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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병마용갱 개념도 ⓒ 이상기
진시황 병마용갱은 진시황릉으로부터 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전동차를 탄다. 전동차는 15인승인데, 보통 10명이 넘게 타는 경향이 있다. 차를 타는 시간은 3분 정도다. 차를 내리면 다시 출입문을 통과 1호갱 앞 정원으로 간다. 정원 뒤로 체육관 형태의 병마용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건물 상단부에 진병마용일호갱대청(秦兵馬俑壹號坑大廳)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1호갱을 먼저 보고, 3호갱을 본 다음 2호갱을 볼 것이다. 그것은 1호갱이 끝나는 지점에 3호갱이 있고, 1호갱이 시작하는 지점 쪽으로 2호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호갱 동쪽에 있는 정문을 통해 서쪽 끝까지 간 다음, 동북쪽 끝에 있는 문을 통해 1호갱을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서쪽 끝에 있는 문을 통해 3호갱으로 들어간 다음 동쪽 끝에 있는 문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면 길은 자연스럽게 2호갱 서쪽 입구로 이어지고, 2호갱을 보고 동쪽 입구를 통해 나오게 된다.
1호갱 정면 ⓒ 이상기
그리고 나서 2호갱 앞쪽에 있는 진열청(陳列廳)으로 가 동거마 등 출토유물을 볼 예정이다. 진열청은 전시실의 다른 표현으로, 이곳에 진시황릉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의 명칭은 진시황제릉문물진열청(秦始皇帝陵文物陳列廳)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동거마용갱에서 발견된 동거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중국 고대 마차의 실물을 볼 수 있고, 제작기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1978년 발굴 당시 출토된 마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춘 병사와 말이 줄지어...
3열 횡대의 선봉군 ⓒ 이상기
1호갱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체육관처럼 전망대를 만들어 놨다. 전망대는 조금 높은 곳에 있어 1호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1호갱의 군진을 보면 보병이 중심이지만, 말과 전차가 일부 편성된 군단임을 알 수 있다. 편제는 4개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앞에 선봉군이 있고 가운데 중군이 있고, 좌우에 수비군이 있고, 가장 뒤에 뒤쪽을 책임지는 후위군이 있다.

선봉군은 3열 횡대로, 매열마다 68명의 병사가 활과 노를 들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러므로 선봉군은 좌우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봉군 병사의 수는 204명이다. 선봉군 뒤의 중군은 9개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 개개 부대는 5m 깊이의 땅 속, 3m 높이의 토담 안에 4열 종대로 서 있다. 각 열마다 33명이 서 있고, 앞부분에 4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배치되어 있다.
1호갱 조망 ⓒ 이상기
말과 마차로 이루어진 전차는 보병과 연합 전술을 수행한다. 이곳 중군 병사는 창, 검, 과, 장창, 극, 노 등을 들고 있다. 좌우 수비군은 4열 종대로, 각 열에 38명의 병사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전투용어로 좌우익을 형성해, 적이 측면에서 공격하는 것을 막아준다. 군단의 후방을 담당하는 후위군은 적의 배후 기습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전망대에서 군진을 파악한 우리는 이제 1호갱의 북쪽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옆으로 가면 개개 병사용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사용은 신분에 따라 장군용, 장교용, 사병용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맡은 임무에 따라 궁병, 노병, 보병, 기병으로 나누어진다. 궁병과 노병은 활과 쇠뇌를 사용해 멀리 있는 적을 사살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군진의 맨 앞에 서서 적과 싸운다.
병마용 ⓒ 이상기
노병은 무릎을 구부리고 쏘는 궤사(跪射)노병과, 서서 쏘는 입사(立射)노병으로 나누어진다. 보병은 창, 검, 극으로 무장을 하고 백병전을 벌인다. 기병은 말을 타고 적을 공격하거나 마차를 끄는 병사를 말한다. 중국의 한족은 북방 기마민족에 비해 기병 운용능력이 떨어져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것은 뛰어난 기병 하나가 보병 10명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기병은 마차 기병 또는 안마(鞍馬) 기병으로 보인다.

