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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보트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호주에서는 보트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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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폐허가 된 동굴을 개조해서 집을 짓는 사람을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다. 특이한 발상을 가지고 어려운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대답이 명쾌하다. 세상은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배를 사기로 했다. 평소 배를 타고 낚시도 하며 바다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러나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수영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호주에는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호주 여행을 하다 보면 배를 끌고 다니는 여행객도 심심치 않게 본다. 특히 바다 가까운 동네에 가면 한 집 건너 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동네도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인지 배를 가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배를 사기로 했으나 무슨 배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이웃으로부터 정보를 얻는다. 근처에 있는 보트 가게도 들려보고 인터넷도 뒤져가며 배를 알아본다. 고민 끝에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작은 배를 사기로 하고 주저하는 아내의 동의도 어렵게 받아냈다.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보니 같은 모델의 배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가장 좋은 가격을 제시한 골드 코스트(Gold Coast)에서 사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7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는 먼 곳이지만 딸이 살고 있으니 손녀들과 함께 진수식(?)도 할 수 있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길에는 얌바(Yamba)라는 동네에 묵으면서 배를 띄어볼 생각도 해본다.

배를 인수하는 날이다. 딸과 함께 가게에 도착했다. 많은 종류의 배가 전시된 규모가 큰 가게다. 구석에 가장 작은, 한눈에 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작은 보트가 보인다.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배를 구경한다. 아담한 크기, 화려하지 않은 색깔 등이 맘에 든다. 

밖에서 서성이는 우리를 알아본 직원이 밖으로 나와 배에 관해 설명해준다. 모터 시동하는 법, 관리 요령 그리고 배 다루는 방법 등을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배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꼭 알아야 할 것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대강 들어 넘긴다. 잘 모르는 것은 천천히 이웃에게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잔금을 치르고 보트 트레일러를 자동차에 연결한다. 서투르게 연결하는 모습을 본 직원이 트레일러를 끌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처음이라고 하니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회전할 때는 반경을 크게 잡으라고 충고한다.

후진 연습도 몇 번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복잡한 도심을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딸네 집에 도착했다.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배를 샀다고 좋아하며 배를 열심히 구경한다. 나도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배를 다루어 본 경험이 많은 사위와 함께 바다로 나간다. 바다라고 하지만 큰 파도가 없는 내해다. 배를 바다에 대려고 후진하는데 쉽지 않다. 왼쪽으로 꺾으면 배는 오른쪽으로 가는 등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젠가는 배워야 할 일이다.

사위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고 도움만 받아가며 간신히 배를 바다에 접근시켰다. 처음 하는 일은 항상 어려운 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미숙함을 위로한다.

사위와 손녀가 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위와 손녀가 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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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익숙한 솜씨로 배를 운전한다. 속도도 내본다. 나도 운전해본다. 처음으로 내 배를 운전하는 기분, 어색하고 힘들지만 기분이 좋다. 맑은 바다에 가오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커다란 게가 모랫바닥을 기어가는 것도 보인다.

배를 가지고 있기에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나가는 배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다 보니 호주 생활에 한발 더 깊숙이 들어간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미 몇 마리 건져 올리며 낚시하고 있는데 늦은 아침을 먹고 나온 손녀들이 해안에서 손짓한다. 배에 태우니 모두 좋아한다. 배를 사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아내의 표정도 밝다.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배를 가지고 집으로 떠날 시간이다. 다음 목적지, 얌바까지는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기에 조심스럽게 준비를 한다. 엔진을 단단히 배에 고정하고 트레일러도 다시 점검한다. 바람에 날아가기 쉬운 구명대 등은 자동차에 싣는다. 

평소 같으면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며 쉬기도 하지만 배를 끌고 가기 때문에 혼자서 조심스레 운전한다. 한 시간 정도 운전하니 익숙해진다.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하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편안하게 나눈다.

시드니를 떠난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시골에 와서 지냈던 이런저런 일이 대화에 오른다. 시드니에 살면 경험하지 못했을 이야기, 시골에서 살기에 놓치고 사는 이야기 등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배를 가지고 지낼 생활에 조금 들뜨기도 한다.  

황량한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 오지에서 호주 원주민과 지내기도 하는 등 조금은 남다른 결정을 하며 지내온 삶이다. 그래도 되돌아보면 나만의 삶을 지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이한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자그마한 배를 사가지고 오면서 아내와 인생을 논한다. 할 일없는 사람의 넋두리 같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 동포 신문 '한호신문'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한국에 사시는 독자를 위해 수정하였습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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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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