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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스무살 때는 '축구버전 슈퍼스타K'라고 불리는 더 찬스(The Chance)에서 국내 우승을 했다. 그는 이 무렵 세계축구유망주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됐던 한국인 선수이기도.
경기장에서 늘 사람들 눈길을 끄는 젊은 감독이 있다. 유소년 축구·풋살 클럽 성동FC 감독 고용필. 그의 나이는 올해로 스물여섯이다. 지금이야 '감독님이 좀 젊으시네' 소리를 듣는 정도지만, 5년 전 처음 팀을 만들었던 21살 무렵에는 언제나 어리둥절한 시선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선수들과 함께 있으면 감독보다는 형처럼 보였기 때문. 게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축구팀을 만든 선례가 없다보니,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들려왔다. '성공하기 힘들 거다'라는 말은 기본인 데다 무모하고 건방지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왜 선수였던 그가 감독으로 경기장에 돌아와야 했을까. 이 기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KFL 풋살대회 경기 중 고용필 감독의 모습
 KFL 풋살대회 경기 중 고용필 감독의 모습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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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필 감독은 과거 축구선수였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지도자가 아닌 '선수'로서의 미래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타고난 환경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버티면서 운동을 했고,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도 따라왔다.

고용필 감독은 고등학교 때부터 나이키 주최의 유명 풋살 대회에 참가하며 실적을 냈는데, 이 무렵이 그에게 가장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시기였다. 당시 국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낮았던 풋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꾸준히 실력을 쌓아 스무살 때는 '축구버전 슈퍼스타K'라고 불리는 더 찬스(The Chance)에서 국내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이 무렵 세계축구유망주 100인 중 하나로 선정되었던 한국인 선수이기도 했다.

더찬스 최종 100인 후보의 명단
 더찬스 최종 100인 후보의 명단
ⓒ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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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환경의 축구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던 프로젝트 '더 찬스'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전 세계 선수들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기회였다. 세계를 무대로 한 최종 우승에 도전하는 참가자 중, 한국인 선수는 그를 포함해 단 3명. 그는 선수로서 아팠던 날들을 끝내고 싶었고, 대회를 위해 영국으로 향했다. 이것이 선수로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임을 실감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타국에서 그것도 축구의 본고장 영국에서 수많은 외국 선수들, 유명 지도자와 만나 훈련하고 경기를 치렀던 그때의 순간은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다.

대회 당시 모습. 아르센 뱅거 감독 바로 오른쪽이 고용필 감독.
 대회 당시 모습. 아르센 뱅거 감독 바로 오른쪽이 고용필 감독.
ⓒ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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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훈련 경험은 선수들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걸 깨달았던 때였다."

그렇게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최종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고용필 감독이 이 경험을 값지게 여기는 이유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외국훈련 기회를 많이 주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최종 우승은 실패. 탈락이 확정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을까. 함께 영국으로 갔던 다른 한국인 선수는 최종 우승 멤버로 선정된 상태였다. 내색은 안했지만 어린 마음에 받았을 상처는 꽤 컸을 것이다.

긴 고민 끝에 그는 선수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선수로 살면서 몇 번이나 위기가 있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견뎌왔던 그였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체격을 비롯한 여러 조건과 환경, 운도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 운동선수. 운동을 중도포기 한 선수들이 어떤 방황을 하게 되는지 주변 동료와 선배들을 보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선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좋아서 시작했던 축구를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던 스무 살 소년의 심정이 어땠을까.

더찬스 국내우승 당시의 고용필 감독
 더찬스 국내우승 당시의 고용필 감독
ⓒ Sporta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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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선수를 포기한 이유를 확실히 했다.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의지로 선수를 그만둔 것이 맞다. 성공한 선수들은 아무리 큰 부상을 당해도, 주변 환경이 안 좋아도 그걸 딛고 일어선다. 내 선택을 환경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선수가 아니라면 그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그에 대한 고민으로 꽤 오래 방황을 했다. 그래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성공했든 실패했든 축구선수로서 지냈던 시절이 그에게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외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우연히 공공기관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게 된다. 처음에는 생활비 때문에 시작했지만, 점점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공을 차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선수로서의 삶이 끝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축구가 좋아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아이들 눈에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선수시절 거쳤던 방황과 좌절을 이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선수일 때 갖지 못했던 모든 아쉬운 부분들, 그걸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팀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팀의 이름은 '성동FC'. 본인이 20년 동안 나고 자란 성동구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지금은 초·중, 고등부까지 합쳐 팀에 등록된 선수만 200명이 넘는 성동FC지만, 창단 초반에는 모든 것이 열악했다. 사무실도 지하에서 시작했고, 체육관 공사도 친구들의 도움을 빌려 직접 해냈다.

