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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9번째 책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출간기념으로 내가 마을잔치를 한턱 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는 번개여행을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었다.
▲ 한턱 나의 9번째 책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출간기념으로 내가 마을잔치를 한턱 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는 번개여행을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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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은 순전히 즉흥적이고 갑자기 이뤄진 거였다. 이럴 거라는 생각은 '개미똥'만큼도 없었다.

5일 나의 9번째 책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출간기념으로 마을 분들에게 뼈다귀 해장국을 한 턱 냈다.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한 거다. 부녀회장 형수님과 부군 형님이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힘 좀 쓰셨다. 그렇게 모든 잔치를 신나게 마치는 듯했다.

"형님! 오늘 비 오는데 집에 가봐야 천정이나 보고 계시것어유?"

잔치가 끝나고 마을회관서 나오는 형님에게 내가 건넨, 다소 짓궂은 농담이었다. 하지만 형님은 바로 대답해왔다.

"자네 말이 맞어. 하하하하. 근디 집에 가기 싫은디 워쪄지?"

이때,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주요했다.

"어디 가고 싶어신디?"

이렇게 해서 '무작정 번개여행'이 '급 결성'되었다. 형님은 "삼죽 허브마을이 좋다는디 한 번 가보면 좋것다"며 제안을 해왔고, 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콜"을 외쳤다.

"형님! 그라면 내가 차를 가져올텡게 마을회관 안에 계신 어르신들께 여기서 기둘리라 그러셔."

이렇게 해서 집으로 향했다. 아내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아내도 워낙 식물을 좋아하기에 "콜"이었다.

이게 가능한 것은 나에게 있는 15인승 차량 덕분이었다. 안성 일죽에서 교회하던 시절, 교회차로 사용했지만, 이젠 나의 자가 차량이다. 물론 마을 분들 모시고 결혼식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콧바람 쐬는 일은 종종 있어 왔다. 하지만 낮에 잘 있다가 급하게 어딜 놀러가자고 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마을회관에 차를 가지고 갔더니, 13명의 마을 분들이 '싱글벙글'이시다. 회관에 계시던 어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지금 놀러 가는 거 괜찮쥬?"
"없어서 못가는규. 나야 정말 땡큐지."

나의 질문에 이장님 사모님이 대환영을 표시한다. 알고 보니 내가 차를 가지러 집에 가는 동안, 벌써 집에 갔다가 와서 기다리는 엄니도 계셨다. "'몸뻬바지'에 '스레빠'는 안 될 말"이라며, 집에 가서 '고까'도 입고, 외출화도 신고 오셨던 게다.

안성 삼죽허브마을 식물원에서 울마을 엄니들이 꽃구경을 하고 계신다. 꽃이 꽃구경을 하는 장면이다. 신기한 꽃을 하나 발견하신 모양이다
▲ 허브마을 구경 안성 삼죽허브마을 식물원에서 울마을 엄니들이 꽃구경을 하고 계신다. 꽃이 꽃구경을 하는 장면이다. 신기한 꽃을 하나 발견하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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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렇게 뜻이 하나로 통한 적은 또 없을겨."

평소 입담이 좋으신 '아부지'의 농담 세례에 그 자리는 순식간 웃음바다가 된다.

"난 갔다가 빨리 와야 혀. 소 밥 줘야 된당게."

한 엄니가 그러자 또 그 '아부지'가 나서신다.

"소도 다 알어. 주인이 오늘 놀러 간다는 거. 내가 전화해놨으니께 염려 붙들어 매셔."

연신 투하되는 농담폭탄에 순간 웃음 아수라장이 된다.

미리 준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모두가 일단 부담이 없다. 알다시피 단체 여행 한 번 가려면, 아무리 당일치기라도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그런지 어르신들 얼굴이 모두 '아무 생각 없이 해맑은' 얼굴들이시다. 하하하하하.

