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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운반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과 관련해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검찰이 압수물을 차량으로 운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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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초로 예정된 '최순실 특검' 출범을 앞두고 검찰이 삼성을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지난 23일 국민연금과 삼성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것을 두고 대가성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서다.

사실 삼성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우선 미르-K스포츠 재단에 전체 53개 기업 중 가장 많은 204억 원을 냈다. 여기에다 지난해 9월부터 10월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가 실질 소유한 독일 법인 코어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280만 유로(35억 원)를 별도로 지원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에 검찰특별수사본부는 지난 8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부서, 대한승마협회 등 9곳을 압수수색했다.

삼성 입장에선 7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스캔들에 이어 또 한 번 악재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지금은 삼성을 바로잡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다.

첫 번째 기회는 지금으로부터 꼭 9년 전인 2007년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었다. 그의 양심 고백의 뼈대는 ▲ 불법 비자금 조성 및 탈세, 그리고 이를 감추기 위한 회계 조작 ▲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 ▲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불법 로비 등 세 가지다.

특히 삼성이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운영했다는 그의 고백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이 비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폭로했다.

"나는 삼성이 운용하는 비자금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옛 삼성본관 27층에 있던 비밀금고로 끊임없이 드나들었던 현금 뭉치들을 봤을 뿐이다. (중략)

삼성 비자금의 용도는 다양했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의 선거자금이 됐다.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불법 로비의 자금이기도 했고, 이건희 일가의 개인 재산이 되기도 했다. 물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지분을 취득하기 위한 밑천이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 이후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당시 핵심이던 이건희 회장,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전략지원팀장 등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했다가 여론의 등쌀에 못 이긴 나머지 특별수사·감찰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한편 정치권은 특검으로 뜻을 모았다. 당시 통일민주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권영길, 창조한국당 문국현 등은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에 합의했다. 한나라당 역시 2002년 대선자금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 수사를 위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김 변호사는 정치 논리에 휘둘리기 쉬운 특검보다는 검찰 자체 수사가 낫다고 보았다. 김 변호사의 말이다.

"나는 애초부터 특검 도입에 반대해 왔다. 검찰이 자체 수사하는 쪽이 더 낫다는 입장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나는 특검 도입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우리 검찰을 믿는다. 삼성이 뿌린 돈에 오염된 자들은 소수일 뿐이다. 검찰 안에는 깨끗한 검사들이 더 많다. 삼성 비리 수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청렴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나는 우리 검찰 안에 이런 수사를 맡을 만한 검사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은 당선 축하금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특검에도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특검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상황관리에 성공한 조준웅 특검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 검찰, '최순실 의혹'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 압수수색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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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바로 잡을 기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청와대가 특검 후보자로 '정권을 물어뜯지 않을 사람'이란 조건을 내걸었다고 밝혔다. 왜 그랬을까?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김 변호사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자.

"청와대는 특검 도입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때 거부권 행사도 검토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 특검을 수용했다. (중략)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입장 변화가 어떤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특검 도입으로 노 전 대통령이 손해 본 게 없었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삼성 비리가 정권으로 튀는 것을 잘 막았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수사하는 것보다 특검을 도입하는 쪽이 상황을 장악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김 변호사의 지적대로 조준웅 특검은 상황을 잘 관리했다. 물론 일정 수준 성과를 내기는 했다. 특검 수사결과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자산은 4조 5000억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 변호사는 은폐된 비자금, 이건희 회장 부인인 홍라희 여사가 사들인 고가 미술품 등을 합치면 10조 원은 훌쩍 넘기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특검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비자금 역시 출처를 파헤치지 않았다. 더구나 특검은 이건희 회장에게 큰 선물을 안기기까지 했다.

지난 2010년 5월 삼성생명은 상장했고, 이때 이 회장은 4조 대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특검 수사 이전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4.54%였다. 그러나 조준웅 특검은 차명으로 관리돼 온 삼성생명 지분 모두가 이 회장 소유라고 인정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20.76%로 불어났다. 결국 특검이 이 회장의 횡재에 일조한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회장의 그룹 지배구조를 다져준 장본인도 조준웅 특검이다. 특검 전엔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중 19.34%를 소유했다. 만약 에버랜드가 최대주주가 되면 금융지주회사가 되는데, 그렇다면 삼성생명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 7.21%를 정리해야 했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삼성생명)가 비금융 손자회사(삼성전자)를 소유하는 건 불법으로 규정한 금융지주회사법 때문이었다.

이 경우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순환출자 방식으로 이뤄진 삼성그룹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러나 조준웅 특검이 차명재산을 이 회장 소유로 인정해준 데 힘입어 이 회장은 삼성생명 최대 주주로 부상했다. 그리고 삼성생명은 상장을 하더라도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장으로서는 특검이 고마울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그룹 바로 잡아야 나라가 산다

11. 21일자 SBS 8시뉴스 보도. 최순실 일가가 삼성으로부터 51억원을 받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주주인 국민연금에 압박을 가해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1일에 제일모직에 헐값에 흡수 합병하게 했다는 혐의를 그래픽을 통해 알렸다.
 11. 21일자 SBS 8시뉴스 보도. 최순실 일가가 삼성으로부터 51억원을 받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주주인 국민연금에 압박을 가해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1일에 제일모직에 헐값에 흡수 합병하게 했다는 혐의를 그래픽을 통해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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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검이 삼성을 바로잡을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린 결과 삼성은 거침없이 폭주했다. 사실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삼성은 204억 원을 내고 더 큰 것을 얻었다. 무엇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주목해보자. 둘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관련 기사 :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싶다).

문제는 합병을 위해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해야 하는데, 검찰은 이 과정에서 삼성과 최순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JTBC뉴스룸은 23일 "검찰은 지난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고 삼성이 최순실씨 등에게 200억이 넘는 돈을 지원한 경위를 의심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한 전후에 합병과 자금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검찰의 삼성 압수수색이 면피를 위한 보여주기식 수사가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특검 출범을 앞두고 검찰이 삼성을 정조준한 건 분명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이와 관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5일 오전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검찰이 수사를 잘하고 있기 때문에 더 수사를 하게 하고 특검의 수사를 마지막 순간에 하게 하도록 기한을 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특검이 됐든 검찰 자체수사가 됐든 재벌, 특히 삼성은 분명 바로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수사주체가 누구라도 조준웅 특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번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다. 조준웅 특검 처럼 정치논리에 휘둘려 다시 한 번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삼성은 지금보다 더 흉측한 몰골로 변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태그:#조준웅 특검,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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