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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www.igt.or.kr)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녹색 전환의 다양한 상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녹색의 시각으로 새롭게 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지난 8월 27일에는 '장애여성공감'의 사무국장이신 이진희님을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녹색전환연구소>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기자 말

올해 여름은 유독 뜨거웠다. 하지만 폭염도 여름휴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은 역대 최대 이용객을 기록했다. 휴가 때 멀리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매년 늘고 있다. 우리가 즐겨 쓰는 "바캉스(vacance)"는 프랑스어로 휴가라는 뜻이다. 이는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가 어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꿈꾸며 일터를 떠나고, 거주지를 벗어나고, 심지어 국경까지 넘나드는 시대다. 전지구적인 이동이 자유로워졌지만 모두가 이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런 이동이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도 아니다.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의 휴가에 대해서 "짐싸기로 시작해 짐싸기로 끝나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몸을 이동하기 위해 저마다 챙겨야 할 물건들을 나열해 보면 그 사람의 현재 모습과 더불어 그 사회의 일면을 유추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번 시간에는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사무국장을 만나서 우리 사회의 장애/젠더와 관련된 녹색전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
ⓒ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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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로 들끓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냈을지 궁금하다. 여름휴가는 다녀오셨는지?
"나는 얼마 전에 휴가를 다녀왔다. 이번에 너무 더워서 사무실로 휴가 오는 회원분들도 있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휴가를 떠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장애 유형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멀리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렇기에 장애여성의 휴가는 짐 싸기에서 시작해 짐 싸기로 끝나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여성에게는 욕실에 들어갈 때 깔판이 필요하고 화장실로 이동하기 위해서 작은 의자가 필요하다. 자기 신변을 유지하기 위해 챙겨야 할 물건들이 많다."

-여름휴가의 경우 바닷가, 수영복 이런 것들을 많이 떠올리게 된다. 확실히 일상에서보다 더 몸을 많이 드러내는 장소와 복장들이다. 비장애여성들 중에도 수영복을 입는다던지 하는 평소와 다른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꽤 많다. 그만큼 여성에게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다양한 제약과 선입견에 맞서야 하는 행위이다. 이는 장애여성에게는 더 큰 억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해변처럼 비일상적인 공간에 가게 되면 이전보다 내 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때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냐가 정말 중요하다.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가는 '장애여성공감 캠프'에 처음 갔을 때 놀랐던 것은 그곳에서 몸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나도 내 몸이 남에게 보이는 걸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 그런데 캠프에 갔을 때 생애 처음으로 바닷가에 온 장애여성이 휠체어전동차 없이 못 들어간다고 하셔서 그분을 튜브에 앉는 걸 돕고 같이 바다로 들어가는 보조를 맞췄던 경험이 있다. 그분은 바다가 처음이라 두렵고, 나 역시 물을 무서워하던 사람이었고, 서로 옷은 막 젖고, 거기다 그분은 휠체어에서 분리돼서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런데 누가 날 어떻게 볼지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 용기가 나는 거다. 그분과 나는 그때 외부시선 신경 안 쓰고 바닷가에서 몇 시간씩 재밌게 놀았다.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는 '짐 싸기' 다음으로 장애여성이 휴가를 갈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퀴어축제에서 회원들과 함께
 퀴어축제에서 회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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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언급한 캠프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어떤 곳인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우리는 장애여성 인권운동 단체다.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의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위해서 어떤 실천과 연대가 필요할지 고민한다. 장애여성의 권리 확보나 장애여성 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장애여성의 관점이라는 것이 그저 장애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래서 넓게는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그 밖의 다양한 것들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장애단체들도 각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장애여성공감'의 경우 "여성운동"이 주요 이슈다. 이렇게 장애여성단체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장애여성의 독자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필요성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당시 장애인운동 안에서 장애여성의 존재나 의제는 전체 의제의 일부로 뭉뚱그려져 있었다.

