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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네팔 대지진이 발생한 후 1년이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네팔을 방문했다. 기자는 한국자비공덕회에서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네팔 동부 칸첸중가 인근 오지에 있는 학교를 봉사차 방문한 후, 지진으로 피해 복구사업을 재건하고 있는 지역을 돌아봤다. 몇 차례에 걸쳐 복구사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네팔 현지 사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지난 3월 28일 오후 6시,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오, 세계의 지붕 네팔이여! 1년 반 만에 도착한 네팔 땅이다. 신성한 땅에 키스라도 하고 싶다. 한반도의 3분의 2, 마치 고인돌처럼 생긴 작은 이 땅에는 세계의 최고봉인 사가르마타(Sagarmatha, 네팔에서는 에베레스트 대신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의 여신' 이란 뜻을 가진 이 명칭을 사용한다)를 비롯하여 8000m급인 히말라야보다 높은 산이 여덟 개나 포진하고 있다. 

지진 후 1년, 다시 활기를 찾은 네팔

히말라야라는 말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보금자리’를 뜻하는 라야(Laya)의 합성어로 ‘눈의 보금자리’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라는 말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보금자리’를 뜻하는 라야(Laya)의 합성어로 ‘눈의 보금자리’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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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의료봉사 팀을 따라 네팔에 첫발을 디딘 후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이 땅을 수 차례 드나들고 있다. 최근 2010년부터는 네팔 동부 칸첸중가 인근 오지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는 한국자비공덕회(회장 명조스님)와 인연이 되어 네팔 땅을 세 번째 밟고 있다.  

명조스님과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인연으로 알게 되었다. 스님은 십 년 넘게 심장병을 앓고 있다. 북한산 자락 작은 토굴에 살면서도 남을 위해 기도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자는 스님의 갸륵한 뜻에 감동받아, 기자도 네팔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후원하는 봉사에 8년째 동참하고 있다. 

어쨌든 히말라야는 나를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 있다. 법구경에 '훌륭한 사람은 히말라야처럼 멀리 있어도 빛나고, 몹쓸 사람은 밤에 쏜 화살처럼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히말라야를 신성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원래 히말라야라는 말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눈'을 뜻하는 히마(Hima)와 '보금자리'를 뜻하는 라야(Laya)의 합성어로 '눈의 보금자리'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신성한 땅에 2015년 4월 대지진이 일어났다. 세계의 지붕에 발생한 지진은 참혹했다. 히말라야의 지축을 흔들고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피해를 냈다. 네팔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고난을 멍에처럼 걸머지듯 대지진으로 인한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카트만두 공항은 언제 네팔 대지진이 언제 있었냐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의 요란한 굉음과 관광객들로 카트만두 공항은 부산하다.

네팔 대지진 발생 후 1년이 된 카트만두에는 다시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비자발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여행자들.
 네팔 대지진 발생 후 1년이 된 카트만두에는 다시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비자발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여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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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 앞에는 비자를 받으려고 여행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나도 그 줄 뒤에 서서 기다리다가 비자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동행하게 된 한국자비공덕회 국제협력위원인 케이피 시토울라 씨와 함께 수화물을 찾았다.

이번 네팔 방문의 목적은 시토울라씨와 둘이서 한국자비공덕회가 후원하고 있는 네팔 동부 오지에 있는 더먹 인근 6개 학교에 낡은 칠판을 교체해주고, 컴퓨터 30대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더먹(Damak)은 케이피 시토울라씨의 고향이다. 이들 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시토울라씨와 관련이 깊다. 이처럼 사람이 사는 사회는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은 인연 따라 살게 된다.  

수화물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시토울라 친척이 자동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에는 곧바로 자파로 가는 국내선을 타고 더먹에 위치한 후원 학교로 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공사의 출항 시간이 변경돼 오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국내선 연결이 곧바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네팔에 도착한 당일 밤은 카트만두에 있는 시토울라씨 아버님 댁에서 머물고 다음 날 더먹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시토울라 어머님에 내 목에 카타를 걸어주고 이마에 축복의 띠카를 찍어주셨다.
 시토울라 어머님에 내 목에 카타를 걸어주고 이마에 축복의 띠카를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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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토울라 아버님 집은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의 아버님 집은 다행히 지진의 피해가 빗겨나간 공항 인근 안전지대에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시토울라 부모님이 따듯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곳에는 시토울라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온 가족이 다 모여 있었다. 누님, 동생, 매제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그의 어머님이 내 목에 축복의 카타를 걸어주고, 이마에 띠카를 찍으며 축복해주셨다.

