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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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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를 표명하며 머리를 숙였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민의 심정과 우려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담화문 곳곳에 이 부분을 짚어볼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면  우선 자신에서 비롯된 국정농단 사태라는 사실과, 이로 인한 심각성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담화문 전문을 읽어보면 실망스러울 뿐이다. 두 맥락이 담화문 전체를 관통한다. 먼저 이번 사태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후반부에는 국정을 직접 챙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파하는데 비중을 두었다.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들을 두 차례나 만나서 미르-K스포츠 두 재단에 거액의 지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온 상태다. 박 대통령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핵심은 피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면 뇌물죄 적용은 어렵다. 하지만 대가성이 있다면 중죄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은 '선의'임을 강조했다. 자신은 죄가 없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정말 선한 마음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액을 내놓았을까? 

●"특정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개인 비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박근혜 게이트'라고 보는 국민의 시각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발언이다. 대통령의 개입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과 증언 모두를 부정하겠다는 얘기다. 단지 최순실이 호가호위한 사건이라는 건가. 이렇게 받아들일 국민은 이제 없다. 일개 개인이 어떻게 그 엄청난 일을 벌이고,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숱한 이권에 개입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조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사 도와줄 사람... 경계의 담장 낮추었던 것... 사사로운 인연..."

박 대통령은 최순실을 가까이 뒀던 이유로 '개인사들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라고 말했다. 최순실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해서 생긴 문제라고 얼버무린 것이다. 두 재단에 대해 논의하고, 최순실의 딸을 위해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경질하고, 해외순방 일정까지 시시콜콜 상의한 것이 '개인사'란 말인가? 국정을 논하는 관계였다. 이게 어찌 사사로운 인연인가. '경계의 담장'을 낮춰서? 청와대를 아예 최순실에게 내어줬다는 국민적 비난을 무마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변명이다.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 세월호 희생자, 고 백남기 농민 추모하는 시민들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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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구속 안종범 체포... 엄정한 사법처리..."

박 대통령은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순실 구속'과 '안종범 체포' 사실을 강조했다. 검찰이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해 왔다고 보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봐주기 늑장 수사로 일관하던 검찰이 속도를 낸 건 최순실의 국정농단 증거가 쏟아지고 난 후부터다. 왜 최순실과 안종범 두 사람을 거명한 걸까? '피부와 같은' 절친과 온갖 일 다 해온 핵심참모까지 검찰에 내줬으니 웬만큼 된 것 아니냐, 이런 얘긴가?

●"필요하다면 저 역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말하면서도 자신과 관련해서는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조사에 임할 각오"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이라는 조건을 걸었다. 필요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검찰이 한다. 국민이 하는 게 아니다. 국민에게는 조사권도 수사권도 없다. 그런데 국민은 검찰을 믿지 못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북 고령 향우회'가 실세로 등장했다. 신임 민정수석(최재경)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처가가 고령이고, 김병준 총리내정자의 고향도 고령이다. 게다가 최순실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도 고령 출신이다. 박 대통령은 고령 박씨다.

●"정부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

국정 전반을 직접 챙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자신이 아니면 국정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국민의 정서와는 동과 서 처럼 먼 발언이다. '박근혜 게이트'를 질타하는 국민의 함성이 잦아드는 것을 '국정의 회복'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대통령과 국민, 그 사이가 정말 너무 멀다.

●"국민께서 맡겨준..."

지지율 5%. 박 대통령을 이젠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국민께서 맡겨준 책임" 운운한다. 맡긴 건 4년 전. 지금은 아니다. 이게 민심이다. 대통령 골수 지지층과 TK 지역에서도 이탈 현상이 심각해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맡긴 권력을 되찾아 오겠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그 권력은 여전히 내 것'이라고 말한다.


태그:#박근혜 담화, #박근혜 게이트 ,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책임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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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시사 분야 개인 블로그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남자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고 내일은 오늘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미래를 향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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