그러면서 장애여성들의 입장이나 의견들은 전체 안에서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 되거나 당사자들의 뜻에 맞지 않게 가공되고 활용되는 일들이 생겼다. 장애여성들은 자조모임 등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가시화시키고자 했지만 기존의 운동 영역 안에서는 남성장애인이 항상 중심이 되었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독립적으로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지금은 장애여성단체도 여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있다면 무엇일까.
"장애와 젠더(성별)의 교차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점이다. 장애여성운동은 장애인운동 안에서 성별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독자적인 힘과 목소리가 왜 필요하고 이런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장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독자성이라는 것이 우리 단체만 홀로 무엇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장애와 젠더를 교차해보겠다는 새로운 시도로서 독자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장애여성공감'에는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매력이 있다. 기존의 어떤 형식적인 틀이든, 내용적인 틀이든, 그 틀을 벗어나 새로운 역사성이나 맥락을 만나게 되면 과감히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도전이 이곳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단체의 정체성은 현재 그곳에 누가 활동하는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장애여성공감'의 직원(활동가)과 회원들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활동가는 항상 그 비율을 반반씩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은 비장애여성이 조금 많다. 회원은 발달장애여성의 참여가 최근에 많이 늘어나서 장애여성이 좀 더 많은 편이다."

-공식 사이트(www.wde.or.kr)에 들어가 보니 사무국 외에 부설단체도 여럿 있는 것 같았다.
"'장애여성공감'은 법인사무국과 부설센터인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이렇게 3개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활동가는 17명이다.

문제의식을 따라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할 일이 늘어나는데 이걸 혼자 다 할 수는 없으니까 같이 할 동료들을 찾게 되고, 그러다 주변에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렇게 점차 늘어났다."

-단체가 커지고 같은 가치관을 갖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에 따른 문제에도 부닥치게 된다. 인건비나 사업소 임대료, 사업 진행비 등 회원들의 후원비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경제적인 문제들은 없었나.
"우리가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경제적인 뒷받침은 그동안 장애인운동을 통해 치열하게 싸운 역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장애인 권리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싸움들 속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여성장애인어울립센터사업 등 장애인을 위한 제도들이 조금씩 생겨났다. 활동지원금(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는 서비스; 보건복지부 관할) 제도가 그렇고 몇몇 장애인지원 사업들이 있다.

또한 우리의 성장은 단순히 제도에 의한 사업의 확장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장애여성들이나 우리 회원들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장애여성공감'답게 운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욕구만으로 일이 되는 게 아니니까 어떤 방식으로 일을 구조화시킬지, 회원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해야 할지를 계속 고민해 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하는 방식 안에서 장애여성들이 단순히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힘을 가진 주체적인 존재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의 구조를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가 필요했다. 그런 문화를 만드는 일은 제도만으로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과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면서 규모도 점차 커졌다. 하지만 다른 단체와의 연대라든지,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들은 항상 많아서 일손은 늘 모자란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역량 있는 단체라는 의미기도 하고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지 않을까. 시민사회운동은 연대활동을 통해 서로의 자원을 주고받으며 힘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주로 어떤 단체들과 연대하는가.
"연대활동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반성폭력 진영과는 법 정책 제도 등을 모니터하고 정비하는 활동들을 같이 한다. 법의 해석만으로는 성폭력을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사회 문화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천 활동,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하고 싸우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 교차되는 지점을 함께 고민하는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 '성과 재생산권 기획단' 등의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다고 했는데 그럼 현재 주력하는 사업과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재 주력 중인 사업 중 하나는 장애인 성교육이다. 장애인 관련한 성교육이 많이 제도화되고 강사도 양성되고 있지만 보수적인 기존의 성규범을 학습하고 있다는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하지만 그 제도가 다 완벽할 수는 없기에 실망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장애인 성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사업의 상당부분이 제도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되는 것에 대해 계속 경계하면서 운동을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구체적으로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는 '장애여성공감'에서 자체적으로 성교육 강사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성교육 강사 교육 모임을 꾸려서 계속 세미나로 이어가거나, 기존의 제도권 교육 강의안을 검토해서 새롭게 만들어보는 시도를 한다거나, 제도 중에 비판해야 할 부분들을 체크해서 글을 써나가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또 이런 고민들을 통해 만들어진 '장애여성공감' 버전 성교육 강의안을 가지고 직접 학교에 나가서 강의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숨센터'에서 하는 장애인 거주시설 네트워크 사업이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분리시켜 생활시설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은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이 일어날 가능성을 키운다. 그래서 시설에서 생활해본 분들과 같이 탈시설에 대한 욕구, 여기서 더 나아가 장애와 젠더를 주제로 재생산과 성적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워크샵을 기획하고 있다.

