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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말] '내 저울의 추'
기자가 이 연재의 기사를 쓰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은 '내 저울의 추'에 대한 문제다. 오래 전 베이징에서 만난 당시 93세의 독립운동가 이명준 선생은 "이 세상에 '진선진미'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선과 악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그 비율이 7:3이냐, 5:5냐, 3:7이냐가 문제다"라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을 들려주신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내 마음속에는 선과 악의 요소를 다 지녔으며, 아울러 빛과 그림자도 다 지니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와 같은 필부들로 다만 내가 그때 그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는 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피차 삶의 궤적은 많이 변했으리라 믿는다. 이 기사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특히 국군 병영문화를 개선하는데 이바지하기를 빌며, 등장인물은 단지 기사의 글감으로 썼음을 밝힌다.

제1화 소갈머리 없는 친구

수문 초소에서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후 오침 중인데 안 하사가 잠을 깨웠다.

"소대장님! 빨리 일어나 중대장 막사 뒤 숲으로 가 보세요."
"왜? 무슨 일이야?"
"유 하사가 소나무에 묶인 채 중대장님한테 탄띠로 맞고 있습니다. 그냥 두다가는 죽거나 불구 되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후딱 일어나 군화 끈을 맸다. 안 하사가 곁에서 계속 말했다.

"간밤 초소에서 순찰하던 중대장님에게 걸렸대요."
"그래?"

소대원들이 방한복이 지급된 날 한강 하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다(왼쪽에서 첫번째가 유 하사, 네번째가 기자다. 1969. 12.) 강건너 산하가 북녘 땅이다.
 소대원들이 방한복이 지급된 날 한강 하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다(왼쪽에서 첫번째가 유 하사, 네번째가 기자다. 1969. 12.) 강건너 산하가 북녘 땅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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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곧장 중대장 막사 뒤로 뛰어갔다. 유 하사는 우리 소대 3분대장으로 전남 순천 출신이었다. 그는 가난한 농사꾼 부모 밑에서 자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사를 짓다가 입대한 녀석으로 술을 몹시 좋아했다. 그는 군 복무 중에 술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장기복무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는 다달이 받는 장기 하사봉급을 자신과 동료 전우들의 술값으로 죄다 써버리는 인심 좋은, 한 편으로는 소갈머리 없는 친구였다.

내가 중대장 막사 뒤에 이르자 중대장은 유 하사의 사지를 소나무에다 묶어 놓고 본격으로 탄띠를 휘두를 참이었다. 인기척에 중대장은 뒤돌아 탄띠를 치켜든 채 나를 노려봤다.

비명

"중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나는 중대장 앞을 막아섰다.

"박 소위는 저리로 가! 저 새끼!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깐."

중대장의 눈빛은 살기가 등등했다. 그냥 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유 하사는 소나무에 묶인 채 계속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질렀다.

"왜 이러시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겠습니다."
"야! 박 소위, 너 소대원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2소대 놈들은 죄다 군기가 빠졌어!"
"네엣?"

중대장은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나에게 화살을 돌렸다.

"간밤에 순찰을 도는데 저 새끼가 외딴집 주막으로 내려가잖아. 그래서 내가 불러 세웠지.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볏짚을 얻으러 간다는 거야. 둑 밑에는 짚더미가 지천으로 많은데 왜 하필 그 집이야. 저 새끼가 술 처먹으러 그 주막에 간 거야. 근데 저 새끼는 아니라고 딱 잡아떼잖아!"

그러자 유 하사는 발악하듯 외쳤다.

"중대장님! 그게 아니라우."

유 하사는 나에게 애소했다.

"소대장님! 날씨가 하도 추워 짚을 구하러 가는데 중대장님이 불러 세우더니 대뜸 주먹이 제 얼굴로 날아왔어요. 언 얼굴에 한 대 맞으니까 하도 아파서 제 총으로 중대장님 주먹을 막았을 …."

그러자 중대장은 유 하사의 말을 막았다.

"뭐! 너, 이 새끼! 아직도 입은 살아있어! "

이건 린치다

그러면서 중대장은 유 하사에게 치켜든 탄띠를 휘두를 작정이었다. 그 순간 내가 중대장의 탄띠를 잡았다.