병마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깨진 병마용의 복원 ⓒ 이상기
뒤로 가면서 보니 목이 빠진 병사용이 여럿 보인다. 자세히 보니 목을 별도로 제작해 끼워 넣었음을 알 수 있다. 1호갱의 앞부분 절반이 어느 정도 복원되어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뒷부분 절반은 아직도 수습과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연구원들이 땅속 토담 안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넘어져 깨어지고 부서진 도용의 파편을 주워 모아 원래의 형태로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넘어져 깨지고, 떡처럼 엉키고 붙은 흙덩어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 이들 조각을 맞추고 붙여 몸통을 만들고 줄과 끈으로 묶어 고정시킨 병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부는 머리도 끼워 넣었다. 교통사고로 부서진 몸을 외과수술로 봉합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들 모두에게는 번호가 붙어 있다. 앞부분에 오와 열을 맞춰 정연하게 서 있는 병마용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재배치되었을 것이다.
토담과 나무 기둥 ⓒ 이상기
일부 연구원은 현장을 측량하고 도면을 그리고 있다. 병마용의 수습과 복원도 중요하지만, 이들 병마용을 수용하고 있는 갱도의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의 모습을 확인하고 정확히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호갱은 동서 길이 230m, 남북 길이 62m의 장방형 구조물로 11개의 갱도가 있다. 갱도의 깊이는 5m이고, 바닥에 검은 벽돌을 깔았다. 갱도마다 3m 높이의 격리 토담을 쌓고, 가장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 서까래 모양의 각목을 평행하게 설치하고, 이를 토대로 천정목을 연결했다. 그 위에 다시 횡목을 덧대고 그 위에 황토를 덮었다. 그러므로 동서로 긴 형태의 집 또는 군막사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재 토담 기둥 위쪽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없다. 발굴과 복원을 위해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발굴을 통해 병마용들이 2000년 이상의 지하세상을 청산하고 밝은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채색 도용 ⓒ 이상기
그렇지만 그로 인해 병마용의 채색이 바래고 없어지는 문제점이 생겨나게 되었다. 병마용은 원래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청, 황, 홍, 녹, 갈색에 흑백이 결합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병마용은 대개 4단계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가장 먼저 태토를 가지고 병마용의 부분을 만든다. 사람은 크게 얼굴, 몸통, 손, 발과 다리로 이루어진다. 말은 몸통, 머리, 목, 귀, 사지, 꼬리로 이루어진다. 이들을 만든 다음 부분을 결합시켜 병용과 마용을 완성한다.

그 다음 이들 용에 채색을 한다. 다음이 1000℃ 내외의 고온에서 이들을 구워내는 일이다. 이처럼 병마용은 4단계 과정을 거쳐 도용(陶俑)으로 완성되었다. 병마용이 2000년 이상의 역사 속에서도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었던 것은 이렇게 도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처럼 훼손된 것은, 일부는 습기로 탈색되고, 일부는 전란으로 인해 깨지고 부서지고 불에 탔기 때문이다. 설사 20세기까지 채색이 유지되었더라도 발굴 후 자연적으로 탈색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병마용의 복원 ⓒ 이상기
사실 4, 5호갱의 발굴을 하지 않는 것도 고고학적 발굴과 복원기술이 좀 더 발달한 다음을 기약하는 측면도 있다. 아무리 고고학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발굴은 곧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곳 1호갱도 앞부분은 정연하지만 뒷부분은 발굴과 복원으로 어수선하고 휑한 편이다. 마치 운동장에 병마용을 세워놓은 것처럼 말이다. 

3호갱은 지휘부, 사령부에 해당하는 군막
4필의 마용 ⓒ 이상기
1호갱을 다 보고 나온 우리는 3호갱으로 들어간다. 3호갱은 凹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면적이 500㎡도 안 돼 병마용갱 중 규모가 가장 작다. 이곳에는 병용 66명, 마용 4필, 목제 전차 1승이 있다. 병용도 전투병이 아니라 호위병이다. 이들은 의장용 병기인 동수(銅殳)를 들고 요자형의 양 옆에 2열 또는 3열로 정렬해 있다. 그리고 요자형 가운데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지휘부 마차가 배치되어 있다.

그러므로 3호갱은 지휘부, 사령부에 해당하는 군막(軍幕)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군막을 자세히 살펴본다. 말과 마차 그리고 병사 중 마차는 현재 없다. 그것은 마차가 목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차가 놓였던 자리는 사각형이며 바닥보다 조금 높다. 마차 뒤로는 말과 마차를 다루는 어수용(御手俑)이 넷 서 있다. 어수용은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임금이나 장군이 탄 마차를 부리는 역할을 한다.
병마용 세트 ⓒ 이상기
네 마리 말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갈기와 귀 그리고 꼬리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이에 비해 호위병의 목은 상당수 떨어져 나갔고, 이들이 들고 있던 동수도 사라지고 없다. 또 깨지고 쓰러진 채로 놓여있는 병용도 여럿 보인다. 3호갱은 서쪽으로 들어가 내부를 한바퀴 돌아본 다음 동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갱을 나오면서 보니 1호갱 모형 세트를 만들어놓고 들어가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일부 관광객이 그곳에 들어가 포즈를 취한다. 그런데 이게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 판공처(辦公處)에서 일부 업자에게 특혜를 준 것인지, 아니면 국영으로 운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세트는 2호갱에도 만들어져 있다.
태그:#진시황병마용갱, #1,2,3호갱, #도용(陶俑), #채색용, #발굴과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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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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