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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포스터.
 <부산행>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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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은 톨게이트에서 방역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또 무슨 일이냐"는 주민의 물음에 방역요원은 "뭐가 조금 샜다"고 답할 뿐이다. 아마 방역요원도 무슨 화학물질이 어떻게 샜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유출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약으로 방역하는 걸까?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한국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는다. 바이러스 유출로 인한 사고를 정부는 과격 폭력시위대의 행동이라고 발표한다. 밖에서는 불이 나고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데 정부는 잘 대처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방송만 되풀이한다. 결국 군대가 출동하고 시민들의 권리는 위축된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한국, 시민들은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체 어떻게 살아야 안전해질 수 있을까?

시민에겐 알 권리가 있다

수잔 헤이든(Susan Hadden)은 <시민의 알권리(A Citizen's Right to Know)>라는 책의 첫 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988년 10월 17일 오후, 텍사스의 작지만 매우 산업화된 도시에 살던 한 주민은, 창밖을 바라보다 동쪽의 큰 석유화학 공장 쪽으로 자욱하게 걸려있는 검은 구름을 발견했다. 그녀가 보고 있는 사이, 먹구름의 크기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악취가 나고 눈이 아프기 시작했다. 주민들을 위한 긴급 정보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라디오를 켰으나, 먹구름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불안함을 느낀 그녀는 시의 보건 당국에 전화를 걸었지만 시에서도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증상은 사라지고, 먹구름도 흩어졌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그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에 관한 짧은 기사가 실렸지만, 어떤 물질들이 방출된 것인지는 다루지 않았다.

보건 당국에 연락을 취하자, 보건 당국은 비상계획부에 문의해보라고 안내했고, 그렇게 다시 문의를 해본 결과, 방출된 물질에 대한 정보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그녀는 직접 그 공장에 전화를 걸었다. 공장은 해당 정보가 대중에 공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떤 물질이 불타고 있던 건지 이 시민은 알 수 있어야 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경우 정보는 언론을 통해 대중적으로 공개되어야 할까, 아니면 누군가가 수고스럽게 물어볼 때에만 알려주도록 해야 할까? 그리고 누가 정보를 공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할까? 정부? 아니면 공장의 운영진?

또한 화학물질의 이름만 공표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용도, 물리화학에 대한 부가정보까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걸까? 다시 돌아와서, 그러한 정보를 공공에 공개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번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수잔 헤이든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직접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위험한 화학물질의 양과 위치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거나 물질의 사용 결정에 영향을 미칠 방법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옥시의 가습기살균제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람의 목숨과 건강을 빼앗는 화학물질의 양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헤이든은 시민들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우리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유해화학물질은 무엇이고 얼마나 있는가?
2. 이 물질들은 환경 중으로 나오고 있는가? 내가 노출되어 왔는가?
3. 환경 중으로 유해화학물질이 나오고 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수준으로 내가 노출될 수 있는가?
4. 이러한 노출들이 나와 나의 가족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 또는, 만약 내가 증상을 가지고 있다면, 무슨 물질이 이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가?
5.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노출은 수용 가능한가?
6. 수용 가능하지 않다면, 이러한 노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나?
7. 배출이 저감될 수 있다면, 우리가 사업장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해야 하나? 우리는 사업장을 어떻게 해야 설득할 수 있는가?

인간이 하는 일이라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으니 사고가 터진 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위기상황을 관리하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위험한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 사전에 유해물질을 관리해야 한다.

좀비로 당할 것인가, 시민으로 살 것인가?

영화 <부산행> 스틸컷
 영화 <부산행>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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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3일에는 국회도서관에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 화학물질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시민단체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공익 감사 청구를 진행했지만, 감사원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알권리의 주체여야 할 시민들은 이와 같이 정부의 책임을 묻는 법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정보가 없고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없으니 '괴담'이 돌 수밖에 없다. 삼성 백혈병처럼 기업이 공개하는 정보를 믿을 수 없으니 '농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지역주민들이나 소비자에게도 다루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지역주민,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은 분리될 수 없다.

다시 영화 <부산행>으로 돌아가 보자. 영화는 좀비가 된 승객들과 그렇지 않은 승객들의 죽고 죽이는 혈투를 다루는데, 만약 승객들이 사고의 원인을 알고 사고 이후의 대처 방안을 미리 교육받았다면 어땠을까? 바이러스 치료제를 당장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타자를 먹잇감으로 내던지는 일은 줄어들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정부는 시민을 생존경쟁의 장 속에 내던지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시민의 알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부산도 결코 안전한 종착역일 수 없다.


태그:#부산행, #화학물질, #알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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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서 가입을 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기자라는 거창한(?) 호칭은 싫어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주로 책동네에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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