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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쪽으로 높게 들어선 고층 호텔, 라마다 강원속초
▲ 대포항 바닷가 쪽으로 높게 들어선 고층 호텔, 라마다 강원속초
ⓒ 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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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명. 한 해 속초를 찾는 관광객 숫자다. 2017년 동홍천에서 양양까지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속초를 찾는 탐방객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일각에선 '요즘이 속초 발전의 적기'란 말이 떠돌고, 그래서인지 각종 건축과 사업 인허가가 넘쳐난다.

인구 8만여 명인 소도시 속초에 지난 2년 동안 공급된 아파트가 무려 4000여 세대다. 올해 동서고속철도 사업이 확정된 후론 온 속초의 땅값이 들썩이고 있고, 곳곳에 고층 건물이 쭉쭉 올라가고 있다.

갑자기 치솟은 부동산과 각종 개발은 속초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까? 오히려 어떤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속초의 위기라고 경고하고 있다. 곳곳에서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속초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환경을 모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속초의 자연환경에 큰 위기가 왔음을 직감할 수 있는 곳은 속초해수욕장이다. 속초해수욕장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고속버스터미널과 인접해 있어 사시사철 주말이면 많은 탐방객으로 북적인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너울성 파도로 해변의 모래가 계속 유실되어 해마다 엄청난 양의 모래를 퍼부어 해변을 복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수억 원을 들여 복구한 모래는 너울성 파도 한두 번에 다시 유실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수년째 계속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게 무분별하게 해안을 개발해 파도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성탄절 아침 찾은 속초해수욕장 모습, 처참했다

지난 12월 25일 성탄절 오전에 찾은 속초해수욕장 모습은 처참했다. 며칠 전부터 너울성 파도가 몰아치더니 해변 모래는 상당부분 유실되었고, 나무데크도 처참하게 부서졌다.

속초시는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앞바다에 파도를 막는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다. 앞으로 2019년까지 총 33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잠제와 헤드랜드 등 더 많은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 사업으로 모래 유실은 막겠지만, 속초해수욕장은 바다에 설치된 콘크리트 구조물로 수평선조차 볼 수 없는 해변이 되고 말 것이다.

속초 바닷가의 해안 경관 훼손도 큰 문제다. 속초해수욕장에서 남쪽을 쳐다보면 아름다운 해안 언덕이 있다. 이곳이 바로 '외옹치(外瓮峙)'로 우리말로는 '밧독재'이다. '항아리를 엎어놓은 모양의 고개 바깥'이라는 뜻이다. 롯데는 지난 1989년 속초시로부터 사들인 이 언덕 위에 리조트를 짓고 있다. 언덕 위에 들어서는 이 인공 구조물로 인해 아름다운 해안 언덕 외옹치의 운치는 완전히 사라졌다.

롯데가 리조트를 짓고 있는 언덕 그 앞에는 지난 7월 문을 연 라마다 호텔이 성냥갑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바닷가 7번 국도를 타고 속초로 접어들면 첫 관문에서부터 이 고층 건물이 바다풍경을 가로막는다. 호텔 건물 옆에도 고층 호텔이 하나 더 들어설 예정이다.

속초에는 더 이상 아름다운 대포항과 외옹치 언덕, 속초해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영랑호변이나 속초해수욕장 인근 등 유명관광지 인근에도 29층 고층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환경과 경관을 망치는 난개발이 속초시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속초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인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하다.

12층서 41층으로, 속초시는 왜 그랬을까

지난 7월 7일 청초호41층 분양호텔 반대 시민대책위 출범식 기자회견
 지난 7월 7일 청초호41층 분양호텔 반대 시민대책위 출범식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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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속초시는 도시관리계획 변경고시를 통해 청초호유원지 내 토지 1필지(속초시 교동 1024-1)의 층수를 12층에서 41층으로 변경해줬다. 이곳 청초호 유원지는 경관과 환경보전을 이유로 모든 건물의 층수를 제한해 온 곳이다.

지난 4월 4일 서울 소재 (주)에스지에이앤디는 이 땅에 총 2600억 원 상당의 사업비를 들여 867실 규모 41층(높이 149m)짜리 분양형 레지던스호텔을 짓겠다며 속초시에 주민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속초경실련과 속초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환경과 경관 훼손, 특혜의혹을 이유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속초시는 유원지 내 세부시설을 12층에서 41층으로 변경하는 것은 '경미한 것'이라며 시장 직권으로 변경 고시를 강행했다.

7월 7일 속초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청초호 41층 분양호텔 반대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반대운동에 나섰다. ▲반대 기자회견 ▲항의 방문 ▲시민 서명 ▲1인 시위 등을 진행했다. 아울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회비를 모아 지난 8월 12일 속초시를 상대로 도시관리계획변경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층 건축 인허가는 계속 진행중이다. 업체에서는 지난 8월 강원도 건축사전 심의를 마친 뒤 분양관도 개설하고 본격적인 사전 홍보 활동에 돌입했다. 토지소유권 미확보로 2개월 정도 사업이 지연됐지만, 지난 11월 23일 업체는 속초시에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 인허가 서류를 접수했다. 이후 속초시는 지난 12월 16일 해당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인가 열람공고를 했다.

