어머니의 품을 기억할 것이다.

19살 학생들은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의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어른들의 숱한 말보다 학생들의 한마디가 더 뭉클했다. 어제는 논산, 오늘은 문경. 그리고 내일 부산으로 진실을 알리러 떠나는 어머니를 배웅해드렸다.

헤어지는 순간 한 학생이 어머니께 목걸이를 내밀었다. 어머니께서 이게 뭐냐고 물으시니 "제가 가장 아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돌아가는 길, 그 학생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분께서 가장 많이 우셔서 뭔가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우셨던 어머니였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목걸이를 선뜻 내줄 수 있는 마음, 뒤풀이 자리에서 어머니들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러주는 마음, 죄송하다고 힘내시라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는 마음. 그 거짓 없는 마음들이 모여서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이 침묵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의 만남이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 앞에 섰을 때 불현듯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 함께 울고 아파했던 이 순간을.

강연을 마치고 뒤풀이 후 어머니들과 함께 찍은 모습. 반갑게 맞아주시고
'샨티학교에 자주 놀러올께요'라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다.
▲ 샨티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강연을 마치고 뒤풀이 후 어머니들과 함께 찍은 모습. 반갑게 맞아주시고 '샨티학교에 자주 놀러올께요'라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다.
ⓒ 이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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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민들레>에 기고할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샨티학교, #글쓰기, #나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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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쓸 때는 은둔자가 되고 싶으나,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여인. 곧 마흔, 불타는 유혹의 글쓰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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