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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 이아무개씨가 해고되기 전 불리한 근로 계약 체결 강요 등에 항의하며 1인시위를 하는 모습.
 해고자 이아무개씨가 해고되기 전 불리한 근로 계약 체결 강요 등에 항의하며 1인시위를 하는 모습.
ⓒ 해고자 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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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을 초과하여 사용하는 경우, 그 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로 본다.'

지난 2007년 만든 비정규직 보호법 핵심 내용이다. 이 내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켜야 할 공공기관인 '안양시청소년육성재단(아래 육성재단)'이 오히려 이 법의 취지를 무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법 제정 당시, 기간제 노동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기 위해 사업주가 2년이 되기 전 근로계약을 파기할 것이란 우려가 높았었다. 그 우려를 육성재단이 현실로 만들었다.

육성재단은, 11년간 근무해 이미 무기계약직인 방과후 지도자와 '무기계약직 전환'이 코앞인 방과후 지도자를, 불리한 내용이 있는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해임했다. 사회적 비난 때문에 사기업에서도 자제하는 일을 공공기관인 육성재단이 자행한 것이다.

육성재단은 안양시 산하기관이다. 이필운 안양시장(새누리당)이 이사장이고, 정홍자 전 도의원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11년 간 일했는데, 올해 말 계약 만료 계약서 강요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방과후 지도자 업무.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게 방과후 지도자 업무.
ⓒ 해고자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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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이는 김아무개씨(40대, 여)와 이아무개씨(20대, 여)다. 김씨는 11년간 육성재단 산하 만안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 방과후 지도자로 일했다. 가정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게 그의 업무다. 아이들은 이들을 '샘(선생님)'이라 부른다.

김씨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작성한 근로 계약서와는 다른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7일 오후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올해 말이 계약 만료라는 내용 등이 있어, 이미 무기계약직인 내겐 무척 불리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근로계약서 1조는 그에게 무척 불리했다. '2016년 1월 1일~2016년 12월 31일'을 계약 기간으로 정했다. 거기에, 예전 계약서에는 없는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사업 종료 시 계약 기간과 관계없이 근로계약을 종료함'이라는 단서까지 붙였다. 무기계약직 지위를 포기하라는 강요가 담긴 계약서이다.

이씨 역시 "저를 해고하겠다는 계약서라서 서명을 할 수 없었다"고 8일 오후 기자와 한 통화에서 밝혔다. 실제로,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는 9월 1일(계속근로 2년 되는 날) 전날인 8월 31일을 계약 만료일로 정해, 2년이 되기 전 계약을 만료(해고)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근로계약서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이들을 포함해 총 6명이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자 육성재단 측은 복무점검 등을 이유로 재단 자체감사를 진행하며 압박했다. 그러면서 서명을 여러 차례 독촉했는데, 그래도 끝내 서명을 하지 않자 김씨 등 6명을 성실의무, 직장이탈 등의 사유로 징계위원회에 넘겼다.

해고 사유도 불합리, 그나마 형평성도 없어

기간제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 근로계약서 등 서류.
 기간제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 근로계약서 등 서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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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중, 1차 징계위원회(8월 25일)가 열리기 전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뜻을 전달한 2명은 징계를 당하지 않았다. 지난 8월 29일 2차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 서명할 뜻을 밝힌 방과후 지도자는 감봉처분을 당했고, 끝까지 서명하지 않은 김씨와 이씨는 지난 8월 31일 자로 해고를 당했다. 이들의 해임 사유는 계약 미체결, 재단 명예훼손, 근태 불량이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고를 당한 김씨는 "해고 이유도 불합리한데, 그나마 형평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계약 미체결 사태의 주동자라 판단해 미운털을 박았고, 이 선생은 계약 체결을 강요하자 시청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그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을 것"이라 추측했다.

해고를 당한 김씨와 이씨는 "끝까지 투쟁해서 꼭 복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기간제 노동자 해고 사태에 대해 김상봉 안양군포의왕 비정규직센터 상담소장은 7일 오후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법에 따라 보호를 받아야 할 기간제 노동자를, 이들을 지켜야 할 공공기관이 굉장히 미흡한 이유로 해고한 사건"이라며 "비정규직 보호법과 헌법 가치를 무시한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육성재단 관계자는 8일 오후 기자와 한 통화에서 "안양시나 우리(육성재단)나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만들기는 부담스러운 점이 있다"며 무기계약직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근로계약 체결을 강요한 사실을 인정했다.

"(근로계약서에) 예전과 다른 단서 조항 등 불리한 내용이 있다"는 해고 노동자 주장에도 반박이나 해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성가족부에서 내려온 그 사업(방과후 아카데미) 하느라 고용한 분들이라, 그분들도 사업 종료되면 일(일자리)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6명 중 1명이, 근로계약서에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이유를 묻자 "징계위원회 위원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태그:#안양청소년육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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