속초시는 인허가 열람 기간이 끝나고 관계기관의 의견이 취합되면 41층 분양호텔 실시계획 인가와 건축허가를 내주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실시계획인가와 건축허가가 나면 속초시도 해당사업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청초호 41층'은 속초시 난개발의 결정판

이 41층 분양호텔 사업은 속초시 난개발의 결정판이다. 속초시민들이 청초호 41층 분양호텔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사업은 특정업체의 사적 이익을 위해 시민의 공익을 훼손한 특혜성 사업이다. 지금까지 특정 업체나 개인을 위해 청초호유원지 도시관리계획을 이렇게 대폭 변경해 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12층에서 41층으로 층수가 변경되면 그만큼 조망권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부동산개발업체로서는 보다 비싼 가격에 건물을 분양할 수 있는 특혜를 받는 것이다.

업체는 사업 제안서에서 부산의 '엘시티 레지던스'를 사업 모델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고급주거시설인 '레지던스'는 다수 시민이 이용하는 유원지에는 들어설 수 없는 시설이다. 법적으로는 생활형 숙박시설이라고 하지만 레지던스는 특정 개인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주거시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둘째, 해당부지에 12층이 아닌 41층 메머드급 건물이 들어서면 유원지의 경관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겨야할 아름다운 경관을 고급주거시설 소유자와 호텔 이용자 몇몇이 독점하게 되어 '경관의 사유화'가 불가피하다. 1993년 청초호유원지를 조성할 때 속초시가 환경부와 협의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호텔 등 고층 건축물을 지을 시에 해상에서 설악산 전망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부여되었다. 41층 건물은 청초호 유원지 경관의 기본원칙을 위반하는 건물이다. 더구나 41층 건물 하나만이 문제가 아니다. 41층 건물이 들어서면 청초호유원지의 층고 제한은 완전히 무너져 호수 주변으로 고층건물이 난립할 것이다.

2016년 8월 17일 속초 수협어판장에서 바라본 청초호와 설악산의 석양
 2016년 8월 17일 속초 수협어판장에서 바라본 청초호와 설악산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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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층 건물이 들어서면 설악산의 상징인 달마봉과 울산바위, 백두대간 능선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이 건물로 인해 크게 훼손된다. 아울러 속초시민들은 휴식 공간인 유원지에서 폭력적인 고층 건축물로 인해 큰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셋째, 41층 건물이 들어서면 청초호의 마지막 자연 생태계 지역인 '철새도래지' 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41층 분양호텔이 들어서는 곳은 청초호 철새도래지인 청초천 하구와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청초호유원지 매립 조성과정에서 철새도래지 보호 문제는 민감한 것이었다. 이를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속초시는 큰 갈등을 빚었으며, 매립사업도 상당히 어렵게 이뤄졌다. 그래서 철새도래지 인근 호텔부지의 12층 제한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조치였다. (주)에스지에이앤디는 철새도래지 피해 여부 관련, 조류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환경보전방안을 수립하여 속초시에 제출하였다.

업체의 의뢰를 받은 춘천교대 박아무개 부교수는 의견서에서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경우 야생조류의 인공구조물 회피 경향에 따라 조류서식 범위 축소가 예상되며, 반면 서식지 일반종은 증가하여 종다양성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추가적으로 ▲야간조명과 주간햇빛 반사 피해 ▲건물 유리 조류 충돌 우려를 제기했다.

그러나 제시한 대안은 실효성이 없다. 객실 867실짜리 상업적 건물의 야간조명을 통제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150m짜리 건축물의 햇빛 반사를 나무식재를 통한 조경으로 막겠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울러 고층건물의 조류충돌이 우려된다고 했지만, 대안은 아예 제시되지도 않았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철새도래지 바로 옆에 41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세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새들의 비행공간을 가로막는 건물이 들어서면 어떤 보완 방안을 내놔도 철새 도래지 훼손을 막을 수가 없다. 속초시는 지난 9월 철새도래지 피해 여부에 대해 공동조사를 하자는 속초환경운동연합의 제안도 거부했다.

내년 1월 행정소송 1심 선고, 환경피해 협의 주목

41층 호텔과 청초호 철새도래지는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41층 호텔과 청초호 철새도래지는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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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민단체들이 여러 가지 우려를 표했지만, 속초시와 (주)에스지에이앤디는 사업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속초시는 행정소송 등의 과정에서 "해당 지역은 지나친 규제로 성장이 지연되어 왔기에 이번에 지역경제 활성화 및 세수증대를 위해 층수와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며, "적합한 절차를 통해 진행되었기에 특혜 논란은 있을 수 없고, 경관위원회를 통해서도 충분히 검토해 경관 훼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레지던스 시설에 대해서도 속초시는 "법적으로 생활형숙박시설이라 유원지에 충분히 들어설 수 있는 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에스지에이앤디는 지난 8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당초 사업의 최초 설계는 12층 3개 동이었으나 속초시민들의 수평 조망권을 저해하는 건축계획으로 속초시 유관부서와 전문가 집단과 협의해 12층에서 41층으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철새도래지 피해 여부와 관련해선 "청초호가 도시화된 이후 천연기념물인 기러기목 고니과 3종은 찾아볼 수 없고 조감도상에 기록된 32종의 철새도 그냥 철따라 왔다가 잠시 머물고 가는 조류일 뿐"이라며 "그럼에도 철새도래지 보호를 위해 속초시와 협업해 관심과 노력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속초시, 업체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내년 1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전망이다. 청초호 석호관리기관인 원주지방환경청에서 내년 1월부터 해당 사업의 철새도래지 피해 여부에 대해 본격적인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민단체가 제기한 행정소송도 1월 중 1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청초호 41층 분양호텔 논란은 관광지 속초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엄경선 기자는 '청초호 41층 분양호텔 반대 시민대책위'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속초, #난개발, #41층, #청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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