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여미갤러리&카페를 맡아 운영하고 있는 조선희 관장을 만나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희씨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한국디자인진흥원과 남양알로에, 대한펄프 등에서 산업디자인 관련 업무를 맡았다. 대통령 표창도 받았고, 여성 최초로 중소기업 임원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충남 서산시 여미리에 사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고향마을 사람들이 신문화공간조성사업 제안서 제출을 앞두고 있어 문화행사 실적이 필요한데, 뭐 좋은 아이디어가 없냐는 거예요. 이전에 몇 번 여미리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마을에 미륵불상도 있고, 고택도 있고, 300년 넘은 느티나무도 있고,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동네였어요. 친구에게 볼거리가 많으니 마을풍경을 담은 사진 콘테스트를 개최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그랬어요. 그 뒤 마을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이게 좋은 반응을 얻었죠." 여미리가 신문화공간조성 시범마을로 선정된 뒤 마을 사람들은 조선희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녀는 주말마다 마을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과 친구로부터 마을의 갤러리&카페운영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서울 토박이인 그녀는 가족, 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여미리로 자신의 거주지를 옮겼다.
그녀는 정미소로 사용하다 방치된 건물을 여미갤러리&카페로 만들었다.
"이게 10년 동안 비어있던 건물이에요. 시골엔 폐가가 되어 보기 싫은 공간들이 많잖아요. 무허가 건물이라 개축되지 않아 정미소 이미지를 살려서 새로 건물을 지었어요. 사람들이 정미소처럼 보인다고 그래요."
시골로 내려온 후 마음은 푸근하고 행복했지만 현실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예쁘게 꾸미고 싶고, 뭘 하고 싶으니까 수입은 별로 없는데 제 돈이 계속 들어가기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한 1년 반 정도 지나니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어요."그럴 즈음 마을 사람들이 카페에서 생일잔치를 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한달에 한 번 정도 카페에서 빵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생일잔치를 하시는 거예요. 어려운 저를 도와주시려고 그러는데,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마음을 다시 잡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들의 도움 때문이었죠."
마을사람들은 그녀에게 채소와 먹거리도 가져다 주었다. 앞집 할머니는 배추를, 신문화공간 운영위원장은 쌀, 현미, 찹쌀을, 이장님은 양파, 감 등을 가져다 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가족처럼 그녀를 도왔다.
"제가 사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가져다 주세요. 지나가다가 손님 차가 한 대도 없고 제 차만 있으면 '아이고 손님이 와이리 없노' 하면서 친구분들 전화로 불러서 일부러 차를 마셔 주기도 하시고.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잖아요." 여미갤러리&카페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이걸로는 생활이 안 되요. 축제가 있는 4월에 조금 흑자고 그 외는 계속 마이너스죠. 갤러리 작품이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가끔이에요. 그래서 바깥 활동을 시작했어요. 운산면에 대철중학교가 있는데, 제가 거기서 씨앗가꿈이 프로그램을 기획·총괄하고 있어요. 거기서 수입이 좀 생기고, 연금 조금 받고 있고, 그걸로 생활해 나가고 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먹고 사는 데 아무 걱정 없는 사람이 시골에 내려와 여가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찬성이지만 목숨을 걸고 하려면 안 될 것 같아요."
동네마다 텃세가 있는 법인데, 조선희씨가 여미리로 이사 온 후 마을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이전부터 주말에 동네회의에 참석해 왔으니 마을 사람들과 안면은 있어요. 이사한 후 마을풍물단에 가입해 활동을 했어요. 저는 길을 가다가 마을 사람들 만나면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해요. 제 칭찬은 아니지만 동네 사람들이 저 없는 곳에서 '싹싹하다, 인사성 밝더라, 지나가다 만나면 차를 어디까지 태워주더라, 인간성이 좋더라'라며 제 칭찬을 많이 하세요. 저는 마을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녀는 여미리로 내려 올 즈음 몸이 말랐고, 얼굴이 검은 편이었다. 하지만 여미리에 정착한 이후 살도 적당히 찌고 얼굴빛도 밝아졌다.
"제가 외모상으로 너무 마르고 거무튀튀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무슨 병이 있는 줄 알았데요. 아픈 곳은 없었는데 그렇게 보였던가 봐요. 여미리에 오니 공기도 좋고, 햄버거나 피자 등 정크푸드를 먹지 않게 되니 몸과 마음이 상당히 건강해졌어요." 그녀는 갤러리 전시회를 1년에 20회 정도, 한 달에 2회 정도 개최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횟수다.
