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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였던 지난 16일 오후 4시를 전후해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김종인 세월호'가 상위에 올랐습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에 당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 차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고, 자연스럽게 큰 뉴스가 된 것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정세균 의원이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지난 16일 오후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정세균 의원이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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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운 좋게 김 대표가 분향소를 찾은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김 대표는 헌화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에 섞여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 대표 뒤에는 같은 당 정세균 의원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가만히 보니 김 대표의 상의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배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던 제 아내도 그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지 재빨리 김 대표에게 다가가 노란 리본을 달아줬습니다.

김 대표와 정 의원 주변엔 취재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개 유력 정치인들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취재진을 대동하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더구나 4.13총선에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선 터여서 김 대표의 동선에 취재진들이 벌떼 같이 붙어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김 대표 주변에 취재진은 없었습니다.

김 대표와 정 의원의 세월호 분향소 방문은 많은 언론이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동행한 기자들이 취재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김 대표를 본 시민들이 재빨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고 기자들이 이걸 '받아서' 기사를 쓴 것입니다.

시민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점이 보기 좋았습니다. 시민들은 보수 정권이 집권했던 지난 8년 동안 대통령 이하 고위 공직자들의 '갑질'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습니다. 그런 터라, 김 대표와 정 의원의 조용한 행보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정치권의 몫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는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사고라기보다 대한민국이 가진 온갖 부조리와 난맥상이 일대 얽혀 있는 사건입니다. 유가족들은 지난 2년 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대했던가요?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이에 대해 다뤘으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헌화를 마치고 나오는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헌화를 마치고 나오는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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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 없이는 유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게다가 늘 그래 왔듯이 적당히 덮고 넘어가면 언젠가는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 될 것입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정치권이 나서야 합니다.

진상규명을 위해선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필요하고, 이 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보장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민간이 할 수 없습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따라서 정치권이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는 어떻게 꾸려졌나요? 정부 여당은 자꾸 세월호 문제를 덮으려 하고, 야당은 의석수 부족을 이유로 몸을 사리니, 유가족을 중심으로 전 국민이 뜻을 모아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해서 겨우 꾸려진 것 아니던가요?

4.13총선을 통해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했습니다. 이제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결과를 정부·여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야당이 잘해서 야당을 찍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야당은 잘해야 합니다. 그간 정부·여당이 잘못했거나 외면했던 의제들을 끄집어내 바로 잡으라는 말입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더민주 지도부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15일 자 <연합뉴스>는 "국가 주도 행사가 아니라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유족들이 2주기를 조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관여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취지로 김 대표가 얘기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행간을 보니 아무래도 정치적 공방이 일어나는 것을 의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민주 지도부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다 통 크게 접근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유가족에게 겪게 했습니다. 이제 막 원내 제1당이 된 더민주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을까요?

이 지점에서 2014년 8월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말을 되새겨 봅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어쨌든, 김 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김 대표의 발걸음은 소박했습니다. 그 행보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김 대표의 당내 지위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 앞에 정치적 이해득실을 계산하기보다는, 그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태그:#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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