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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 검찰, '최순실 의혹'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 압수수색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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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로 뒤늦게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서울고등법원은 주식매수가격 결정 판결에서 (구)삼성물산 경영진과 국민연금공단이 (구)삼성물산의 주가가 하락하도록 유도했다는 강한 의심을 표명했습니다. 찬성 표결에 대한 외압 의혹을 넘어서 (구)삼성물산 경영진의 의도적인 실적 축소와 국민연금공단의 비상식적인 매매행위 등에 대해서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기자말 

줄다리기 시합이 있습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들이 앞에 섭니다. 몸집이 작은 사람들은 뒤로 밀립니다. 뒤로 밀렸지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열심히 줄을 잡아당깁니다. 같은 편에 선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줄을 잡아당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무하게 지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맨 앞에 섰던 사람들이 줄을 잡고만 있었을 뿐 당기지 않았습니다.

소위 개미들이 주식을 사면 그 주식가격이 오르게 하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통신사 주식을 사면 휴대폰을 바꿀 때 그 통신사로 이동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사면 영화를 볼 때 꼭 그 회사가 제작배급한 영화를 선택합니다. 실적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을 잘 알지만 그렇게라도 힘을 보태고 싶은 것이 소액투자자의 마음입니다.

합병의 장이 서면 더 치열해 집니다. 우리나라의 합병비율 산정은 합병 기준일 부근의 주가에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조금이라도 올라야 유리한 합병비율이 결정되고, 그래야 합병 후 만들어지는 회사에 대한 내 지분율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합병설이 나오면 경영진과 대주주 그리고 직원과 소액투자자까지 한마음이 되어서 움직입니다. 주가 상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찾아내서 공시하고 실적 개선이 될 만한 모든 조치를 취합니다. 없는 실적이라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에 물량 밀어내기도 종종 발생합니다. 다소 무리한 조치가 있더라도 소액투자자들은 그러한 경영진과 대주주를 지지합니다.

소액투자자를 배신한 (구)삼성물산의 경영진

지난 5월 30일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이를 반대한 주주들이 청구한 주식매수가격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구)삼성물산의 주가하락에 영향을 주었다고 의심되는 실적 부진과 관련하여 3가지 사실을 지적합니다.

첫번째, 국내 수주 문제입니다. 2014년 하반기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많은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그 결과 미분양 주택이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건설사들은 발빠르게 2015년 상반기부터 공격적으로 분양물량을 늘렸습니다. 그런데 유독 (구)삼성물산만 이러한 흐름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건설업계는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모처럼의 대목시장인데 시공능력으로 보나 브랜드 이미지로 보나 업계 1위인 (구)삼성물산이 주택공급을 늘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국내수주 부진이 (구)삼성물산 주가 낮추기와 연관이 있다고 강하게 의심했습니다. (구)삼성물산 경영진은 리스크가 있는 국내 분양시장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경영전략의 변경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경영전략의 변경을 뒷받침하는 내부 문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합병과정이 다 끝난 후에는 서울 지역 등에 만여 가구를 대량 공급하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해외 수주 문제입니다. (구)삼성물산은 합병 이사회 결의일 이전인 2015년 5월 13일 카타르에서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합니다. 수주금액이 2조 원인데, 이는 2014년 해외 수주액의 25%에 해당하는 대형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삼성물산 경영진은 이를 공시하지 않았습니다. 합병과정이 다 끝난 이후인 2015년 7월 28일에서야 공개했습니다.

(구)삼성물산 경영진은 5월 13일은 계약해지가 가능한 제한 착수 지시서를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시를 하지 않았고 7월 28일에 계약해지가 불가능한 낙찰통지서를 받았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러한 공시행위가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는 위반되지 않습니다. 1심 재판부는 규정 위반이 아니므로 이 부분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구)삼성물산의 과거의 공시 관행까지 확인했습니다. 2011년 사우디 복합화력발전소 공사에 대해서는 제한 착수 지시서만을 받은 상태로 공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업계 관행상 법률적으로는 해지가 가능하더라도 이 단계까지 진행되었으면 거의 계약이 깨지지 않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 정도 단계가 되면 많은 기업이 공시를 합니다. 더구나 합병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이라면 성사 가능성이 낮은 MOU를 공시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구)삼성물산 소액투자자들은 경영진들이 그렇게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번째로 계열사 내 수주 상황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구)삼성물산이 주관하던 공사 중 일부가 2014년 말과 2015년 초에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넘어갔습니다. 삼성전자가 발주한 베트남 투자 프로젝트 2차 공사의 주관업체가 2015년 2월 경에 (구)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내 부설연구소 공사업체도 (구)삼성물산에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바뀌었습니다.

