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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 방글라데시, 사헬

지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라 가운데 훗날 역사가 가장 짧은 나라로 기록될 곳은 어디일까? 알 수 없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아마도 투발루가 아닐까 싶다. 투발루는 남태평양에 있는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섬나라다. 이 나라는 목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이 나라를 이루는 9개의 섬 가운데 이미 두 개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 50~70년 안에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높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일으킨 해수면 상승 탓이다. 이제 투발루 사람들은 시급히 다른 나라로 이주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인근 국가인 호주나 피지는 이들의 유입을 꺼린다. 투발루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건 아직 4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78년이다. 이 나라의 역사는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 또한 재앙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나라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한 강들이 서로 만나 인도양 벵골 만으로 흘러드는 삼각주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삼각주란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어귀에, 강물이 운반해온 모래나 흙이 쌓여 이루어진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문제는 삼각주의 땅 높이가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거나 해수면이 높아지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이런 지역에 최근 초대형 홍수가 자주 덮치고 있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10만 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적이 있을 정도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다. 온난화로 히말라야 산맥의 거대한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방글라데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강물의 양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해수면 상승이 겹쳤고 태풍마저 자주 들이닥친다. 2050년이면 전 국토의 17%가 침수돼 무려 2000만 명이 살 곳을 잃을 것이라 한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아프리카에는 사헬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사하라 사막 남쪽 가장자리에 동서로 길게 뻗은 띠 모양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수량 변화가 심하고 가뭄이 잘 드는 게 이곳의 기후 특성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기 사람들은 초원에서 가축을 키우며 유목생활을 하거나 강을 따라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 물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30년 사이에 이 지역 강수량이 평균 30%나 줄어들었다. 그 탓에 안 그래도 고달픈 이곳 사람들의 삶이 더욱 위태로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서도 주범은 기후변화다. 이 지역에 내리는 비의 원천은 서쪽 대서양에서 유입되는, 습기를 가득 품은 밀도 높은 공기다. 이 공기가 머금은 풍부한 수증기가 구름을 만들어내 비를 뿌린다. 한데 기후변화로 대서양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공기 밀도가 낮아졌고, 그 바람에 이 공기가 사헬 지역으로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이곳 사람들과 가축들은 어디를 떠돌며 살아가야 할까?

머지 않아 사라질 나라들, 나라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머지 않아 사라질 나라들, 나라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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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투쟁은 민주주의 투쟁이다

오늘날 생태위기를 상징하는 게 기후변화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단순히 자연에만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삶과 생존 또한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새겨야 할 사실이 있다. 기후변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공평하지 않다는 게 그것이다. '기후 난민'이란 말이 있다. 기후변화로 살아가기가 힘들어져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투발루와 방글라데시와 사헬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항변한다.

"우리한테 무슨 죄가 있죠? 기후변화를 일으킨 건 산업화를 먼저 이룬 잘사는 선진국들인데, 그 피해는 왜 가난한 우리가 몽땅 뒤집어써야 합니까."

그렇다. 기후변화는 공평하지 않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그간 펑펑 내뿜어온 것은 이른바 선진 산업국들과 잘사는 사람들이다. 세계 인구의 20%에 불과한 선진국 사람들이 지구 전체 에너지와 자원 소비의 80%를 차지한다. 세계 전체 인구 70억 가운데 약 5억 명의 부유한 사람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온실가스의 절반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피해가 가장 직접적이고 대규모로 집중되는 곳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이다. 그런 곳에서도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투발루, 방글라데시, 사헬 사람들이 그렇듯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너무나 보잘것없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온당한가? 뿐만이 아니다. 불공평은 나라나 지역이나 계급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대 사이에도 있다. 에너지 소비로 풍요와 편리와 안락을 누리는 건 현세대다. 하지만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피해와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부담을 갈수록 더 크게 떠안아야 하는 건 미래세대다. 이 또한 온당한가?

이렇듯 기후변화는 중대한 환경문제인 동시에 정의와 평등의 문제가 깊이 아로새겨진,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사안이다. 이는 곧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의와 평등은 민주주의가 이루고자 하는 핵심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무릇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란 말의 그리스어 어원에 따른 본래 뜻은 '인민의 자기 지배'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건 무슨 말인가? 간단히 말해 그것은 자기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 또는 적어도 그런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 민주주의의 으뜸가는 본령이 이것이다. 한데 투발루와 방글라데시와 사헬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 건 누구인가? 이들의 삶을 저토록 절박하고도 비참한 수렁에 빠뜨린 건 누구인가? 기후변화는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그래서다. 기후변화의 해법을 찾는 데서도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놓쳐선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성익님은 환경 저술가입니다.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습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투발루 , #온난화, #기후변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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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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