"야, 박 소위 너 누구 편이야. 저 새끼가 총으로 나를 겨눴어. 나를 죽이겠다고 말이야. 저 새끼 총에서 노리쇠 소리가 분명히 났어. 내가 선수를 치지 않았더라면 난 저 새끼 총에 맞아죽었을 거야. 근데 넌?"

중대장은 계속 식식거렸다.

"소대장님! 전 억울합니다."

유 하사는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주먹으로 몇 차례 맞은 것 때문에 입에서 피를 쏟으면서 울부짖었다. 나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중대장의 탄띠를 낚아챘다.

"중대장님! 이건 린치입니다. 이걸로 유 하사를 치면 죽습니다. 부하를 이렇게 다루지 마십시오. 유 하사가 정히 그랬다면 군사재판에 회부하십시오."
"뭐, 너 이 새끼! 네가 그 따위로 소대원들을 교육시켰으니 졸병 놈의 새끼들이 겁 없이 기어오르지, 린치? 군사재판? 너 이 새끼, 대학 나왔다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 법 좋아하네."

중대장은 화를 이기지 못한 채 내게 발길질을 했다. 마침 그 순간 중대 행정반 남 병장과 멀리서 지켜보던 안 하사가 달려와 중대장을 끌어안고 그의 막사로 데려갔다. 강철 중대장은 자기 막사로 끌려가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안 하사와 함께 소나무에 묶인 유 하사를 풀어 준 뒤 부축하여 소대 막사로 돌아왔다.

제2화 화생방교육

상급부대에서 장교 화생방교육 차출이 내려왔다. 단기복무 장교보다 장기복무 장교가 그런 교육을 받아야 더 효율적임에도 중대장은 굳이 나를 지명했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에 있는 하사관학교에서 2주간 교육이었다. 지참물은 완전군장이라 하여, 내 개인소총과 배낭을 꾸려 교육장으로 갔다.   

나는 부대 앞 민간 집에 하숙을 정한 후 부대로 출퇴근을 하면서 하루 8시간씩 교육을 받았다. 그 일대는 한탄강 부근이라 경치도, 민간 하숙집의 아침저녁밥도 좋았다. 점심은 장교식당에서 먹었는데 삼시 세끼 자대에서보다 밥상이 더 훌륭했다.

아무튼 교육기간 중에는 홀몸이라 자대에서보다 심신이 더 편했다. 교육 중에도 그야말로 '국방부 시계침'은 돌아갔다.

화생방 교육은 2주차 토요일 오전 10시에 끝났다. 다음날 일요일 저녁에 자대로 귀대하면 되었기에 1박 2일 외출은 법적으로도 허용된 셈이었다. 그래서 교육생들 대부분은 그 외출외박을 즐기고자 전곡 버스터미널에서 서울 종로5가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나도 그 버스를 타고 종로5가에서 내렸다. 마침 완전군장 차림이라 거추장스러워 가까운 친구집에 맡기고자 한일극장(동대문 광장시장 건너편) 앞을 지나는데 한 카투사(KATUSA) 사병(일병) 한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실실 비웃고 있었다.

사실 나는 외출 중에 결례를 하는 사병들을 가능한 일부러 붙잡아 주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그 녀석의 비웃는 모습은 내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다. 아마도 새파란 육군 소위가 완전군장으로 서울 시가지를 활보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아주 불쌍해 보이거나, 대단히 못난 '육군 땅개'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카투사(KATUSA)

'카투사(KATUSA)'는 주한 미군부대에 배속된 한국군으로, 주한 미군의 부족 병력을 보충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부 카투사들은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지위에 오른 듯, 특권의식을 가지고 치외법권적 행동을 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근대사에서 조선이 망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 '임오군란'을 들 수 있다. 이 임오군란의 원인은 조선 정부가 신식군대인 별기군만 우대하고, 구식 군인들에게는 월급도 제대로 지급치 않는 차별대우에서 비롯됐다.