합병의 진행 과정은 없는 실적이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전쟁터입니다. 정상적으로 하고 있던 공사마저 계열사에 넘기는 행위는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구)삼성물산은 발주처의 요구가 있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구)삼성물산의 소액투자자들은 경영진이 실적을 개선해서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비록 힘이 부족해 뒤에서 줄을 당기고 있지만, 맨 앞에 서 있는 경영진들이 힘껏 줄을 당기고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수주는 포기하고 해외수주는 공시하지 않았으며 계열사로 공사물량을 넘겨 버렸습니다. 줄을 잡고 당기는 흉내만 내고 있었거나 심지어 반대로 줄을 당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삼성물산 실적부진과 관련된 재판부의 결론이 이렇게 됩니다. "(구)삼성물산의 실적 부진이 이건희 등의 이익을 위하여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상식과 반대로 가는 국민연금공단의 매매행위

(구)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었습니다. (구)삼성물산의 소액투자자들은 국민연금공단도 같은 편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개미들이 주식을 사고 팔아봐야 주가에 영향이 없지만 10% 이상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은 이상한 매매패턴을 보여줍니다. 

2015년 3월 26일을 기준으로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의 주식을 1784만8408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분율로 계산하면 11.43%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합병비율이 산정되는 기준일인 합병 이사회 결의일 전일까지 지속적으로 (구)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합니다. 총 294만1962주들 매도하여 2015년 5월 22일에 1490만6446주(9.54%)만 보유하게 됩니다. 약 3백만주는 (구)삼성물산의 거래량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물량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기간 동안 (구)삼성물산의 주가는 아래와 같이 급격하게 하락하게 됩니다.

[그래프 1 : 국민연금공단의 지속적 매도기간 중 (구)삼성물산의 주가현황]

삼성물산 가격추이
 삼성물산 가격추이
ⓒ 홍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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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은 합병의 다른 당사자인 제일모직의 주식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대략 (구)삼성물산을 10%, 제일모직을 5%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두 회사 모두에 지분이 있는 경우 지분율이 높은 회사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나와야 전체적으로 유리합니다. 지분가치가 아니라 지분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나와야 이득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그 이후에도 비상식적인 매매행위를 계속합니다. 2015년 5월 26일 합병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합병비율이 약 1 대 0.35로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합병비율이 정해지고 나면, 실제 합병주식이 발행될 때까지 차익 거래가 가능합니다. 이 비율대로 합병이 이루어지면 제일모직 1주와 (구)삼성물산 0.35주는 같은 주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제일모직의 주가와 (구)삼성물산의 주가의 비율이 0.35를 넘으면 비싼 (구)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제일모직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합니다. 반대로 그 비율이 0.35에 미달하면 비싼 제일모직 주식을 팔고 (구)삼성물산 주식을 사는 것이 유리합니다.

2015년 5월 26일 이후 합병 주주총회일까지 그 비율이 0.35를 넘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기간동안 0.37~0.38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상식적인 투자자라면, 당연히 (구)삼성물산의 주식 보유비중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 주식을 열심히 매수합니다. 2015년 6월 30일까지 376만4652주를 매수하여 1867만1098주까지 보유지분을 늘립니다.

주주총회에서 반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러한 매수행위는 합리적입니다. 합병이 부결되어 합병비율이 0.38 이상으로 재산정되면, 주가비율 0.38 이하에서 산 주식은 모두 이득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찬성표를 던집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반대했다면 부결되었을 투표결과였지만,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했기에 합병은 승인됩니다.

재판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쉽게 또는 분명하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사회 결의일 후의 투자 행태,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에 관한 방침 결정의 과정과 결과 및 그것들이 이 사건 합병에 관한 주주총회 결의에 미친 영향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매도(합병비율 산정 전까지의 매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구)삼성물산 소액투자자들은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합병비율 산정 전까지 (구)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위한 매매행위를 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의 주가가 하락하도록, 결과적으로 (구)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이 나오도록 매매행위를 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도 줄다리기 맨 앞에 서서 줄을 반대로 당기고 있었습니다.

경영진과 대주주가 소액투자자의 신뢰를 배신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015년 상반기는 미분양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건설업종 주가가 상승한 시기였습니다. 2015년 1월 2일 대비 5월 22일까지 건설업종 지수는 28.7% 상승했습니다. 주요 건설사 모두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GS건설은 33.0%, 대우건설은 31.5%, 대림산업은 29.6%, 현대건설은 17.2% 상승했습니다. 다만, (구)삼성물산은 나 홀로 8.9% 하락했습니다.

그 결과가 반영되어 나온 합병비율이 1대 0.35입니다. (구)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은 반대로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재용 일가에게 이득을 주었습니다. 만약, (구)삼성물산의 경영진과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유리한 합병비율 도출을 위해 정상적으로 행동하였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합병비율이 나왔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구)삼성물산 소액투자자들은 합병회사의 지분을 조금 더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해 9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당시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왼쪽)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당시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왼쪽)와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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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식활동계좌가 2200만 건을 넘었다고 합니다. 중복계좌가 많겠으나 숫자로만 보면 전체인구의 40%, 성인인구의 50%가 넘는 숫자입니다. 우리나라 주식투자자의 대부분은 소액투자자로, 어렵게 모은 돈이나 대출을 받아 조심스럽게 최선을 다해서 투자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소액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특정 누군가를 위해 실적을 고의로 낮춘다면, 또는 상식적이지 않은 매매행위를 한다면, 그래서 주가가 불리하게 움직이도록 만든다면, 어느 누구도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의 문제는 자본시장의 규율을 세우는 문제입니다. 자본시장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구)삼성물산 경영진과 국민연금공단에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태그:#삼성물산, #국민연금, #이재용, #제일모직, #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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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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