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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전국은 뜨겁다. 서울 도심에서만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이 모이는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범국민행동)는 전 국민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26일 5차 촛불집회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0만~200만 명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는 누가 어떻게 준비하는 걸까. <오마이뉴스>는 촛불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편집자말]
촛불집회 현장에서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미술가 이강훈(43)씨.
 촛불집회 현장에서 '차벽을 꽃벽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미술가 이강훈(43)씨.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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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5차 촛불집회 때 거대한 '꽃벽'이 생긴다. 이날 경찰은 어김없이 청와대에서 800m 떨어진 사직로·율곡로에 차벽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대 19만 장에 달하는 꽃 스티커·꽃 모양 포스트잇은 차벽을 꽃벽으로 탈바꿈시키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차벽을 꽃벽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미술가 이강훈(43)씨가 있다. 19일 촛불집회 때 시민들의 후원으로 꽃 스티커 2만9000장을 만들어 나눠줬고, 꽃벽이 만들어졌다. 26일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커지는 것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술감독을 맡았던 그는 촛불집회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벽에 대한 그의 저항 방식은 큰 호응과 함께 비판도 받고 있다. 꽃벽 프로젝트가 차벽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이철성 경찰청장이 "때리는 것보다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이는 게 훨씬 낫다"라고 말한 탓에, 이강훈씨는 '친경찰' 낙인이 찍혔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며칠 동안 몸무게가 4kg 빠졌다. 그래도 그는 차벽이 사라질 때까지 꽃벽 프로젝트를 계속하겠단다. 24일 서울 종로에 있는 펀딩 업체 세븐픽쳐스에서 만난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이강훈씨가 차벽에 저항하는 방법

이강훈씨가 '꽃벽'을 떠올린 것은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 100만 명이 모인 3차 민중총궐기 촛불집회 때다. 여력이 될 때마다 큰 집회에 참여하는 이씨는 이날도 경복궁역 사거리에서 경찰 차벽을 앞에 두고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벽이 익숙해져서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차벽의 목적은 시위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시민의 기본권을 막는 차벽은 부당한 공권력을 상징한다. 차벽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이씨는 시민들이 KBS 방송 차량에 항의 스티커를 붙인 것을 보고, 차벽에 항의의 메시지를 붙이는 일을 생각해냈다. 그 생각은 곧 '꽃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혼자서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페이스북에 "집회 주관하는 분들께 전해지길 빌며"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그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펀딩 업체 세븐픽쳐스는 펀딩을 도왔다. 이후 시민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목표 금액보다 2배 많은 100만 원이 모였다. 작가를 포함한 시민들이 그에게 꽃 그림을 보내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꽃 스티커 2만9000장을 들고 19일 4차 촛불집회로 향했다. 다만, 김씨에게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경찰버스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은 법을 어기는 일이다.

"꽃벽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의견을 구했다. 경찰이 공공기물훼손죄로 문제제기를 하면, 기소될 수 있다고 했다. 저를 도와주는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다만, 지금 분위기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고발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또한 많은 시민이 참여하면, 주최자만 기소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꽃스티커는 현장에서 세 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씨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차벽에 직접 꽃스티커를 붙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은 이러한 기억을 가지고 자라면서, 우리를 억누르는 공권력의 금기들에 대해 조금은 유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위법하더라도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이를 깨닫고, 평화를 지향하지만 저항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다."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정부서울청사를 에워싼 경찰버스에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스티커를 떼내고 있다.
▲ 경찰버스에 붙은 스티커 떼내는 시민들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정부서울청사를 에워싼 경찰버스에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스티커를 떼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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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정부서울청사를 에워싼 경찰버스에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스티커를 떼내고 있다.
▲ 차벽 스티커 떼내는 시민들 19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했던 시민들이 정부서울청사를 에워싼 경찰버스에 집회 참가자들이 붙인 스티커를 떼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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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벽은 평화적이지만 적극적인 저항"

이씨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일부 시민들이 스티커를 떼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꽃스티커는 시민들이 항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붙인 거다. 다른 시민이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이런 메시지를 뜯어낸 것은 착한 시위 범주에서도 극단까지 간 게 아닌가. 이건 쓰레기를 줍는 것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 권리를 훼손하는 것을 두고 조금 불편했다."

이후 언론이 스티커를 떼어내는 시민들의 모습을 두고 평화시위라고 부각하자, 논란이 커졌다. 더 나아가 꽃벽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고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는 트위터에서 "경찰의 차벽 사용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한다는 자각을 가졌으면 한다"라면서 이씨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박근혜 정부의 경찰은 권력의 '충실한 개' 역할을 해왔고, 시민들을 억누르는 살인집단이라는 주장에 대해 나도 대부분 동의한다"면서 "하지만 그런 경찰을 우리 시민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평화적이고 부드럽지만 적극적인 형태의 저항인 꽃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차벽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동의하는 편이다. 저도 문화제 형태로 진행되는 현재의 촛불 집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청와대로 행진했으면 좋겠다. '청와대를 깨부수자'라는 게 아니라, 최대한 청와대 가까이 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 누군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꽃벽 프로젝트는 평화적인 위법 시위로, 많은 사람들이 저항에 참여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차벽의 부당함을 비롯한 공론화가 이뤄졌다. 보람을 느낀다. 저는 각자의 방식으로 집회에 나서고 연대하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위 문화라고 생각한다. 26일 촛불집회 때 꽃벽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 서로 대화를 해서 오해가 있으면 풀고 싶다."

여러 논란에도 그의 프로젝트는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26일 촛불집회 때 500만 원을 들여 잘 떼어지는 재질의 꽃 스티커 9만여 장, 꽃 모양 포스트잇 5만~10만 장을 만들 계획이다. 스티커가 잘 떼어지면, 시민들이 집회 후 스티커를 떼어날 의경을 안타까워하며 굳이 스티커를 떼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이미 200만 원의 후원이 모였다. 또한 꽃 그림을 보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82명이 꽃 그림을 이씨에게 보냈다. 이씨는 26일 오후 경복궁역, 광화문광장, 안국역 등 3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비영리단체 '플리(FLRY)'도 현장에서 생화 500송이를 나눠줄 예정이다. 자원봉사자만 30명에 달한다. 이씨의 말이다.

"꽃 말고도 세월호 리본이나 국화를 붙이면 안 되냐는 문의도 있다. 그런 꽃 스티커도 있고, 시민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도 남길 수 있도록 꽃 모양 포스트잇도 준비했다. 꽃벽은 시민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태그:#차벽을_꽃벽으로, #미술가_이강훈, #차벽, #꽃벽, #경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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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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