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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1조1,2항이다. 우리는 이 헌법의 가치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그렇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 주권을 행사하는 일이 투표라고 생각한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으면 그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국민의 안녕과 삶을 챙긴다고 믿는다.

원리는 맞는다. 그러나 그건 원리만 그렇다. 일단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뜻대로 한다.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력이 무슨 만능 칼인 줄 행사한다. 그 칼을 들고 국민을 마구 찔러댄다. 독재를 했던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그들도 어쨌든 국민이 뽑은 대통령들이었다. 독재정권일 때 더 많은 국민의 표를 받았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정선거의 덕택일 때가 많았지만.

국회의원, 시의원에 이르기까지 대의 민주주의 법에 따라 투표에 의해 국민의, 시민의 대표자를 뽑는다.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거의 대부분 자신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일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왔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의 꽃은 투표다."

권력은 표에서 나오는가? 맞다

<선거파업> (안치용 지음 / 영림카디널 펴냄 / 2016. 3 / 287쪽 / 1만3000 원)
 <선거파업> (안치용 지음 / 영림카디널 펴냄 / 2016. 3 / 287쪽 / 1만3000 원)
ⓒ 영림카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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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니 욕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건 자신에게 침 뱉는 행위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여기에 대하여 고민한 이들의 책이 있다.

안치용의 <선거파업>이 그것이다. 안치용은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교장으로, 대학이 아닌 사회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지속가능성 및 사회책임 의제를 가르치고 확산시키는 활동가다.

그와 함께 했던 대학생들과 공동으로 엮은 책이 바로 <선거파업>이다. 20대 총선을 치르면서 선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는 표지의 글이 선명하게 내 가슴으로 파고 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라도 이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우리나라가 '민주 없는 민주주의로 출발한 나라'라면서, "미국 점령기를 거치면서 한반도 남쪽에서 친미와 반공,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이 등장한다"고 적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지 대한민국 국민이 주도한 결과는 아니란 뜻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가짜 민주공화국의 국부'라고 적는다.

한국 사회는 민주사회라기보다 계급사회라며,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표를 통하여 권력이 생기는 것은 맞는데, 그 권력이 또 하나의 힘으로 등장, 정치가 아니라 지배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지배블록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차지한 기득권 세력이며, 야당 또한 이 지배블록의 '당당한 한 축'이어서 반민중적, 반민주적, 반시민적이라고 꼬집는다. 대통령과 여당만 그런 게 아니라 야당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 예로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꼽는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한국 제1야당의 선대위원장을 맡은 김종인이 과거 국보위 참가 전력을 하등 부끄러워하지 않듯이, 한국의 야당은 민주를 포기한 민주주의 정당으로 기득권의 부스러기를 챙기며 살아가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본문 31쪽)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아니다

박정희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경유착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재벌이 한국 정치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 재벌 정책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근저부터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 이게 어디 민주주의인가. 자본 중심의 폐쇄형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지배블록은 아무리 선거를 치러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금권은 비선출직 종신 지배자이다. 정치 뿐 아니라 경제까지 지배하는 지배블록은 '온 국민을 머슴화(이필상)'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예화하는 중이다."(본문 89쪽)

표를 얻겠다는 후보들이 너나없이 들고 나오는 이슈가 바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경제가 고꾸라져 죽었는데, 누가 그렇게 고꾸라지게 했는데, 그 경제를 자신들이 살리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이는 그 지배욕의 근저에 돈이 있다는 걸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또 선거에서 이념 부재, 정책 실종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권력을 잡기 위해 펼쳐놓은 청사진을 표를 얻고 나면 거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경제민주화'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선거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거를 통해 더 이상 어떤 대안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문제의 본질은 투표를 통해서 '문제 너머'로 이행케 할 선택지가 원천 봉쇄되었다"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더 이상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투표율 저조로 나타나는 '이탈방식(Exit)'이 아니라 국민이 목소리를 내는 '항의방식(Voice)'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광주항쟁이나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또한 추첨민주주의, 아테네 직·간접 민주주의, IT와 민주주의의 접목 등도 대안이다. 무엇보다 혼합민주주의를 제시하는데,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심의민주주의 등으로 이를 관철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경제민주주의의 복원과 국부를 시민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경제, 정답은 투표!'라는 우리 야당의 안간힘을 보며, 투표를 해도, 투표를 안 해도 계급블록만 형성된다는 현실이 아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쓰기를 통한 '항의방식(Voice)'으로 민주주의 투사가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선거파업> (안치용 지음 / 영림카디널 펴냄 / 2016. 3 / 287쪽 / 1만3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선거파업 -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안치용 지음, 영림카디널(2016)


태그:#선거파업, #안치용, #투표, #20대 총선,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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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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