이는 올해 처음 진행하는 거라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장애운동에 있어 탈시설 운동은 무척 중요하다. 기존의 시설 중심 장애인 지원 체계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하는 변화의 시도들이 있었다. '장애인독립생활운동(아래 IL운동)'이 그 중 하나다. 이 IL운동 안에서도 '장애여성공감'이 탈시설이라는 주제에 대해 젠더관점에서 어떤 의견을 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숨센터'에서는 "IL운동과 젠더"라는 주제로 IL운동에 있어 장애여성으로서의 요구만이 아니라 IL운동 자체에 누락되어 있는 젠더관점을 문제 제기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성폭력상담소'가 올해 15주년이다.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장애여성 성폭력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태도 이런 것들을 모니터링 한 의견을 모아서 발표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작년에 구성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 올해는 '성과재생산포럼'을 구성해서 활동을 이어나가며 성과 재생산을 둘러싼 권리와 정의를 공론화하는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 캠프에서
 장애여성공감 캠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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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도 내후년이면 20주년이라고 들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활동가나 회원들이 많을 것 같다. 사무국장님은 어떻게 여기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시작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글쎄.(웃음) 물론 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다. 하지만 살아 보니 모든 것들이 우연치 않게 만들어지더라. '장애여성공감'과의 인연도 그랬던 것 같다.

90년대 후반에 다니던 대학의 장애인자원활동 동아리에 들어갔었다. 뭔가 큰 뜻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착하게 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동아리 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장애인시설에 2주에 한 번씩 자원활동을 가면 누가 봐도 식사나 이런 게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난 안 착한데 거기 가면 다 착하게만 봐주고 그러니까 더 착하게 해야 할 것만 같아서 부담되고 그런 데서 오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밖에도 이상한 점이 많았는데 거기에 대해 답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인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던 때였고.

그러다 '장애인의날' 집회에 가게 됐다. 거기서 운명적으로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났다. 구호를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저기라면 뭔가 좀 다른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노들야학'에 처음 들어갈 당시 내가 얼마나 생각이 없었냐면, 야학을 하려면 휴학해야 하는 줄 알아서 당당하게 휴학하고 거기엘 들어갔다.(웃음) 그래서 '노들야학'에 갔을 때 휴학생이라 시간이 많았고, 시간이 많다보니 일도 많이 주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활동인 장애인 검정고시 교육부터, 집회 참석이나 세미나 준비, 피켓 만들기, 문화제 준비 등...

그때 참 다양한 일들을 해봤다. 20대 초반에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 전까지는 장애인과 그들을 돕는 비장애인으로서의 단편적인 관계밖에 몰랐다면 '노들야학'에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서로의 삶들이 이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 서로의 차이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차이가 공존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고, 그 공동체 안에서 지향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이 아닌 몸으로 익히는 시간들이었다.

'노들야학'에는 한 5년 정도 있었고 지금도 어디 가면 '저는 노들야학 출신입니다'라고 말한다."

-일찌감치 단체 활동가의 길을 걸어오신 것 같다. 그럼 '장애여성공감'은 어떻게 만난 건가.
"2001년에 처음 만났다. 투쟁이면 투쟁이고 차별철폐면 차별철폐지 몸의 경험이 뭐 어쨌다고?(웃음) '장애여성공감'을 통해서 여성주의도 처음 만났다. 그들의 언어가 되게 이상하고 낯설었다. 근데 그걸 보면서 여성으로서의 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더라.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는데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나 운동사회 내의 성차별 문제로 인해 고민이 많았다. 나에게 억압적으로 다가왔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런 걸 나 자신에게 설명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 뭔가 관점을 주고, 언어를 만들 수 있게 해주고,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힘들을 '장애여성공감'을 통해서 만났다. 그러다 '공감 캠프'를 갔다. 거기 가서 은혜를 받고...(웃음)

'노들야학'의 경험에서 받았던 충격과 또 다른 감각과 감수성들을 접하면서 '장애여성공감'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2002년에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라는 난장문화제를 같이 기획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노들야학' 때도 예술제 같은 문화기획에 많이 동참했고 '장애여성공감'에서도 문화제 기획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춤추는허리(공감소속의 장애여성극단)' 담당이라고도 들었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문화예술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꿈이 개그맨이었다.

'춤추는허리'는 처음 만들 때부터 함께 했다. 처음엔 단순하게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몸을 드러내는 것에 용기를 가진 장애여성 몇 명과 활동가들이 연극이란 형태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 거다. 