직접 전단지를 돌리며 팀을 홍보하기 위해 애썼고, 초기에는 회원도 간신히 초등부만 모았을 정도였다. 자금이 없기 때문에 팀이 완벽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 다른 일을 병행했다. 학교나 구청 프로그램에서 축구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때로는 편의점 알바까지 하면서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힘들 때 나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 모든 사람들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혼자서만 이루는 성공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성동FC 선수들에게 '하나'를 강조하는 이유다.

유소년 풋살리그 대회에서의 성동FC
 유소년 풋살리그 대회에서의 성동FC
ⓒ 성동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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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이 늘어날수록 고용필 감독은 자신의 어린 나이도, 열악한 환경도,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었고,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뛸 때는 자신도 함께 뛰었다. 아이들이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는 선수 시절 본인을 아프게 했던 모든 방식을 자신의 교육방법에서 지워버렸다. 팀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선수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테스트 대신 '본인의 의지'를 가장 먼저 평가했다. 팀이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가 먼저 팀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가르치는 학생의 수준이 낮든 높든 그에 맞는 성장을 시키면서, 결코 누구에게도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팀에서 선후배간의 서열도 전부 없애버렸고, 포지션이나 실력에 관계없이 누구도 소외되거나 기죽지 않고 축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 중에는 집안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도 많다. 그런 이유 때문에 힘들고 무서워서 운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믿음이 주변 환경 같은 것에 질 필요는 없다. 그 과정을 먼저 겪어온 나이기 때문에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정말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EBS 프로그램 출연 모습
 EBS 프로그램 출연 모습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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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들과 한 약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지켰다. 노력한 만큼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줌으로서 믿게 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팀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경기에 팀을 참가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많은 대회 경험을 쌓게 했고, 그 결과 이제는 굵직한 대회에서도 축구와 풋살 두 분야 모두 굉장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서울시장기 유소년축구 왕중왕전 초등부 준우승,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 중등부 우승 등은 물론이고 기타 대회에서도 3위 안에 입상하는 성적을 내며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서울시 주최 여러 대회에서 반복적으로 우승, 서울의 한 구에서만 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풋살 전국대회에서도 서울시 대표 팀으로 뽑혀 서울에 준우승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실적을 인정받으면서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국제친선교류 사업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고, 성동FC 선수 9명을 태국 훈련에 참가시켰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축구팀이 서울시에서 손꼽히는 스포츠클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팀이 자리 잡은 지금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상하이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유일한 한국 팀으로 초청되어 스페인, 중국 등의 강팀을 상대로 3위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경기 성적을 떠나 아이들에게는 축구로 이뤄낸 소중한 추억들이 늘고 있는 셈이다.

성동FC
 성동FC
ⓒ 성동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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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불모지로 불리던 성동구에 그가 일으킨 기적은 시와 구 관계자들에게도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의 지원으로 풋살전용구장도 생기면서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팀에 붙인 '성동'이라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고용필 감독은 그가 자란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기 때문에 더욱 기쁜 결과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선수들이 먼저 그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팀의 창단으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이들은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와 함께 하고 있다. 그도 감독이 아니었다면 스물여섯의 평범한 젊은 청년이다. 그러나 주변의 어떤 유혹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 젊고 좋은 날들을 오로지 아이들에게 걸었다. 그 정도로 선수들을 사랑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들이 그를 따랐던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고용필 감독의 엄격한 지도 방법이 무섭고 싫게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그는 20대인만큼 어린 친구들에 대한 이해능력이 다른 지도자들보다 컸다.

