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대차 하청업체 유성기업의 직장폐쇄 및 노조탄압에 맞서 투쟁하다 자살한지 91일째가 된 고 한광호씨의 서울시청앞 분향소를 양재동 현대자동차앞으로 옮기는 '꽃상여 행진’ 마지막 날인 6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본사 앞 기업상징석 앞에 도착해 분향소를 차리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과 충돌하고 있다.
 현대차 하청업체 유성기업의 직장폐쇄 및 노조탄압에 맞서 투쟁하다 자살한지 91일째가 된 고 한광호씨의 서울시청앞 분향소를 양재동 현대자동차앞으로 옮기는 '꽃상여 행진’ 마지막 날인 6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본사 앞 기업상징석 앞에 도착해 분향소를 차리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과 충돌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지난 7월 14일, 이제는 일주일 가까이 된 일이네요. 저는 여태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현대 자동차 본사 앞에 섰습니다. 일 분에도 자동차가 수십, 수백 대씩 지나다니는 큰 대로변에 있더군요.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현대 자동차 본사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거기엔 이른 아침부터 열을 맞추어 자리를 지키던 경찰들과 현대 자동차의 착실한 노무관리를 상징하는 듯한 어깨띠를 두른 직원들이 본사 건물 앞엔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아직도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노동자들 옆에 섰습니다. 바로 유성기업을 다니는 노동자들과 이에 여러 곳에서 함께 연대하는 노동자들의 옆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있지 않았더라면 한적하기만 했을 평범한 인도에 있더군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저는 유성기업 노동자들 옆에 서지 못했습니다. 지난한 세월을 거친 이들의 투쟁은 죽음으로 뜻을 남긴 한광호 열사에 대한 기억이자, 노조파괴를 일삼는 기업의 불의를 세상에 고한 용기이자,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이들이 일터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노동자들의 권리가 당연하지 않은 그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위해 피땀을 흘릴 때, 그저 평온한 일상에 만족하며 즐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서울광장에서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보았을 때 서명을 한 번 한 것, 청계천광장에서 유성기업 사태를 알리는 선전을 보았을 때 눈길을 한 번 준 것, 그것이 유성지회 문제를 대한 저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현대 자동차 본사 앞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 날은 바로 '부끄러운 선배 유시영 규탄과 유성지회 문제 해결을 위한 고려대 재학생/졸업생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유성지회 문제의 책임자인 유성기업의 회장이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66학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유, 정의, 진리를 내세우는 학교에서 당신은 뭘 배우셨습니까?

처음엔 고려대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가 의문이긴 했습니다. 제가 유성기업을 다니는 것도, 유성기업을 관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할 말도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노조탄압을 일삼는 것은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려대학교의 교훈은 자유, 정의, 진리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아주 대단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고려대를 다녔다면 누구나 자유, 정의, 진리. 세 단어는 아마 입학 후 졸업하는 순간까지 질리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문득 이 교훈으로 말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누군가 진리를 알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그게 무엇일지를 잘 모르겠으니까요. 혹은 정의의 편에 서달라고도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법에도 명시된 노동조합의 자유와 사람의 기본권만은 짓밟지 말라는 말은 유시영 선배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고려대학교 엠블럼
 고려대학교 엠블럼
ⓒ 고려대학교

관련사진보기


특히 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활동을 이어가면서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보긴 했습니다. 비현실적인 출퇴근 시간의 설정으로 실질적인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거나, 기계처럼 취급해서 살인적인 일정을 감당해야 한다거나, 인권 침해에 해당할 만큼 작업 현장에서의 불필요한 관리·감독으로 압력을 행사한다거나, 합법적으로 보장된 집회나 파업의 순간을 용역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한다거나, 민주노조를 분열시키기 위해 어용노조를 만들어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다거나...

이것은 아마 사람보다 이익이, 생명보다 효율이 먼저인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보이는 부끄러운 민낯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총체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유성지회 문제였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접하고, 그리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가장 분노한 이유는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요구가 너무나도 소박한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자고 낮에 일하겠다는, 주·야간 2교대의 일은 너무나도 고되기에 그렇게 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게으른 제가 아침에 10분 더 자려고 스스로에게 외는 생각이 떠올라 민망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소박한 바람을 유시영 선배가 책임지는 유성기업에서는 꼼꼼하고 무참하게 짓밟았습니다. 비인간적인 감시, 용역을 동원한 폭력, 고소/고발을 일삼고, 어용노조를 동원하며 벌인 온갖 압박은 잠은커녕 살려달라고 외쳐야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이건 유성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하게 자행된 노조탄압의 뒤에는 체계적으로 '노무관리'를 진행한 현대 자동차의 만행이 숨어 있었습니다(주고받은 메일 기록으로 정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더군요). 유성기업이 현대자동차에 납품한 것은 자동차 부품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 그리고 죽음까지도 사실은 현대 자동차에 납품된 모든 이윤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러니 "유시영이 책임져라, 정몽구가 책임져라"라고 말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제가 고려대학교를 사랑하는 애교심이 그렇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고려대라는 이름을 빌려서 이렇게 유성지회 문제가 있음을, 유성기업과 현대 자동차 같은 기업이 있음을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 부끄러운 선배가 있음을 알려낼 수 있다면, 이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모아낼 수 있다면, 이 일을 더 알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끄러운 선배 앞에서 떳떳한 후배가 되기 위해 당신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유성지회 문제와 관련된 유시영 회장의 부당노동행위 재판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22일에는 마지막 증인 신문이 예정돼 있습니다. 앞서 21일 대전고법은 유성기업이 노동조합 지도부 등 11명을 해고한 것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향후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를 위한 마땅한 판결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실종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세훈 시민기자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자유전공학부 정치외교학과 13학번입니다.



태그:#유성기업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