"사실 많이 힘들었어요. 카페에 손님 오면 차도 빼야죠, 전시도 준비해야죠, 쌍코피가 날 정도로 너무 고된 생활이었어요. 한번은 마을회의 할 때 노인회장님이 제가 새벽까지 늦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주셨어요. 마을 어르신들이 새벽 일찍이 일어나시니까 사무실에 켜진 불빛을 보셨나 봐요."탤런트 오미연씨도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3회 정도 열었다.
"오미연씨는 21살 때 만나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냈죠. 그러다 서로 생활이 바쁘다 보니 만나지 못하고 살았었는데, 30년 만에 다시 만난 거예요. 미연언니 동생이 블로그에서 저를 보았다고, 미연언니에게 한번 찾아가보라고 그랬던가 봐요. 언니가 정말 여기를 찾아왔어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저보고 옛날 그대로라고, 엊그저께 헤어진 사람들처럼 전혀 서먹하지 않다고 그랬어요. 언니가 저를 도와주려고 전시회도 하고, 마을 홍보영상 나래이션도 맡아서 해주시고. 언니에게 정말 감사하죠." 그녀는 갤러리 활성화를 위해 SNS 사용방법도 배웠다.
"실은 페이스북 이런 거 안 했어요. 갤러리를 홍보하기 위해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블로그와 카페를 시작했어요. 하루는 서산시장님이 갤러리를 방문하셨는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아는 체를 안 하니까 시장님이 젊은이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거예요. 어디서 오셨나요 묻는데 대전에서 왔다니까 시장님이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대전에서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는가 물으셨는데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보고 왔다고 말하니까 시장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녀는 농사 짓느라 고생하신 마을 어르신들께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다. 바쁜 농번기에 고생하셨고, 추수하느라 애를 쓴 동네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진식 화가, 신문화공간 운영위원장을 만나 마을축제를 기획하였다. 운영위원장이 돈을 대고 작년에 처음 개최한 마을축제는 마을음악회 정도의 작은 규모였지만 올해는 행사프로그램을 새롭게 기획하여 제법 규모가 있는 '달빛 예촌 여미리 마을예술제'로 만들었다.
마을축제 공연무대를 마을의 상징인 300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 설치했다.
"공연 할 때 돈 들여서 무대를 만들고, 행사가 끝나면 철거하잖아요. 그게 너무 아까운 거예요. 평소에 마을 사람들이 쉬는 그런 장소를 무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동네 마을회관 앞에 300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에 무대를 설치한거죠. 그 나무가 보호수인데, 아주 멋져요. 무대로 사용해보니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예술제에 참석한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작은 동네 축제에 국회의원이 흥이 나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고, 시장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동행한 공무원들이 다들 놀랬다고 해요. 이런 적이 없었다고. 주변의 마을 사람들도 여미리 마을축제가 그렇게 좋았다면서 부러워하더래요. 마을분들도 촌동네가 완전 업그레이드 됐다며 되게 기뻐하셨어요. 예술제 분위기가 정말 좋았던가 봐요." 올해로 여미갤러리도 개관 4주년을 맞았다. 11월에 개관 4주년 기념전시회를 끝냈고,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여미리 마을사람들이 직접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저희 마을은 동아리 활동을 해요. 사진 동아리, 집공예 동아리, 채소아트 동아리, 도자기 동아리, 양말 동아리 등 다양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아들, 손주들이 보러 와요. 어르신들도 가족들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녀는 여미리마을 전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고 싶어한다.
"여미리 마을 전체를 지붕 없는 갤러리로 만들고 싶어요.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전원주택을 조성하고 있어요. 저를 비롯해 도예방, 화가, 서예가 등 예술가 5~6명 정도가 입주할 거예요. 최근에 비어있는 절인 황운사를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개조하고 있어요. 버려진 건물, 구조물을 활용해서 아트쉼터를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앞으로 2, 3년 지나면 계획한 것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날 텐데, 여미리를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그런 마을로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제 시간을 좀 가졌으며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여행도 좀 가고, 여행을 통해 저의 고정된 시야를 좀 바꾸어 주고도 싶고." 여미갤러리 조선희 관장의 바람처럼 달빛 예촌 여미리가 아름답고 볼거리가 풍부한 예술촌으로, 신문화공간의 모범사례마을로 조성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