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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 제가 아프니까 집안일은 올스톱입니다. 만약 엄마가 없다면 일상은 어떻게 될까요?
 워킹맘이 제가 아프니까 집안일은 올스톱입니다. 만약 엄마가 없다면 일상은 어떻게 될까요?
ⓒ 영화'미스터주부퀴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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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제가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아침을 먹고 시내로 외출할 생각이었는데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좀 쉬고 오후에 나가려다 결국 포기했습니다.

배가 쥐어짤 듯 아파서 엉엉 울 정도였으니 외출을 했다면 큰일 날 뻔했죠. 일주일 넘게 제대로 식사를 못할 정도였습니다.

제가 아프니까 집안일 역시 올 스톱입니다. 만약 '엄마'가 없다면 일상은 어떻게 될까요?

가정에서 '엄마'가 아프니까 집안 모든 일이 남편과 아이들 몫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공부를 해야 했고, 매 끼니 식사 준비, 전날 손님을 치르느라 잔뜩 쌓인 설거지는 물론,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잠자리 독서를 챙겨주는 일까지 남편 몫이 되었죠.

주말마다 남편이 전담하던 베란다 청소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포함해 모든 집안일을 척척 알아서 합니다.

아픈 것이 가라앉고 나서 가만히 보니 주말에 '엄마' 하나쯤 일하지 않아도 그냥저냥 살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식사만큼은 제대로 된 한 끼로 차려내는 것이 무척 미숙하더군요.

남편은 특히 주방 일에 미숙한 편인데요. 언젠가 아이들이 "왜 맨날 밥은 엄마만 차려?"라고 질문을 해서 저희 부부가 서로 얼굴을 보며 난감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집안일에도 아빠 역할이 있고 엄마 역할이 있다고 알려주고 상황을 마무리했지만 아이들 눈에는 아빠에 비해 엄마가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한다고 비치는 모양입니다.

신문에서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을 비교하는 기사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남성보다 현저하게 긴 편인데요. 가사뿐만 아니라 육아도 남자에 비해 여자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 집의 경우 남편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제가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더 어려웠을 겁니다.

매일 12시를 넘어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이어지던 시기에 회사일로 바쁜 것에 대해 남편은 단 한 번도 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마음을 읽어주고 일이 바쁜 회사를 함께 흉봐줄 정도로 일하는 것을 지원해줍니다.

주중에 바쁘니 주말에는 쉴 틈도 모자랐는데요. 주중에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해도 주말에 해야 할 집안일이 쌓이게 마련인데, 정리가 안된 집안일에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리한 일을 벌이면 "그런 건 사람을 쓰고 그 시간에 쉬는 것이 낫겠다"고 조언을 해줍니다.

그 밖의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주말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은 온전히 남편 몫입니다. 저는 외출 계획을 짜고(남편은 운전수),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고, 놀 때 옆에 앉아 감시할 뿐이거든요.

월급 외 쌈짓돈이 생기면 아내가 먼저 알게 하고 작은 용돈을 짬짬이 모아 양가 경조비에 보태라고 내놓습니다. 술도 담배도 절제하며 모은 용돈으로 기념일에 작은 케이크를 솔선해서 사 오는 우리 집 남편의 당연한 일들이 여느 부부들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맘 카페의 다양한 부부간 애환을 들여다보고 알았습니다.

엄마로 살아가기도 힘들지만 아빠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아

저는 늘 이야기를 하는 역할을 그리고 남편은 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를 하는 역할을 그리고 남편은 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영화'헨리풀이즈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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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들은 저마다 100만 가지 사정을 가지고 크고 작은 고민과 불화를 겪고 있더군요. 오죽하면 남편이라는 글자에 '의'를 넣어 '남의 편'이라고 부를까요.

저희 부부도 드물게 부부싸움을 하지만 아이들이 세 살이 된 이후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은 한 번밖에 없어요. 예민한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서로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눈치를 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조심하고 있답니다.

연애 3년 결혼 14년 차인 저희 부부는 사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부터 두 돌 전후까지 무척 많이 싸웠어요. 그 2년간 싸운 횟수가 서로 사귀고 결혼해서 지낸 다른 기간동안 싸운 횟수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지만, 6살 때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싸움을 목격하고 지적한 이후로 아이들 앞에서 싸운 일은 한 번도 없고, 아이들이 모르는 싸움도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에야 되돌아보니 남편 역시 저만큼이나 아빠가 되는 것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엄마로 살아가기도 힘들지만 아빠로 살아가는 일 역시 쉽지만은 않은 거죠.

아기가 생기고 아빠가 되기를 기다린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아내나 아이에게 바라던 가족의 모습이 있었을 텐데, 막상 태어난 아이 - 그것도 쌍둥이였던 두 남매는 어지간히 엄마 아빠를 힘들게 했습니다.

밴댕이 콧구멍만 한 잠 주머니를 가지고 있어 제대로 잠도 안 자고,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은 물론, 한 녀석은 하루가 멀다 하고 토하고, 다른 한 녀석은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껌딱지 아이였거든요.

껌딱지이자 수다스러운 쌍둥이 남매는 엄마 아빠가 퇴근하면 신발장에서 신발도 벗기 전에 자기가 하는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데 쫓아와서 얘기를 하거든요. 그것도 동시에. 그러면 한두 마디를 들어주다가 저는 대개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냅니다.

"엄마 옷 갈아입고 손 씻고 나서 얘기해. 좀!"

그러나 남편은 양복을 벗지도 않고 애들을 업어주고 온 집을 돌아다니며 정신없는 수다를 들어주죠. 보다 못한 제가 "얘들아 아빠 옷 좀 갈아입게 해드려"라고 한소리 할 때까지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문득 남편에게 할 말이 있어 쳐다보니 쌍둥이 남매에게 둘러싸여 어느 쪽 말을 들어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더군요. 이런 아이들의 수다에 제 이야기까지 더해서 들어야 하는 남편은 언젠가는 셋이서 동시에 떠들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가 집인가 시장 바닥인가 동시에 셋이 말하면 멍해진다면서요. 그래도 남편은 짜증 내지 않습니다. 다소 속도가 늦기는 하지만 아내가, 방글이가, 땡글이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들어줍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주체적으로 일하고 육아하는 워킹맘이라고 생각해왔고 육아 때문에 남편보다 훨씬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남편을 무척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말입니다. 저는 늘 이야기를 하는 역할을 그리고 남편은 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걸 깨달은 거죠.

한자리에 머무르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에 이런 남편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제가 일도 육아도 손에서 내려놓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워킹맘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참 많습니다. 식기세척기, 스팀청소기, 가사도우미 서비스, 돌봄 서비스 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보다도 우선한 것은 남편의 응원과 지원입니다. 남편이라는 가장 강력한 지원군을 가진 저는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해도 워킹맘을 지속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결혼 14년 차. 이제는 애틋한 사랑 표현이 어색한 사이긴 합니다만 아내의 일, 아이들의 일에 항상 '남과 다른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

"고맙고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워킹맘육아, #쌍둥이육아, #워킹맘의남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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