1882년 임오년 6월에 구식군인들이 1년이 넘게 월급을 받지 못한 데다가 선혜청에서 겨우 받은 한 달치 곡식 월급에도 겨와 모래가 절반 이상 섞여 있자 마침내 구식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 군란에 일부 도시 하층민까지 가담하면서 군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군란의 주동자들은 정부 고관과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다.

이에 민씨정권은 청에 군대 파견을 요청하여 청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주둔케 되는 빌미를 우리 스스로가 제공한 셈이었다. 이때 청군이 용산에 주둔한 이래, 용산은 동학농민전쟁 때부터 일본군, 해방 후에는 미군들의 주둔지가 되었다(2006년에야 용산 기지는 비로소 반환됐다).

한편 조선은 일본을 달래기 위한 그 후속조치로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선은 이 조약에 따라 일본에 막대한 배상금(50만 원)을 지불하고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인정하여, 이로써 청일 양국군이 동시 조선에 주둔케 됐다. 이 임오군란의 파장은 결국 조선이 망국으로 가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쟁 후 일부 카투사 병들의 지나친 우월적 태도는 같은 의무 복무로 군대생활을 하는 일반 병들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국군 장교에게마저도 경례는커녕 빤히 쳐다보고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나는 그가 숫제 외면한 채 그대로 지나쳤다면 못본 척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힐끔힐끔 쳐다보며 조소하는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를 불러 세웠다.

"귀관!"

그러자 그는 나를 쬐려보면서 곧장 덤비려는 자세로 가죽장갑을 매만졌다. 그러면서 나를 계속 빤히 쬐려보며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귀관은 어느 나라 군인인가?"
"…."

그는 계속 비웃고 있었다.

"미군도 한국군 상급자를 보면 경례를 하는데…."
"못 봤습니다."

헌병이 나타나다

"그럼 지금은?"
"…."

"이제 봤으면 경례를 해 봐!"
"…."

그는 그래도 경례를 하지 않고 자기 장갑을 매만졌다. 잠깐 새 지나가던 행인이 대단한 구경거리를 만난 양 우르르 몰려들었다. 육군 소위와 카투사 일병이 길거리에서 서로 치고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불상사가 벌어진다면 아무튼 상급자가 망신이 아닌가. 그런데, 그가 그제라도 거수경례를 하면 쉬 끝날 일인데, 그는 계속 나에게 조소를 보내면서 끝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카투사들의 식사시간
 카투사들의 식사시간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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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인파를 헤치고 한 헌병이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거수경례를 한 뒤, 나와 카투사가 대치 중인 영문을 물었다.

"장교님! 무슨 일입니까?"
"저 카투사 일병이 보다시피 나에게 기분 나쁘게 쳐다보며 결례를 했소. 그래서 지금 내가 주의를 주고 있소."

나는 그 말을 마치고, 곧장 카투사 일병에게 훈시했다.

"야! 봤지? 헌병도 나에게 경례하는 걸."

그제야 카투사는 자세를 고쳤다. 헌병은 그 자리에서 카투사 일병에게 지시했다.

"야, 차렷! 장교님에게 경례!"

그 카투사 일병은 헌병의 구령에 따라 마지 못해 나에게 경례를 했다. 나는 그의 경례에 거수로 답례를 했다. 헌병이 나에게 말했다.

"장교님! 제가  알아서 저 일병을 더 교육시킬 테니 어서 볼 일을 보십시오."
"알았소. 그럼, 수고하시오."

나는 헌병의 경례에 답례를 한 뒤 그 자리를 씁쓸히 떠났다. 

'순수 토종'들의 수난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면 북쪽에서는 소련군에게 빌붙은 자들이 폼을 잡았다. 남쪽에서는 미군부대에 '따까리' 노릇하며 햄이나 버터를 얻어먹는 자들이 폼을 잡으면서 김치를 먹는 토종들을 우습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그저 순수 토종들은 한반도에서 비빌 언덕이 사라지거나 설 자리조차 점점 잃어갔다. 그런 역사가 지금도 여태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다.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 조지훈 '봉황수'

한 시인은 큰나라를 섬기다가 끝내 퇴락해 버린 고궁을 바라보며 우국충정을 읊었다. 아마도 강화도조약 이후 동족을 업신여기고 강대국을 숭상하는 사대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나 보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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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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