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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민사소송 진행하면서 아직까지 아무 변화가 없어요. 2년이라는 시간동안 억울하고 분한 마음만 부풀려진 거죠. 만약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했을 때 절차가 진행되었더라면 아이를 떠난 보낸 아픔 외에 다른 상처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예강이한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괴로운 것도 덜했을 것 같아요."

9살 나이로 떠난 고 전예강양의 엄마 최윤주씨는 예강이가 남긴 숙제를 조금이나마 해낸 느낌이라고 말했다.

5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의료분쟁조정법 제27조 제8항에 따르면 피신청인이 조정 절차에 동의하지 않거나 14일 동안 응답하지 않으면 조정 신청이 각하된다. 이번 개정안은 '사망이나 대통령으로 정하는 중상해'에 해당하는 의료사고의 경우는 자동적으로 절차가 개시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17일 법사위 통과할 때도 그랬고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까지 오는 걸 보면서 괜히 떨리더라고요. 통과가 됐으면 좋겠는데 안 될 것 같고 그랬어요. 물론 아쉬운 점은 있어요. 모든 의료사고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남죠. 하지만 사망뿐만 아니라 중상해에도 적용되어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법이 의미가 없으니까요."

고 전예강양은 2014년 1월, 계속 되는 코피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요추천자 시술 도중 쇼크가 와서 병원에 간 지 7시간 만에 사망했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씨는 예강이가 떠난 후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병원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의료분쟁조정법의 개정을 위한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명 '예강이법' 통과를 위해 홈페이지를 개설해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릴레이 1인 시위를 하는가 하면 기자회견도 자청했다.

2014년 8월 21일, 고 전예강 가족과 지인들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4년 8월 21일, 고 전예강 가족과 지인들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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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지 않아서, 혹은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아서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차츰 시간이 지나고 예강이 사건이 많이 알려지면서 11만 명 넘는 분들이 홈페이지에 방문했고 1만 건이 넘는 응원 댓글이 달렸어요. 댓글을 통해 '힘내라'는 말도 많이 해주셔서 제 마음이 안정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릴레이로 1인 시위할 때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고요."

예강이가 허망하게 떠난 후, 최씨는 '예강이법' 통과만이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믿고 매달렸다. 몸은 힘들지만 오히려 아픈 마음을 덜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 아이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강이가 꿈에 자주 나왔어요. 제가 1인 시위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이 들고 그랬어요. 그럴 때 꿈에 나타나 주었어요. 저를 말없이 안아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저는 '우리 예강이가 꿈에서도 이렇게 엄마를 위해주는구나' 생각했죠."

2014년 1월,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던 도중 쇼크로 사망한 전예강양과 어머니 최윤주씨. 전양의 사건 이후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이후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렸다.
 2014년 1월,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던 도중 쇼크로 사망한 전예강양과 어머니 최윤주씨. 전양의 사건 이후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이후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렸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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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예강이가 꿈에 나타나 최씨 품에 아기를 안겨준 일이 있었다. 실제로 최씨는 한 달 전 딸을 출산했다. 아기를 예강이의 선물이라고 여긴다는 최씨는 '예강이법' 통과 또한 예강이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이 개정된 데에는 신해철씨도 계시고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예강이가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내용상 아쉬운 점도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예강이가 내준 숙제를 어느 정도 해낸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도 있어요. 의료사고가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안타까운 의료사고에 이 법이 적용되어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법 개정을 위해 애쓴 분들의 노고를 비롯해서 예강이의 아픔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 주시면 좋겠고요."


태그:#예강이법, #신해철법, #의료분쟁조정법, #한국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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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노동자.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으나 암 진단을 받은 후 2022년 <아프지만, 살아야겠어>, 2023년 <나의 낯선 친구들>(공저)을 펴냄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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