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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환 작품 가격 바닥인데도 경찰은 미술시장 판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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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경찰 수사처럼 작가에게 왜 진품인지 반문한 예는 없다. 또 재료의 화학성분표 제출을 요구한 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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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발표대로라면 전문 감정기관과 작가 확인도 무용지물이므로 앞으로 이우환 작품 감정은 경찰이 맡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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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으로 지목된 현씨가 TV생중계로 직접 작품을 그리게 하고, 압수작품과 비교해서 똑같다면 경찰의 주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우환 작가
 이우환 작가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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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이우환 학술심포지엄과 야외조각 일부 교체를 앞둔 세계적 작가 이우환. 최근 3년여에 걸친 위작 시비 사건에 시달리던 그의 건강 상태가 악화일로에 있어서 관련 미술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에 그려진 1970년대 구작그림 '점과선' 작품 13점이 위작 시비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의 손을 떠난 지 이미 반세기 가까이 흐른 작품들 얘기다. 그 당시는 작품이 잘 팔리지 않아서 일부는 작품값을 떼이기도 했다.

그렇게 흩어진 작품들이 작가와 무관하게 지금은 억대로 평가됐고, 이와 함께 위작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경찰은 위작으로 인한 고소고발이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언비어를 문제삼아 1년여 간의 지루하고 긴 수사를 한 끝에 작가를 배제한 채 13점 모두 위작이라고 발표했다.

그런 후에 작가에게 와서 보라고 했다. 이우환 작가가 작품을 본 뒤 모두 진작이라고 발표하자 경찰은 작가를 마치 피의자 다루듯 했다.

작가에게 왜 진품인지 반문한 경찰, 이런 예는 없었다

세계적 작가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위작인 줄 알면서 화랑과 담합해서 진작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발표한 경찰은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렸다.

3년여에 걸친 위작 시비로, 이우환 작품의 가격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도 경찰은 이런 미술시장의 판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말처럼 범인까지 체포했고 완벽하게 수사를 했다면 그렇게 종결하면 그만인 일을 왜 뒤늦게 작가를 끌어들여서 혼란을 가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미술품 감정의 통상적 실례를 한 번 살펴보자. 미술품 감정의 대상은 생존작가와 작고작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생존작가의 경우는 작가 우선 감정이고 작고 작가 감정의 경우 유족과 여타 인사에 앞서 감정위원의 의견이 우선이다. 이는 감정기관이 생긴이래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관례다.

이번 경우처럼 생존작가의 작품을 감정할 때는 작가의 화실을 방문해서 직접 의견을 구한다. 작가가 진품으로 인정하면 서명을 받고 진품감정서를 발행한다. 이번 경찰 수사처럼 작가에게 왜 진품인지 반문한 예는 없다. 또 재료의 화학성분표 제출을 요구한 적도 없었다.

경찰이 주장하는 재료의 분석은 실제 감정시 참고사항에 속하는데 이 점을 감정의 제1원칙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줄곧 '과학감정'만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와 같은 실무경험자에겐 퍽 낯설다.

이우환 작가가 어린애인가?

미술품 감정은 현물감정이 철칙이다. 사진이나 동영상 등은 애초에 접수 자격 상실로 접수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경찰에 압수되어 경찰이 모두 위작으로 발표한 13점 중에는 전문감정기관 감정서가 부착된 상당수의 작품과 작가확인서가 부착된 작품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경찰 발표대로 하자면, 전문 감정기관과 작가 확인도 무용지물이니까 앞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우환 작가 작품에 대한 진위 감정은 서울경찰청 지능수사대가 떠맡아야 되는 경찰로서도 퍽 부담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작가가 자기 작품을 직접 분별해 온 지금까지의 전례와 전문 감정기관의 존재 의미가 소멸된다면, 이번 사건이 어떤식으로 마무리되든간에 이후의 감정은 어디서 누가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최근 경찰은 이우환 작가의 주위 사람들이 '사주'했고, 그래서 작가가 본인의 생각과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는 황당한 얘기를 흘렸다.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이우환 작가가 어린애인가? 필자가 아는 바로, 이우환 작가는 한국에서는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을 사람이다.

외길 '마이 웨이(MY WAY)'로 세계 정상에 다다른 탓인지, 난 그가 그 누구의 말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너무나 박식하고 천재적인 인간이다. 아쉬운 것은 핀잔과 역정이 잦아서 주위 사람들이 말 걸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술계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미술품 감정에 임할 때 '자존심 지키기'나 '성과 쌓기'에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직 '진실'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 미술품 감정 초창기 일원인 필자는 이 자리에서 30여 년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해결점을 제언하고자 한다. 범인을 체포했다고 했으니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TV 생중계로 직접 작품을 그리게 하고, 압수 작품과 비교해서 똑같다면 경찰의 주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언젠가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했을 때 세계적 명성을 얻은 팔십노구의 작가를 책상에 앉아서 불러들이는 대신 작품을 들고 화실을 직접 찾아가서 소견을 듣는 품격있는 경찰을 꿈꿔 본다.

덧붙이는 글 | 신옥진 기자는 부산공간화랑 대표입니다.



태그:#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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