예전엔 장애여성들이 제도교육을 못 받고 집 안에만 있을 때 라디오가 삶과의 통로였다. 내가 글쓰기는 잘 못해도 라디오 듣고 흉내 내는 건 잘하는데, 그런 분들이 있었다. 내 꿈은 사실 배우였는데, 하는 분도 있었고. 타고난 예술적 끼로 장애여성의 몸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분도 있었다. 그럼 우리 다 모여서 연극을 해보자, 몸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게 일이 진행됐다. 물론 몸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웃음)"

-'장애여성공감'이 지금 하고 있는 운동들도 사실 쉬운 건 아니다. 운동이 어려울수록 진지하고 무거운 태도로 임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사무국장님의 예전 강연을 들었을 때 유머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평소에도 유머를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활동에 중요한 것을 쓰라고 하면 유머를 꼭 쓴다. 농담을 주고받으려면 서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개그프로에서 흔히 보는 서로를 차별하고 헤치는 그런 유머 말고, 진짜 상쾌하게 웃는 유머를 던지려면 서로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농담도 능력이고 기술이다.

문화는 이미 관념화 되어 있고 익숙하게 우리들에게 들러붙어 있다. 유머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뒤집어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도 일단 웃기기 때문에 저항감을 크게 느끼진 않는다. 아? 하면서도 아~ 하고 받아들인다 할까. 유머가 갖는 파급력도 중요하다. 책 한권을 한 장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춤추는허리' 역시 유머처럼 기존의 것을 비틀어 보여주고 싶었다. 이 연극을 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것 중에 토론식 연극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근데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 그래서 토론연극이라는 형태를 통해, 갈등이 고조되면 일단 장면을 멈추고 관객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봤다. 그리고 관객의 의견에 따라 연극의 결말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자체로도 관객들을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불편하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춤추는허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도 재밌었다. 무대에서 한번 경험했던 그 순간, 내가 당당하게 섰던 그 경험. 이런 것들이 무대 밖에서도 자기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 힘을 삶에서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그런 힘이 될 수 있는 기억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억을 갖고 힘들어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떨 때는 너무 처절하고 어떨 때는 너무 웃기고, 너무 사랑하고, 너무 미워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연극이 안 만들어지니까 서로 각자의 경험들을 꺼내놓는 거다. 거기서 나는 내가 가져가고 싶은 어떤 경험을 가져가고,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경험을 가져가고 그렇게 서로가 주고받은 경험들이 오랫동안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경험으로 남게 되더라."

장애여성공감 춤추는허리 정기공연 <거북이라디오3> 중
 장애여성공감 춤추는허리 정기공연 <거북이라디오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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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허리 공연 중에서
 춤추는 허리 공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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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허리' 배우와 스텝은 모두 장애여성인가.
"초창기엔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들이 섞여 있었다. 지금은 배우와 스텝 모두 장애여성으로만 이뤄져 있다. 이제 한 10년 정도 하다 보니 우리에게 맞는 연극 형식, 기법 이런 것들이 많이 쌓였다. 배우나 스텝 모두 실력도 많이 쌓였고. 예전에는 세트, 무대 이런 거 으리으리하게 하는 게 중요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우리 몸이 곧 오브제, 내 몸이 바로 세트, 그런다. "춤추는허리는 춤추는허리답게" 우리 연극 대사에 있는 말이다. 비장애인의 연극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의 주제를 우리 몸에 맞게, 세상에 전달하는 방식도 우리답게, 그렇게 하고 싶다."

-우리 몸이 오브제라는 말이 '춤추는허리'의 예술성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보통 무대공연은 배우나 무용수처럼 고도로 몸을 훈련한 몸 전문가들이 올라간다. '춤추는허리'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몸은 어떤 매력을 발산할지 궁금하다. 다음 공연은 언제인가.
"11월 2일부터 4일까지 저녁7시 30분에 대학로 이음센터 5층에서 한다. 그동안 계속 무료 공연이었는데 이번에는 1인당 1만원으로 유료화할 계획이다. 처음으로 하는 유료 공연이니만큼 많은 분들이 와주시면 좋겠다."

-끝으로 "녹색전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까 타인을 해치지 않는 유머가 중요하단 얘기를 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녹색다움도 이와 비슷하다.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방식이 녹색다움 같다. 모든 생명이 자기답게 살아갈 때 비로소 자기 생명을 이어간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녹색전환은 '모두', '함께'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 전체 안에 있지만 보이지 않거나 우리가 잘 모르는 무엇이나 누군가, 그런 다른 색깔을 발견하고 그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라고 본다. 포함되어 있지 않은 누군가, 포함되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계속 찾으려는 노력들이 녹색전환의 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이상 (녹색전환연구소 편집위원)



태그:#이진희 사무국장,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춤추는허리, #녹색전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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