그래서 형처럼 다정할 때도 있었지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거나 엇나가려는 선수들은 가차 없이 혼을 냈다. 선수들이 체육관 밖에서도 나쁜 행동을 하면 전부 잡아내서 훈육을 했다. 본인이 선수였던 시절 하던 방황을 선수들이 그대로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더 무섭게 바로잡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축구만 가르치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선택한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지고 좋은 방향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이제는 아이들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이키 광고에 등장했던 성동FC 선수들
 나이키 광고에 등장했던 성동FC 선수들
ⓒ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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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에 등장한 선수가 바로 그의 제자 중 하나다. 성동FC의 창단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그와 함께 하며 팀을 지키고 있다. 고용필 감독과 이 선수가 처음 만난 건 학교 운동장에서였다고.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꼬마가 지금은 고등부 선수로 성장했다.

"아직 팀이 자리 잡히지 않았을 때였는데, 장난 반 진담 반 우리 팀에 들어올래? 하니까 얼마 뒤에 정말로 우리 팀을 찾아왔더라.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형 같은 사람들이 자기를 가르치려드니 잠깐 반항도 했었는데, 이제는 팀에 소중한 선수 중 하나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그동안 성동FC가 지나왔던 시간이 보이는 것이다."

팀이 창단되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인 그도 함께 성장했다. 마음도 더욱 강하고 단단해졌다. 성동FC는 그가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으며 지켜낸 팀이다.

가르치는 선수들의 학부모를 이해시키고 신뢰를 주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오직 성실함과 실력으로 증명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초반에는 어리고 사회경험도 없다보니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거나 배신을 겪을 때도 있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떠날 때는 큰 공허함과 상처를 혼자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오히려 자신을 늘 응원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되어 주었다.

선수 시절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학업도 다시 시작했다.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그는, 팀의 선수들을 위해 다양한 진로 지도와 학업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힘쓰고 있다. 설령 축구를 그만두더라도 남은 길이 있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의 인생, 축구는 반드시 그 다음이다." 

이것이 다른 지도자와 다른 그만의 철학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 축구가 늘 세 번째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첫 번째는 본인의 인생, 두 번째는 그 인생에 대한 행복, 그 다음부터가 축구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는 자신에게 전부였던 축구가 사라졌을 때 두려웠다. 오직 축구만 바라보다 보니, 축구를 포기했을 때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전혀 만들어 놓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길을 열어놓고 싶은 것이 고용필 감독의 마음이다. 선수들이 축구를 그만두더라도, 그는 먼저 운동을 했던 선배로서 아이들의 인생에 끝까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이제 선수들에게서는 점점 더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축구선수시절의 자신을 꼭 닮은 아이들은 그를 언제나 뭉클하게 만든다. 그가 선수였을 때의 움직임 뿐 아니라 꿈도 닮았다.

"아이들이 정말 빠르게 성장한다. 몇몇은 이제 나와 맞먹으려고 할 정도."

그렇게 말하며 웃는 그의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고용필 감독, 그와 함께하는 코치들
 고용필 감독, 그와 함께하는 코치들
ⓒ 성동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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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필 감독은 요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나이키 아카데미 트레이닝 코치로 선정되며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어쩌면 6년 전처럼,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다시 한 번 세계무대를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하에서 작게 시작했던 사무실과 체육관은 이제 2호점까지 생기면서 더 많은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남아있든, 고용필 감독에게 있어 가장 첫 번째는 그의 팀 성동FC다. 코치를 비롯해 그와 함께 팀을 지키는 모든 지도자와 학생들은 언제나 '하나'다.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그들은 언제나 함께일 것이다.

지금쯤이면 모두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단순히 한 선수 출신 지도자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든 위기를 기회로 바꿀 가능성을 가진, 우리 모두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용필 감독
 고용필 감독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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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축구 좀 했던 그 선수 지금은 어떻게 됐대? 이 기사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선수를 그만두고 나서도 경기장에 돌아왔다.

이제는 아이들의 꿈이 자신의 꿈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고용필 감독을 2016년 4월부터 9월말까지 여러 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엮었습니다.



태그:#축구, #풋살, #성동FC, #고용필감독, #더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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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목받지 못한 모든 꿈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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