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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게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담임선생님이 대출을 반대한다면? 참 난감한 일이다.
 책 읽는 게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담임선생님이 대출을 반대한다면? 참 난감한 일이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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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있으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물론 교실에서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책상에 머리박고 있는 아이들 또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열심히 필기하는 아이들, 두 부류다. 너무 극단적인 분류방법일까?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능동적으로(?) 자신의 수면권을 보장받는 아이들과 수동적으로(?) 받아 적는 아이들로 나눌 수도 있겠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쉽고 빠르게 분류하여 평가하고 재단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렇지 않겠지만, 중간고사를 치르는 5월이 되면 인물 평가는 거의 끝이 나고 만다. 특별한 경우 평가가 바뀌기도 하지만 대체로 한번 받은 평가는 꾸준히 지속되는 편이다.

가끔 선생님의 평가와 그 아이의 행동을 보면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서관에 찾아온 아이들은 교실에서 만난 모습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자습시간에 책이나 보고 커서 뭐가 될까 걱정의 대상이 된 아이가 도서관에서는 책을 보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아이로 바뀌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무기력한 아이들이 도서관에서는 세상만사 호기심 많은 아이들로 바뀐다.

물론 아이들을 규정짓고,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도 아이들을 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바뀌는 모습을 여러 번 본 목격담을 이야기한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오전 10시쯤이었을까? 대현(가명)이 담임선생님이 찾아왔다. 손에는 어제 대현이가 빌려간 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반납대 앞에 서서 책 반납을 요청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서 한 마디 했다.

"아고, 책도 대신 반납해주시고…."

대현이 담임선생님은 진심이었는지 비아냥거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했다.

"대현이는 책은 많이 읽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하루에 두세 권씩 책을 읽는 놈이 국어 성적은 끝에서 놀고 있으니. 자습시간에 책 읽는 것도 허용했는데, 이제부터는 안 될 것 같아요. 대현이 대출 자제 좀 부탁드릴게요."

열성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황당한 부탁이었다. 나름대로 대현이에게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데, 깡그리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시라는 느낌을 뒤로 하고 대현이 담임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 짧은 교사가 아이의 담임선생님 입장에 반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날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김없이 대현이는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서가를 거닐면서 좋아하는 책을 골라내고 대출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키가 작은 대현이가 그날 따라 커보였다.

"대현아, 책을 꼭 빌려야 할까?"
"네?"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책을 빌려주지 못했다. 대현이는 내일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갔다.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달빛을 계단 삼아 퇴근했다. 퇴근하는데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난 뭐하는 사람이지?'

혹자는 별일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마음이 자꾸 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소심함과 모자람의 소치다. 참 부끄러운 교사였다. 뭐 지금 조금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삶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다. 그나마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작은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그때부터 노력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대현이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수업시간과 자습시간에 읽지 않기를 약속받았다. 그리고 대현이와 책에 대해서 가끔 이야기했다. 대현이는 가끔 나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5년이 지난 지금 그 책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글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대현이와 읽었던 책 내용을 조금 풀어야할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5년이라는 세월 사이에 그만큼 많은 아이와 만났고, 많은 책 이야기를 나눴다고 자위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 중복 송고함.



태그:#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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