나의 차에 올라 탄 마을 분들은 마치 소풍을 생전 처음 가는 유치원생처럼,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아따, 저 깻잎밭 좀 봐. 아 고춧대를 저렇게 세워놓으면 안 되는디, 저 밭은 웬만하면 풀 좀 뽑제, 저거저거 돼지감자 아녀. 참 잘생겼네..."

어르신들 대화가 끝이 없다. 왜 안 그러하겠는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마다 모두 토를 다시니 말이다. 그런데다가 내가 그 분들 잘 감상하시라고, 속도를 거의 시속 20km 정도를 내니, '풍경에 토 달기'에는 금상첨화다.

울 마을에서 제일 입담이 좋으신 아부지다. 매장에서 선글라스 하나 끼어보며 웃으신다. 사실 안 사시고, 선글라스 끼고 폼만 잡았을 뿐이다. 하하하하
▲ 입담 아부지 울 마을에서 제일 입담이 좋으신 아부지다. 매장에서 선글라스 하나 끼어보며 웃으신다. 사실 안 사시고, 선글라스 끼고 폼만 잡았을 뿐이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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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죽 허브마을에 도착했다. 허브마을은 식물원처럼 꾸며져 있고, 카페와 펜션이 있는 사기업이다.

그 전에 미리 와봤던 마을형수님이 여행 가이드 아닌 가이드를 한다. 진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행업체에서 끌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식물원부터 공산품 매장 등을 모두 안내 한다. 사실 형수님도 자기가 아는 것을 마을 분들에게 소개하니, 기분은 업이 되고, 어깨는 살짝 올라가 있다. 

사실 어르신들은 나이들을 잡수셔서 걷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 넓은 식물원을 금방 쓱 돌아보고는, 의자에 앉으신다. '언제 집에 갈겨'라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말이다. 헉! 내 이럴 줄은 알았지만, 오늘은 그 속도가 무척 빠르시다.

그래서 머릿속을 열심히 뒤져 건져낸 다음 여행지는 '안성맞춤랜드'다. 비도 오고, 걷기도 싫어하시니, 차량으로 안성맞춤랜드를 돌아봐야지 싶었다.

'아부지 엄니'들은 목적지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그냥 어디로든 가자는 거다. 이번에도 차창 밖 '풍경에 토 달기'는 계속 이어진다.

"뭐 여행이 별건가. 이게 여행이지. 하하하하."

입담 좋은 '아부지'의 말에 모두가 "맞다"며 공감의 웃음을 웃는다.

안성맞춤랜드를 차로 천천히 돌았다. 이번 속도는 거의 시속 10km다. 마치 관광장소의 관람용차를 운행하듯 했다.

그렇게 거기를 구경하고 나니 시각이 5시다. 이쯤 되면 어르신들은 저녁 먹을 시간이다. 내가 제안을 했다.

"엄니 아부지들, 자장면 먹으러 가유."

안성맞춤랜드를 뒤로 하고 우리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면소재지에서 30년을 한 중국집이다. 어린 시절 학교운동회 끝내고 나면 자장면 먹었던 기분이 들었다.

내가 9년 전 일죽에서 교회하면서 마련했던 15인승을 지금은 우리가족 자가차량 역할도 하고, 마을을 위한 차로도 쓰인다. 이 사진은 몇 년전 엄니들과 꽃가져오면서 찍은 거다.
▲ 15인승 내가 9년 전 일죽에서 교회하면서 마련했던 15인승을 지금은 우리가족 자가차량 역할도 하고, 마을을 위한 차로도 쓰인다. 이 사진은 몇 년전 엄니들과 꽃가져오면서 찍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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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 저녁을 끝으로 우리는 '무작정 번개여행'을 끝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급 결성'된 여행치고는 아주 훌륭했다. 준비하느라 부담이 없으니 더욱 그랬을 게다. 사실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즉흥적으로 여행가는 건 딱 '내 스타일'이다. 내가 더 즐거웠다는 거다.

"엄니 아부지들 다음에 또 가유."


태그:#시골, #마을, #공동체, #흰돌리마을, #더아모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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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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