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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전학생이 한 명 왔다. 큰 눈에 큰 안경을 쓰고 있는 학생과 부모님은 교무실 한쪽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았다. 교무과와 이런저런 서류를 주고받고 나에게 보내졌다.

"학생부장님, 새로 전학 온 용연(가명)이 학생입니다. 학생 생활 규칙을 안내해주셔요."
"네."

교무실 반대편에서 일을 보고 있던 나는 아이와 악수를 청했다.

"일단, 반갑다. 난 사서 교사고, 학생부장 역할을 맡고 있어. 황왕용이다."
"네."

용연이는 수줍은 듯 악수를 받았다.

"자주 보자. 그리고 자주 보지 말자."
"네?"
"선생님은 사서 교사야. 도서관에서 자주 보자는 말이고, 학생부장으로서는 자주 보지 말자는 이야기야. 그리고 규칙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학생으로서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안 하면 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되고."
"아. 네."

용연이는 중3 남학생에 비해 조금 더 성숙해보이기도 했다. 알아보니 친구들보다 한 살 더 많단다.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서 넘겨버렸다.

그렇게 용연이를 잊고 있을 9월 무렵, 신고가 하나 들어왔다. 용연이와 몇몇 친구들이 학교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제보였다. 용연이를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사실이었다.

"용연, 자주 보지 말자고 했던 것 같은데?"

용연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학생부 선생님들과 협의 끝에 반성문과 짧은 봉사활동을 부여하기로 했다. 반성문 끝에는 담임선생님과 학부모님의 확인을 받게 돼 있었다. 용연이는 며칠째 반성문을 내지 않았다. 용연이를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 정말 부모님께서는 모르세요.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 꼭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사실 부모님께 많이 실망시켜드렸어요. 운동한다고 서울까지 전학을 갔는데, 운동 중에 상대편과 싸우다 실명 위기까지 갔거든요."
"지금 눈이 잘 안 보여?"
"아니오. 수술해서 겨우 실명 위기는 면했어요."
"그러면 더 잘 해야하는 거 아니야?"
"......"

용연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내가 너의 무엇을 믿고 그렇게 해야 할까?"
"선생님이 시키시는 건 다 할게요."
"그래? 일단 생각해보게. 교실 가서 수업 듣고, 샘이 부르면 와."

그렇게 용연이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 용연이와 몇몇 친구들과 함께 교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용연이가 피아노를 잘 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운동부를 하면서 참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됐다. 자세히 보니 눈도 참 선하게 생긴 용연이었다.

그렇게 사건(?)을 일단락 짓고, 10월 27일 문학콘서트 '문학, 성큼성큼'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독자감상단'을 꾸렸다. '사전독자감상단'은 문학콘서트 전에 먼저 책을 읽고 무대에 직접 올라 콘서트를 직접 꾸미기 위한 모임이다.

평소 도서부 활동을 하는 아이들 위시로 사전독자감상단을 꾸렸다. 책을 읽고, 기획회의를 열었다. 콘서트에 맞춰 '책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작곡을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사와 노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작곡자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용연이가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아침 등교 지도를 하는데 용연이를 볼 수 있었다. 용연이를 따로 불러 이야기를 꺼냈다.

"용연, 문학콘서트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어.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라는 책을 읽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데 책을 읽어보고 이 느낌에 맞춰 작곡해줄 수 있을까?"

용연이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네. 제가 해야지요."

용연이를 볼 때마다 관심을 표현했다.

"책은 다 읽었어?"
"네. 거의 다 읽었어요."
"그래~ 기대할게~"

김해원.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단편집에서 '표류'를 읽고 작곡함.
▲ 학생이 작곡한 악보 김해원.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단편집에서 '표류'를 읽고 작곡함.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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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이 되기 정확히 2주 전, 용연이는 나에게 악보를 내밀었다. 사실 악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악했다. 그런데 피아노로 연주했더니 놀라운 곡이 됐다. 제대로 작곡 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 용연이는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를 읽고, 그중 <표류>라는 단편을 보고 느낀대로 작곡을 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단편 표류에 나온 주인공을 보고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표류'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용연이는 나를 보면 윙크를 하곤 한다. 아래 첨부한 음성파일에는 문학콘서트 당일 용연이가 피아노를 치고 수정이와 내가 함께 노래를 했던 목소리가 담겨 있다.

170명의 관객 앞에서 용연이가 직접 작곡한 '책 노래'를 키보드로 연주하고, 수정(도서부)이와 내가 노래하는 장면
▲ 문학콘서트 중 용연(가명)이가 키보드 치는 장면 170명의 관객 앞에서 용연이가 직접 작곡한 '책 노래'를 키보드로 연주하고, 수정(도서부)이와 내가 노래하는 장면
ⓒ 황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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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표류 노래.mp3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웹진 킥킥에 중복 송고함.



태그:#도서관, #사서교사, #책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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