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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감내해야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소속 한 의원이 의원총회가 열린 국회 제2회의실을 빠져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정국을 뒤흔든 추미애 대표의 '양자 영수회단 제안' 건이 의원총회에서 취소된 직후였다. 기자가 "앞으로 당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라고 묻자, 이 의원은 "감내해야죠"라는 답변을 내놨다. 

민주당 의원들이 추미애 대표의 단독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14일 오후 4시 의원총회를 열어 4시간 30분 동안 격론을 벌인 끝에, 추 대표의 양자 영수회담 제안을 철회시켰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추 대표는 의총 직후 "애초에는 제1야당 대표로서 국정정상화를 위해 민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했다"라며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퇴진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의원들이) 의사가 모아진 만큼 영수회담을 철회하겠다는 의견을 줘서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추 대표는 자신의 입지는 물론, 당의 입지에도 흠집을 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긴박했던 12시간, 의원들의 제동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안민석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안민석 의원, '박근혜는 퇴진하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안민석 의원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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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께, 추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양자 영수회담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시간 만인 오전 10시 30분께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당 곳곳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개별 의원들은 물론, 최고위원회의 관계자들도 "전혀 몰랐던 일", "추 대표의 단독행동"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관련기사 : "100만 촛불에 돌연 대장 노릇?" '영수회담 제안'에 거센 비판 마주한 추미애). 국민의당, 정의당도 아무런 협의 없이 결정된 추 대표의 양자 영수회담 제안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추 대표는 이 같은 결정이 전날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의 결과물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다수의 중진의원들이 "회의의 논점은 영수회담이 아니었다", "영수회담은 때가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등 추 대표의 설명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놨다.

결국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오후 4시 국회 제2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는 의원들과 일부 실무자만 출입하도록 통제했다. 평소와 달리 당직자·보좌진은 회의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후 5시 40분께, '대통령 퇴진'이 당론으로 결정됐다. 앞서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는 말로 대변되던 '2선 후퇴'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아직 영수회담 철회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 진행될 지도 모를 영수회담의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의원총회는 이후로도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의원총회 중간중간 기자들과 만난 여러 의원들은 "영수회담 결정이 잘못됐다"는 의견에는 입을 모았다. 다만, "공당으로서 제안을 철회하기 어려울 것", "다른 야당과 의견을 모아 야3당 영수회담을 추진할 것", "의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회 혹은 연기할 것" 등으로 세부 의견은 갈렸다.

오후 7시 20분께, 추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은 회의장에서 빠져나와 당 대표실에서 따로 회의를 진행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모은 뒤,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는 절차를 거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 동안 의원총회는 정회됐다.

추 대표는 오후 8시께 당 대표실에서 나와 다시 의원총회 회의장으로 향했고, 그로부터 30분 뒤엔 오후 8시 30분께 영수회담 철회를 최종 발표했다. 오전 8시 30분 시작된 소동은, 결국 12시간 만인 오후 8시 30분 마무리됐다.

국정농단 당사자 청와대 "당황스럽다"

박근혜 퇴진 100만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대표들이 14일 오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5일 청와대에서 개최되는 '박근혜-추미애 영수회담'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권 퇴진시키는 작업을 준비할 시간도 모자랄 판에, 왜 지금 박근혜 정권에 시간이나 벌어주는 일을 하는가?'라며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뜬금없는 일이나 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담을 중단하지 않고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 명령을 왜곡하는 합의를 하고 올 경우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동반 퇴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민주당이 이러라고 100만이 시위한게 아니다' 박근혜 퇴진 100만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대표들이 14일 오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5일 청와대에서 개최되는 '박근혜-추미애 영수회담'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권 퇴진시키는 작업을 준비할 시간도 모자랄 판에, 왜 지금 박근혜 정권에 시간이나 벌어주는 일을 하는가?'라며 "해야 할 일은 안하고 뜬금없는 일이나 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회담을 중단하지 않고 추미애 대표가 국민의 명령을 왜곡하는 합의를 하고 올 경우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동반 퇴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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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추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로 사태는 마무리됐다. 시국이 엄중한 만큼, 이는 민주당은 물론 야권에게 뼈 아픈 실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앞으로 있을 청와대와의 기싸움에서, 좋지 않은 사례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국정농단의 핵심인 청와대는 오히려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날 민주당의 영수회담 철회를 결정한 직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황이라 당혹스럽다"라며 "하지만 청와대는 여야 영수회담을 이미 제안해 둔 상태인 만큼 형식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열리기를 기대하며 열린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장 추 대표의 단독 결정이 누구와의 논의를 통해 이뤄졌는지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말했듯, 추 대표는 영수회담 제안이 13일 최고위원-중진회의 연석회의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만나 "연석회의의 논점은 영수회담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면서도, "다만 몇몇 회의 참석자가 영수회담을 이야기하긴 했다"라며 한 최고위원을 지목했다. 해당 최고위원은 의원총회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저도 영수회담을 이야기했다"라면서도 "대통령 퇴진 등을 위해 여러 방식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영수회담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다행히 이번 사태로 흔들렸던 야3당의 공조는 다시 회복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내부 논의와 추미애 대표의 결단을 통해 국민들과 야권이 우려했던 청와대 양자회담이 철회되고 다시 한번 야3당 공조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반겼다. 정의당 역시 "뒤늦게라도 민주당이 퇴진 당론을 확정하고 영수회담을 철회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빠른 시간 안에 야3당이 머리를 맞대고 국민이 원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야권을 향한 국민의 신뢰가 상처 받은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영수회담 철회 결정 전 <오마이뉴스>와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은 민주당을 비판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의당, 너네는 잘한다'라고 말할까? 그렇지 않다. 결국 오늘 이후 국민들은 '야당 너희들은 줘도 못 먹는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태그:#추미애, #영수회담,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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