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

포토뉴스

기자들에 둘러싸인 손학규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2일 오후 광주 금남로공원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빛고을 문화한마당' 행사에 참석하며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 남소연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된 추미애 대표는 당선소감 도중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야권 대선주자의 6명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읊던 추 대표는 4번째 손학규 전 상임고문 이름을 부른 뒤, 갑자기 "듣고 계시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부겸 의원님, 문재인 전 대표님, 박원순 시장님, 손학규 전 고문님, 듣고 계시죠? 안희정 지사님, 이재명 시장님, 대선경선 중심 잡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추 대표는 왜 손 전 고문 이름 뒤에 "듣고 계시죠?"라는 말을 남겼을까.

같은 날,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오전 중 강원 지역위원장들과의 일정을 마치고, 오후 손 전 고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KTX를 타고 광주 송정역에 도착한 박 위원장은 곧장 전남 강진으로 차를 몰았다. 공식 일정은 아니었지만, 박 위원장은 손 전 고문을 만난 뒤 "국민의당에 들어와 정권 교체를 도와달라고 제안했다"라며 면담 내용을 공개했다.

이날 박 위원장이 손 전 고문을 만난 시점과 추 대표가 당대표에 오른 시점은 대략 엇비슷했다. 추 대표가 손 전 고문 이름을 부른 뒤 "듣고 계시죠?"라는 말은 남긴 것에는, '지금 만나고 계신 분은 아닙니다'라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강진행' 박지원, "꾸준히 소통" 추미애
기자들에 둘러싸인 손학규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2일 오후 광주 금남로공원에서 열린 지지자 모임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빛고을 문화한마당' 행사에 참석하며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 남소연
이처럼 최근 손 전 고문을 향한 야당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손 전 고문의 현재 당적이 더민주임에도, 국민의당은 그에게 꾸준히 구애를 보내고 있다. 손 전 고문도 국민의당의 제안에 수락도, 거절도 아닌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그의 거취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박 위원장이 손 전 고문을 만난 다음 날(지난달 28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곧장 손 전 고문이 있는 강진 백련사를 찾았다.

안 전 대표 측은 "손 전 고문의 토담집에서 1시간 환담을 나누고,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배석자 없이 말씀을 나눴다"라고 밝혔다. 구체적 메시지는 없었으나 전날 박 위원장이 손 전 고문을 만나 '정권 교체를 도와달라고 제안했다'는 말을 통해, 두 사람이 "배석자 없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나무' 아래 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2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한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식수한 동백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왼쪽은 이날 묘역에 동행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 ⓒ 남소연
추 대표도 지지 않았다. 1~2일 광주에서 일정을 소화한 추 대표는 2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손 전 고문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제가 (당대표에 당선된 뒤) 전당대회를 막 마치고도 손 전 고문께 전화를 드려 '우리 당의 상임고문이시고, 당을 지도해주셔야 하고, 또 주목받는 대선주자이기 때문에 제 협력이 필요하면 제가 적극 협력하겠다'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그렇게 해달라' 답변을 주셨다."

그러면서 추 대표는 "제가 국민통합을 위해 상징적인 분을 언제라도 만나 뵙자고 청할 수 있는 것처럼, 안 전 대표와 손 전 고문도 그럴 수 있는 거다"라며 국민의당이 손 전 고문과 접촉하는 것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손학규의 고민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오른쪽)와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21일 오후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손 전 고문은 2일 광주에서 지지자들을 만나는 행사에 참여해 "우리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말씀 드린다"라며 대선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관련기사 : 손학규 "나라 구하겠다는 마음" 대선 도전 선언).

하지만 당적과 관련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행사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손 전 고문은 당적 관련 질문을 여러 차례 받고도 "할 이야기가 없다", "오늘 여기서 말씀드릴 사안이 아니다"라며 답을 피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손 전 대표 측 관계자는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라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손 전 고문의 고민은 이미 결정을 내린, 혹은 누구나 예상가능한 대선이 아닌, 현재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운 당적인 셈이다.

어쨌든 손 전 고문에게 대선은 목적이고, 당적은 수단이다. 반대로 더민주나 국민의당 입장에서, 손 전 고문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는 추미애 대표와 최근 강진까지 찾아간 박지원 위원장의 머릿속에, 손 전 고문은 어떤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을까.

더민주와 국민의당에는 모두 문재인, 안철수이라는 당내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 그리고 친문, 친안이라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 존재한다. 더민주는 이번 지도부 구성을 통해 이 점을 재확인했고, 국민의당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안철수당'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대선주자 혹은 당의 확장성을 고려해볼 때, 손 전 고문은 친문 혹은 친안 일변도의 당 분위기를 희석시킬 수 있는 좋은 카드다. 이는 중견의 손 전 고문이 대선주자로서 단순한 1/n일 뿐만 아니라 상수가 아닌 변수, 동등한 경쟁자가 아닌 페이스메이커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명이 손 전 고문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처한 현실이자, 손 전 고문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손학규의 '대선 도전 선언', 이제 새롭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6일 오후 전남 목포시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 평화의밤 콘서트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주자의 경쟁력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 또는 새로움을 기반으로 한 기대감에서 나온다. 더민주 대선주자 6명을 이에 대입해보면 문재인(국민의당의 경우 안철수)은 전자, 김부겸·박원순·안희정·이재명은 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미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는 손 전 고문은 새로움, 기대감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같은 말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파급력이 달라진다. 김부겸·박원순·안희정·이재명의 대선 도전 선언에 비해, 손 전 고문의 대선 도전 선언은 대중에게 새롭지 않다. 그렇다고 손 전 고문이 문 전 대표처럼 압도적인 지지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호남 지역 국민의당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은 안정적 고착현상에 처해 있다"라며 "세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지만, 동시에 확장할 가능성도 낮다"라고 지적했다. 더민주의 한 비주류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은 새롭지 않다. 그렇다고 광폭 행보를 보이거나 독창적 아이템을 내놓는 등의 상황 역전을 위한 노력도 찾기 어렵다"라며 비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2일 광주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손 전 고문에게는 상황을 자꾸 재는 이미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손 전 고문은 당적을 정하는 데 힘을 소비할 때가 아니다.
'오월정신' 다시 새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 지도부가 2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을 참배한 후 묘역내 민주관에서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 남소연
태그:#손학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대선
댓글4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