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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만 보고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다 접한 책이 계기가 되어 그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나면, 후속 작품을 은근히 기다리게 된다. 물론 워낙 빨리 변하는 세상이요, 시류에 편승하는 작가 또한 없지 않아 그러한 선택이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실망보다는 충분한 만족을 안겨주는 작가가 있다.

2009년, 인구 9백만인 나라에서 120만 부 이상 팔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요나스 요나손이 그 주인공이다. 두 번째 소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역시 큰 인기를 누리며 요나손 열풍을 일으켰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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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작가 특유의 화법 덕택에 두 권의 책을 키득거리며 술술 읽었던 기억은 신작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했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두 명의 친구가 주인공인 반면, 킬러 안데르스는 주인공들에게 이용당하는 인물로 나온다. 살인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우발적 살인으로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안데르스. 말 거래로 엄청난 부를 자랑하던 조부가 디젤의 출현으로 망하게 된 후 가난을 물려받은 페르 페르손.

목사가 가업이던 집안에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온갖 무시를 당하며 자란 까닭에 우여곡절 끝에 목사가 되었지만 강단에서 욕설을 내뱉고 쫓겨난 전직 교구목사 요한나 셜란데르. 세 사람은 페르 페르손이 리셉셔니스트로 일하는 약간 불법적인 3류 호텔인 땅끝 하숙텔에서 팀을 꾸려 사업을 시작한다.

사업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손발을 부러뜨려 달라는 의뢰를 받고 해결사 노릇을 하는 구타 대행업이다. 영악한 페르와 요한나는 구타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킬러 안데르스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지역 언론에 인터뷰를 요청하고 대성공을 거둔다.

창조적 저널리즘, 구타 서비스업 성공에 기여하다

요나손의 작품이 갖는 매력은 악당이나 걸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누추하고 교활한 생존 방식을 보여 주며 사회를 풍자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법의 소설을 '피카레스크 소설'이라고 하는데, 요나손은 근본적으로 피카레스크 소설의 공식을 따른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에서 요나손은 어설픈 킬러와 철부지 젊은 두 악당이 구상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을 언론으로 규정짓는다. 언론은 한 인간의 비극을 잔혹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뽑아낸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고통받은 인간을 외설스럽게 묘사하는 모습은 포르노그라피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악당 짓을 하기로 작심한 킬러와 친구들을 언론이 도왔다며 이렇게 꼬집는다.

"다음 날, '엑스프레센' 지 1면에 다음과 같은 제목이 떴다. 킬러 안데르스와의 독점 인터뷰. 그는 스웨덴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가? <나는 아직도 살인에 목마르다!> 인용문은 정확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1면 제목으로 올릴 만한 문장으로 말할 능력이 부족할 때에는, 기자들은 그들이 실제로 말한 것 대신에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게 바로 <창조적 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창조적 저널리즘의 도움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사업은 킬러 안데르스가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며 위기를 맞는다. 그 위기는 믿음 없는 목사 요한나가 킬러 안데르스가 누군가의 양팔을 부러뜨리라는 의뢰를 깔끔하게 처리했을 때 상냥하게 칭찬하며 인용한 성경 구절이 원인이었다.

"그때 그녀는 그가 어린아이는 손대지 않은 것을 칭찬했었다. 그러면서 목사는 성경을 인용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성경을 말이다. 그런데 만일 벽돌처럼 두툼한 그 책 속에 뭔가... 그를 기분 좋게 해줄 다른 얘기들이 들어 있다면? 그를 다른 인간으로 바꿔 줄 얘기들이 들어 있다면?"

킬러 안데르스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턱뼈와 코뼈를 깨뜨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밀라고 권고하는 책을 읽게 되었을 때 그 사업은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전직 목사였던 요한나가 상대를 요리하려고 써먹었던 성경 구절에 킬러가 회심한 것이다.

킬러는 목사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을 때리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일종의 파업이었다. 반면 요한나는 킬러가 예수님을 만난 일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믿음 없는 목사와 회심한 킬러가 벌이는 수상한 비즈니스는 이때부터 좌충우돌하게 된다.

결국 구타 서비스를 접을 수밖에 없던 요한나와 페르는 또 다시 창조적 저널리즘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들이 이용한 것은 기성 언론이 아니라 '킬러 안데르스를 응원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였다.

요한나는 킬러 안데르스가 푹 빠져 있는 성경이 너무 갑갑했지만 '안데르스 교회'를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구상한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 시작한 성서적 함의를 갖는 운동과 유사하게 이렇게 포장한다.

"한 살인범이 예수를 만났고, 그 결과 악당들을 속여 빼돌린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그는 이 시대의 로빈 후드, 그것도 업그레이드된 로빈 후드라는......."

요한나가 스웨덴 전역에 퍼져 있는 기독교를 사업에 적극 이용하기 위해 교회와 교단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해학적이다. 회심의 결과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이들로 거듭난 전직 킬러는 페이스북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스타가 되었다. 또 믿음 없는 목사가 성경에서 뽑아 준 금쪽같은 부분들만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인기 스타로 거듭난다.

지금 삶이 즐겁게 느껴지십니까?

죄가 전혀 없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인간들을 구타해 주는 서비스에서 '혈관을 포도주로 채워 놓은 다음, 돈을 후려 먹는 사업'으로 전환한 페르와 요한나는 업종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구타 서비스 의뢰인이었다가 사기를 당한 백작과 백작 부인의 끈질긴 추적과 그들의 죽음 때문이었다. 다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시점에 둘은 서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들의 삶을 바꾼다.

"지금 삶이 즐겁게 느껴지냐?"

요나손의 소설에서 삶은 주인공들에게 주로 엿만 먹인다. 일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고, 어린 시절은 불우하다. 그랬던 주인공들이 여러 사건을 겪으며 주체적 존재로 성장한다. 일종의 신데렐라 소설 같아 보이지만, 주인공이 공주가 되는 것과 같은 화려함은 없다.

아주 담담하게 성장한 내면이 드러날 뿐이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에서 요한나는 그런 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어린 시절 여자라는 이유로 예수를 믿지 않기로 했던 요한나의 독백은 지독하게 대립해 왔던 존재와의 화해를 가늠하게 한다.

"만일 지금 다시 잠드는 대신에 잠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면, 그것은 이 문제가 자신의 단순한 무신앙과 관계된 것이라기보다는, 믿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자신의 태도와 관계된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한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못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자신의 관점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원한을 표출하고자 택했던 관점이 변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전직 교구 목사인 요한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엔 너무 고단한' 삶을 갈무리하기 원한다.

소설 속에서 구타 서비스, 사이비 종교 사업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주인공들은 악당들이다. 지폐로 빵빵하게 채워진 트렁크를 차지하기 위해 만인이 벌이는 무한 경쟁의 사바나로 뛰어든 영악하고 뻔뻔한 악당들 말이다.

그런데 이 구제불능 악당들이 소설 말미에서 구제 사업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은 억지스럽지 않다. "지금 삶이 즐겁게 느껴지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마지막 업종 전환은 과장스럽거나 떠들썩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작가는 삶은 그렇게 천천히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2016)


태그:#요나스 요나손, #스웨덴, #킬러 안데르스와 그 의 친구 둘, #책동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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