시토울라씨 가족은 천성적으로 웃음이 많고 선한 사람들인 것 같다. 더욱이 칠십을 훌쩍 넘기신 부모님은 온 가족을 품에 안은 듯 포근하기 그지없다. 손자들이 재롱을 피우고 일가친척과 이웃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런 가족을 두고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씨토울라 씨 가족함께 네팔식으로 달밧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씨토울라 씨 가족함께 네팔식으로 달밧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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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어머님과 누님이 정성 들여 준비한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그들 모두가 동그란 쟁반에 쌀밥, 수프, 커리, 채소 절임을 곁들인 달밧 타카리(Dal Bat Tarkari)을 네팔식으로 손을 이용해 먹었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손으로 달밧을 집어 먹었다. 내가 손으로 밥을 먹자 모두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재미있어했다. 

"찰라님, 네팔 사람 다 되었네요!"
"하하, 오늘부터 나도 네팔리랍니다."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밥을 먹는 서투른 내 솜씨를 보고 모두 까르르 웃었다. 시토울라씨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오른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모아서 'ㄴ'자로 떠먹으라고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며 밥알과 국물을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느낌은 좋았다. 따뜻한 음식이 손가락으로 전달되어 식욕을 돋우는 것 같았다. 마치 온몸으로 음식을 먹는 느낌이랄까?

언제나 웃음이 가득 넘치는 씨토울라 시 가족과 함께
 언제나 웃음이 가득 넘치는 씨토울라 시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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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맛있게 먹고, 3층에 마련된 숙소로 올라갔다. 이 방은 시토울라씨가 네팔에 오면 쓰는 방이라고 한다. 혈혈단신 한국에 와서 자수성가한 시토울라가 부모님을 위해서 이 집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효자인 그는 이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어머님이 침대에 이불과 담요를 정성스럽게 깔아주었다. 차를 내오고, 간식거리를 끊임없이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시토울라 옆에 앉아 쉬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넸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이 반갑기도 하고 그동안에 쌓인 이야기를 다 하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는 어머니의 말을 다 귀담아듣다가 가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열악한 환경에 국경 봉쇄까지... 그래도 웃는 이 가족

오랜만에 온 아들과 도란도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토울라 씨 부모님
 오랜만에 온 아들과 도란도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토울라 씨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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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아직 전기와 물 시설이 좋지 않다. 하루에 11시간 동안 정전되고, 물은 지하수를 쓰고 있다. 정전되는 동안에는 발전기를 돌려 희미한 전등불을 켠다. 물은 아껴 써야 한다. 따뜻한 물은 사용할 수가 없다. 태양열을 이용하여 물을 데운다고는 하지만 샤워를 하기에는 차갑다. 화장실에 갈 때는 손전등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불편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감수하고 살아간다.

네팔 대지진 발생 이후, 인도의 국경 봉쇄로 네팔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네팔의 민주 헌법 제정을 탐탁지 않게 여긴 인도는 2015년 9월부터 5개월 넘게 국경을 봉쇄하여 네팔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차단했다. 그로 인해 네팔은 육로로 들어오던 석유와 의약품, 생활필수품 등이 공급을 멈추어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제조업 등 산업 전반이 마비되다시피 했다.

네팔은 북쪽으로는 중국과 히말라야 산맥을 1236km에 걸쳐 국경이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인도와 1690km에 달한 국경이 접해 있는 내륙국가이다. 네팔은 '육지 속의 섬' 같은 존재로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나라다. 내륙국가(land-locked country)는 1965년 빈협약과 1972년 해양접근에 관한 법을 통해 국제적으로 국경무역을 보호받는다. 이웃 해양 인접국가의 육로무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교역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네팔은 인도의 국경봉쇄로 1989년에 이어 이번에도 인도-네팔 국경이 막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 있는 네팔은 양쪽 강대국 사이에서 힘이 약한 약소국의 설움을 겪는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도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내륙국가에 대한 국경봉쇄 조치를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를 할 수 없고, 하루에 11시간 동안 정전이 되어 불편하지만, 이부자리를 펴주며 따뜻하게 대해주는 시토울라 씨 가족들의 ? 마음이 한없이 포근했다.?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아 샤워를 할 수 없고, 하루에 11시간 동안 정전이 되어 불편하지만, 이부자리를 펴주며 따뜻하게 대해주는 시토울라 씨 가족들의 ? 마음이 한없이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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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지만, 씨토울라씨 집은 매우 행복해 보인다. 웃음이 가득 넘치는 집, 다정한 이야기가 도란도란 이어지는 집, 이웃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집, 온 집안 식구가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집... 시토울라씨 집은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 넘치는 집이다. 나는 그런 그의 집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태그:#네팔대지진 1년, #케이피 시토울라 가족, #카트만드, #네팔,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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