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6 총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코 앞에 다가오니 북쪽에서 바람이 넘실넘실 불어온다. 통일부가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들이 탈북했다는 사실을 황급히 발표하더니, 이제는 북한 정찰총국 출신의 북한군 대좌가 망명했다는 사실을 공개한다.
이렇게 두 사건이 나란히 보도되니 마치 '탈북 러시'라도 일어나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무리수를 써 가며 북한을 압박한 것이 놀랄만한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전략적 설정이었을 것이다.
비록 종업원들은 며칠 전인 7일에 입국했고, 북한군 대좌가 탈북했다는 것은 (제재 국면과 거리가 먼) 작년 7월의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북한과 연관해 '최적의 발표 시기'를 노리는 편법은 정부가 지난 세기부터 해 온 '고전적 꼼수'여서 식상하고 촌스럽지만, 그조차 간첩 조작 등의 반인륜적 범죄에 비하면 오히려 '귀여운' 수준이라 할 만하다.
오히려 보수언론이 더 놀란 기색이다. <조선일보>과 <동아일보> 등은 '북풍'을 내심 반기면서도, 정부가 '간 크게' 북한 종업원들이 입국한 지 하루만에 발표한 데 대해 한 목소리로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1~2 달은 물론, 6개월까지도 걸리는 합동신문기관(합신)의 조사도 생략한 채 '전격 발표'를 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통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발표를 강행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보수언론의 커진 눈들을 보자. <조선일보>는 "총선 앞두고 탈북 이례적 공개… 스스로 설득력 떨어뜨린 정부"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여러 언론은 작년 중반기부터 북한의 당(黨)·정(政)·군(軍) 간부들의 탈북(脫北)과 망명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해 왔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이를 확인해준 적은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그때마다 '탈북·망명을 준비 중인 사람들이나 탈북자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탈북자들이 거쳐온 제3국과 외교적 마찰을 피하고 이들의 탈북 루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1년도 안 돼 정부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조선일보><동아일보>는 "'북한 정찰총국 대좌 망명' 8개월 만에 이례적 확인…총선용?"이라는 제목을 달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방부가 장성급 인사의 망명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북한 정찰총국 대좌의 망명은 지난해 7월 8일(동아일보 단독)에 보도됐던 일로,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밝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기사들을 끝까지 읽어보면, '북풍도 좋지만, 너무 대놓고 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애잔하게 녹아있다. 여기에 '승자의 여유'도 느껴진다.
'과반 의석을 바라보는 마당에, 뭐 이렇게까지...'
남한에서 스스로 목숨 끊는 탈북자들정부가 오직 선거에 이겨보겠다고 정보를 떡주무르듯하는 것은 국민과 언론을 바보 취급하는 짓이다. 이게 얼마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꼼수인지는 보수언론이 염려할 정도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얕은 수로 움직일 유권자들은 이미 여당에 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뿐이다.
국적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떠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나서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숭고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영국 비비씨(BBC)는 한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 대다수의 처참한 삶을 심층보도했다.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자살률이 높은 국민이지만, 탈북자의 자살률은 그보다 훨씬 높다. 비비씨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탈북자의 사망 원인의 6~7%가 자살이었으나, 최근에는 자살자 비율이 크게 늘어 2015년에는 무려 14%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매체가 분석한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이었다. 탈북자들은 한국 연속극 등을 보고 남한의 삶에 환상을 갖지만, 실제 와 보면 경제적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경제난, 구직의 어려움, 기회의 결여, 심각한 차별은 이들의 고통과 죽음의 원인을 '적응 실패'로 돌릴 수 없음을 말해준다.
비비씨는 한국에 온 후 14년 동안 직업을 7 번이나 바꾼 탈북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버스 운전사, 공사판 막일 등을 전전하다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이미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정부는 최근 탈북한 식당 종업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인도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들 종업원은 해외에서 생활하며 한국 TV, 드라마, 영화,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의 실상과 북한 체제선전의 허구성을 알게 됐으며, 최근 집단 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탈북자들도 행복하다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사회는 탈북자들도 견디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행복한 사회가 되면 탈북자들도 행복해 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과 탈북자를 한국의 비참한 현실을 은폐하는 선전의 도구로써만 사용할 뿐이다. 매우 '비인도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배고프고 불행한 현실을 말하면 난데 없이 '배부른 소리 말라'며, '북한이 쳐들어 오면 너는 죽는다'고 협박한다. '제발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북한에 가서 살라'고 응수한다. 이러니, 북한과 평화를 유지하지 않는 한 남한 사회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고, 그런 이유로 진보를 거부하는 정치세력은 평화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북한이 잘 살든 못 살든, 우리가 불행하면 불행한 것이고, 대통령과 정치인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행복과 고통은 상대적 경험이 아니라 절대적 경험이고, 한국은 이미 '절대적으로' 살기 고통스러운 나라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옥이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지옥이 천국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울산 유권자들에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종북세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더민주 후보를 사퇴시켰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불어 온 바람이 벌써 울산까지 내려간 모양이다. 나는 해당 더민주 후보가 '종북'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종북'이라는 말은 현 정부가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부모들에게도 쏟아낸 말이었다.
나는 왜 보수세력이 '안보'를 자신의 쌈짓돈처럼 여기는지 모르겠다. 현 보수정부는 2년 전 300명의 목숨이 꺼져가는 데도 허둥대기만 했다. 죽어가는 국민들을 바라만 보고 있던 정부가 전쟁의 위험에서 국민들을 지켜줄 수는 없다. 지금 이대로 더 없이 행복하신가? 변화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시는가? 그게 아니라면 '찍을 사람이 없다'거나, '여나 야나 똑같다'고 말하지 말라.
선거 당일에도 정부의 관심사는 변함없이 북한이지만, 이번 총선은 남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줄 대표들을 뽑는 선거다. 나는 탈북자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도 잘 살기를 바라고, 국민을 두려워하며 그들의 목숨과 행복을 지켜줄 지도자를 쟁취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행사하는 '무서운 한 표'는 북한 주민에게도 큰 교훈이 될 것이다.
이런 표의 힘은 연속극이나 걸그룹의 춤따위에 비길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