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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한국어수업에 열중인 이주노동자들
▲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한국어수업에 열중인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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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이주노동자들의 수업 모습을 사진에 담을 때면 학생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사진이야 찍든 말든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사진 찍는다는 걸 눈치 채고 손을 흔들거나 살짝 웃어주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이 신기한 건 일요일에도 일을 하는 까닭에 수업에 못 나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말은 매주 결석하는 학생도 많지만, 빈자리를 채울 만큼의 재적 인원이 공부한다는 겁니다.

결국 한국어교실은 꽉 차 보이지만, 매주 반타작 혹은 반타작도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학생 개인의 출석률 역시 반타작이면 양호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타작하는 학생들도 할 수 있으면 출석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자리가 점차 빌 줄 알았는데, 종강을 얼마 남기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빈자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친구 손에 이끌려 새로 온 사람도 있습니다. 접수는 하지 않았지만 수업을 같이 듣도록 허락했습니다. 친구를 데리고 온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가 한 마디 했습니다.

"이거 새 거. 공부해요."

통역의 은사를 받았거니 하고 이렇게 해석하며 그냥 웃습니다. "여기 새로 온 사람이에요. 한국어공부할 거예요"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

한국어교실 학생들 수업 대기 중이다.
▲ 한국어교실 학생들 수업 대기 중이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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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주노동자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대한민국에 입국하기에 앞서 첫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바로 한국어능력시험입니다. 이들은 이 시험을 치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주노동자쉼터에서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기초를 갖고 있으면서 열의를 갖고 공부합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아래 '외고법') 제7조 ②항에 따르면 한국어능력시험을 통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어 구사능력, 한국사회 및 산업안전에 관한 이해 등을 평가하여 외국인구직자 명부를 작성할 때 활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어능력시험은 예비 이주노동자가 출국에 앞서 본국에서 응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구직자 명부에 오를 수도 있고,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제 1항에 따른 외국인구직자 명부를 작성할 때에는 외국인구직자 선발기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 구사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아래 '한국어능력시험'이라 한다)을 실시해야 하며, 한국어능력시험의 실시기관 선정 및 선정취소, 평가의 방법,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또한 3년의 취업기간 만료로 출국할 경우, 6개월이 지나면 재취업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이때 역시 응시료를 내고 한국어능력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결국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려는 이주노동자가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한국어능력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매년 1회 이상, 객관식 필기시험을 원칙으로 하되, 주관식 필기시험을 일부 추가하여 실시되고 있습니다('외고법 시행령' 제13조제3항).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현실적인 면에서 한국어를 잘하면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입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데다, 입국 후에는 업무 지시사항이나 산업안전 규칙 등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본국에 돌아갔을 때 취업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일요일에도 공부하는 이주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일하지 않는 일요일이면 하고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장도 보고, 이발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축구·농구 등의 운동도 하고, 유흥도 즐기고, 오라는 데도 많고, 갈 곳도 많습니다.

그러니 젊은 이주노동자가 무엇보다 먼저 머리 싸매야 하는 한국어교실을 찾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와 의지가 없으면 힘든 일입니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한국어교실을 찾는 이들을 보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떠나고 싶다며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나라가 맞나 싶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1970년대 말 자신의 시에서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이 가을에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았다"라고 읊었던 적이 있습니다. 시는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시민들이 거세게 일어서던 시절에 고국을 떠나는 지인을 보며 느꼈던 심정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결코 손을 흔들지 않았다고 시인이 고백했던 1970년대 말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이 다를 게 없는지 국적 취득자보다 국적 상실자가 많다고 합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올해 국적 취득자(귀화·국적회복 포함)는 1370명(신청자 4680명)인 반면, 국적 상실·이탈자는 1만9514명이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광복 이후 작년 말까지 국적 상실자 수가 44만8856명인 반면, 귀화자 수는 15만9548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시를 쓴 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대한민국은 슬픔과 울분이 그득합니다.

그런 나라에 어떻게든 오고 싶어 안달난 사람도 있고, 좀 더 일하고 싶어서 고단한 가운데 한국어를 배우는 이주노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헬조선이라는 말은 배부른 자의 투정일까요? 그래도 아직은 소망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는 고작해야 2000명도 안 되는 귀화자가 있었지만, 1991년 이후 국적신청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귀화자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 봅니다. 좀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요.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1>(1978)

정호승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이 가을에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았다.

누운 풀들이 일어서지 않은 들녘 너머로 어제 진 반달이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무심히 떠나는 자를 위하여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떠나보내는 친구와 친척들을 바라보며 한 마리 귀뚜라미처럼 울고 말았을 뿐 이민 가는 자의 꿈을 위하여 이 가을에 나는 결코 간절히 기도할 수 없었다.

그들의 새벽은 이제 우리들의 새벽이 아니므로 그들의 가슴에 떠오른 새벽별은 이제 우리들의 새벽하늘에 빛나지 않으므로 그들이 사라지는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는 누가 남을 것인가 이 가을에 쓰러졌다 일어서는 들풀을 따라 나는 결코 손을 흔들며 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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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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