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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열흘 전, 주말을 이용하여 다니는 교회에서 강촌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모두 해봐야 스무 명 조금 넘는 작달막한 교회입니다. 200명이 넘어가면 누가 누군지 모르고, 무슨 고민을 하고 사는지는 고사하고 서로 관심이 없으면 일 년이 지나도 이름을 모릅니다.

하지만 20명은 다르지요. 가까운 친구들도 서로 사는 게 바쁜지라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데 매주 보는 얼굴들은 살가운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재미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의자에 빙 둘러 앉아 둘씩 짝을 지어 마주 앉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법 한가지를 3분 안에 상대방에게 전수하는 것입니다. '3분 비법'이지요. 다들 재미난 비법을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 제 짝이 된 분이 아주 재미난 것을 소개했습니다.

"사람 이름을 외우는 방법인데요.  처음 사람을 만나서  '홍길동입니다' 라는 이름을 들으면 잠시 눈을 감고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렇게 되뇝니다.

'참 홍길동답게 생기셨습니다.'"

순간, 아하! 머리가 딱 울렸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수십 년 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지요. 우리가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의 생김과 이름이 하나가 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처럼 여겨져서 얼굴과 동일시되어 반복적으로 뇌에 저장되지요.

그분의 비법은 그것을 단 몇 초 만에 압축적으로 뇌가 아닌 마음에 달군 인두처럼 콱 새기는 과정 같았습니다. 그날 이후 실습을 해보니 효과 만점입니다.

이번에는 제 차례였습니다. 무슨 천기누설이라도 하듯 저는 진지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제가 사용하는 비법입니다. 살아가다 이래저래 마음이 아픈 경우, 저는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되뇝니다.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얘기해봤지만 대부분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거나 관심이 없어했는데 그 분은 금세 알아들었습니다. 신통합니다.

마음은 자주 아픕니다. 신경쓰이는 일이 있거나 곤혹스러운 상황에서는 항시 마음이 괴롭고 불편한데 이것이 또 오래가기도 합니다. 한번씩 그럴 때면 참 힘듭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내 마음이 아픈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마음'과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힘센 마음이 자아내는 여러 감정들이 여러 모양으로 작은 '나'를 흔드는 거지요.

'나'는 '나'이고 '마음'은 '마음'입니다. 하늘의 달과 구름처럼 전혀 별개인데 동일시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나'에 대한 자각이 아직 미약하기에 그렇지않나 싶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나'라는 자의식이 생기면 '엄마, 나는?' 식으로 말을 하지요. 그때 아이가 '이제부터 나는 마음을 가질 거야'라고 작정하고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혹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 '마음'을 가질지 말지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잉태되어 어느 순간 마음이 자신과 연결되지만 우리는 그 시점이나 상황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후로 평생 매분 매초 마음과 함께 지내기에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나로 여깁니다. 마음을 나 자신이 선택하거나 의지로 얻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은 '내 것'이라는 개별성이나 독립성을 갖고 있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맘대로 한다'는 건 이상한 모양이 되기 쉽습니다. 더욱이 마음은 내 것이 아닌지라 마음 다스리는 것 또한 내 맘대로 잘 되지도 않습니다.

고3인 큰딸아이가 수능이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아픕니다. 스트레스 때문이겠지요. 옆에서 지켜보자니 해줄 건 없고 '짜안' 합니다. 어서 지나가면 좋으련만, 식탁에서 '머엉' 하니 넋을 잃은 듯 앉아있는 딸아이를 보니 마음이라는 녀석이 또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나는 마음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난밤 서울대 병원에서, 홍역을 앓고있는 이화여대에서, 인천 재개발 지역에서, 고3과 그들을 자녀로 둔 가정에서,  그리고 우리사회 곳곳에서 지금 마음이 아프신 님들, 아플땐... 아파해야지요....

그러나 살아가다 너무 아프면, 마음을 잠잠히 들여다 보세요. 마음이 아무리 힘이 세도 본래의 '나'는 마음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 저 산처럼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을 겠습니다. 사진은 3분 비법을 나누던 성공회 피정의 집 뜨락입니다.
▲ 피정의 집 마음이 아플 때 저 산처럼 넉넉히 품어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좋을 겠습니다. 사진은 3분 비법을 나누던 성공회 피정의 집 뜨락입니다.
ⓒ 전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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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마음, #비법,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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