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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근처 소나무들이 솔방울을 많이 토해내던 해였다. 외할아버지와 기억을 술회해보면, 소나무가 다른 해보다 솔방울을 많이 만든다거나 가로수들이 줄기 중간에서 잎을 내는 건 힘이 들다는 방증이라고 하셨다. 외할아버지와 산에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왕용아."
"네?"
"도토리를 많이 따기 위해 사람들이 돌로 상수리나무를 때린단다. 그럼 나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토리를 많이 만들어내지."
"네."

사실 어릴 적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닌 건 순전히 나무를 그러모으는 일이 재밌었다.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사서과' 나온 선생님 그리고 한 학생

한 권의 책. 그리고 사람.
 한 권의 책. 그리고 사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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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뒤로한 채 2008년, 교원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국가고시(?)에 합격했다는 것도 기적이고, 내가 아이들을 만나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기적이었다. 잘 정돈된 도서관에 책을 읽기 위해 몰려드는 아이들, 즐겁게 책을 보는 아이들을 상상하니 참 행복했다.

행복한 상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도서관이라고 적혀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답답함마저 느껴졌다. 도서관에 앉아있으니 학생들 또한 오지 않았다. 오는 친구들이라고는 젊은 남자가 앉아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사서교사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선생님들이었다.

"황 선생, 사서과 나왔는가?"
"네. 문헌정보교육과를 나왔습니다."
"똑같이 임용고시를 보고 들어왔는가?"
"네."
"좋겠네. 수업도 없고. 너무 부러워. 나도 하고 싶네."
"…."

이야기의 패턴은 거의 일정했다. 선생님의 반응들에 의욕은 꺾였다. 모든 선생님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건 아니지만, 유독 저런 말들에 예민했다. 학생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 예민하면서 우둔하기까지.

그러던 어느 날, 한 분의 선생님과 한 명의 학생이 수업 중에 찾아왔다. 도서관에서 상담을 하겠다고 했다. 담임교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해서 자리를 비워주려고 막 도서관을 나오는데, 아이가 의자를 집어던지고 책상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마구 소리쳐댔다. 욕과 함께 입으로 담지 못할 말들이었다.

출입문을 다시 닫고 들어와서 남자 아이를 잡았다. 팔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아이는 흥분한 상태였다. 얼굴의 살도 미세하게 떨렸다. 아이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학교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은 것이 그때였다. 담임선생님을 학년실로 보내드렸고, 그 아이와 5분 넘게 대치하다가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렸다. 너무 긴장해서였을까? 아이도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상담했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난 아이 앞으로 가서 앉았다.

"이름이 뭐니?"
"네. 윤재호(가명)요."

딱히 뭔가 말을 해줘야겠다는 강박이 생겼다. 한참을 생각해낸 것이 겨우 '참을 인(忍) 자'였다.

"재호야. 일시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냐?"
"네?"

아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반납되지 않은 책 '명심보감'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인데 잠깐만 생각해보고 참으면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야. 아까 보니까 너가 잠깐만 참았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재호는 의외로 대화가 통했다.

"선생님. 그럼 도서관에 명심보감 있어요?"
"그럼. 잠깐만."

책을 빌리겠다는 아이에게 담임선생님께서 많이 속상하시겠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다음날 담임선생님이 메신저를 보냈다.

"선생님. 재호에게 무슨 말씀하신 거예요? 재호가 죄송하다며 찾아왔네요. 어쨌든 어제는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재호는 며칠 뒤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명심보감 책도 반납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깨달음이었을까?

재호를 생각하면 외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힘이 들어서 솔방울을 많이 토해내는 소나무처럼 재호에겐 어떤 고단함이 있었을까? 초임 시절에 만났던 재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든다. 우리 교육이 도토리라는 열매만을 따기 위해서 아이들을 너무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20대 중반이 됐을 재호는 지금 잘살고 있을까.

2008년 사서교사가 됐다. 사서교사가 됐는데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학에서 배운 내용과 현실은 괴리가 컸다. 학교도서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친구는 여전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학교도서관에 살고 있는 사서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앞으로 그 내용을 써보고 싶다. 이번 기사는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 기자 말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 중복 송고했습니다. 사서 교사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예민하고 우둔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사서 교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차근차근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태그:#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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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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