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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의문의 상자가 열렸다

2015년 10월 9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로비로 가니 안내원 경미가 의아한 눈초리로 우리를 맞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긴데 어제 드린 상자를 안 열어 보신 것 같습니다."
"어머, 얘, 정말 깜빡했네. 지금 올라가서 열어보고 올까? 아니면 나중에 방에 갈 일 있을 때 가서 열어봐도 될까?"
"지금 가서 열어 보시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걸 갖고 내려오셔야 합니다."
"갖고 내려와야 한다고? 아니, 대체 그게 뭐기에?"
"열어보시면 압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눈썹과 한 쪽 입술 끝을 추어올리며 마치 심문하듯 끼어든다.

"가만 있어봐. 그런데 경미야, 우리가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지? 혹시 우리 방에 몰래 카메라라도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거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상자를 안 열어 봤다는 걸 알 수가 없잖냐?"

경미는 빙그레 웃으며 어서 올라가 상자를 열어보고 내려오라고 한다.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계속 말을 이어 간다.

"경미야, 너 이 늙은이가 속옷바람으로 방안에서 돌아다니는 거 화면으로 다 보고 있었지?"
"에구머니나, 무슨 그런…."

나는 남편과 함께 방으로 올라와 급히 상자를 열어봤다. 상자 안에 짙은 청색 완장 2개가 들어있다. 완장 위에는 '기자'라는 흰색의 글씨와 함께 로마자 알파벳 P가 둥근 원안에 적혀 있다. 외신기자를 위한 완장이다. 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뛰기 시작한다. 남쪽에 살고 있는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련희씨, 이제 당신의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리운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메신저로 연결해 드릴게요."

나는 외신기자 완장을 팔에 차고 로비로 내려갔다.

길거리에서 만난 평양사람들의 일상

외신기자들의 집합 장소인 양각도 호텔.
 외신기자들의 집합 장소인 양각도 호텔.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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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미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경미야, 정말 고마워, 너무너무 고마워."
"제게 고마워 하실 것 없습니다. 외무성에서 하는 일이니까요."
"외무성? 아, 참, 그런데 왜 기자 완장이 2개야? 하나면 되는데."
"두 분이 함께 다니셔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부터 외신기자들은 외무성의 일정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 한 분에게만 기자 자격을 드리면 또 한 분은 해외동포사업부의 일정을 따라야 하니까 두 분이 떨어지시게 된단 말입니다." 

오늘 오전은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 취재가 계획돼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외신기자들의 집합 장소인 양각도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등교하는 중인 어린 남매를 평양 시내서 마주쳤다.
 등교하는 중인 어린 남매를 평양 시내서 마주쳤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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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저들에게 다가가고픈 욕망이 피어오른다. 저들과 함께 나란히 걷고 싶다. 마치 나도 어디론가 출근하는 사람처럼. 나는 경미에게 시간 여유가 좀 있으면 나도 버드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걷고 싶다고 부탁했다. 차를 세우고 인도로 올라섰다. 그리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한 어린 남매가 책가방을 메고 등교한다. 남자 아이의 손에는 이곳 사람들이 '구럭지'라고 부르는 비닐 봉지가 들려있다. 남자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짓자 아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듯 묵례를 하고 지나친다. 어쩜 내가 이 근처 학교의 선생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보통 북한에서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장난기 섞인 웃음과 함께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내가 분명 외국인일 거라고 짐작하는 게다. 아마도 가끔 볼 수 있는 중국인 관광객일 거라고 생각하는 듯. 그런데 이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순간 내가 이방인이 아닌 듯 느껴진다. 짜릿한 기분 속에 이곳 사람이 된다.

아이를 품에 안고 가는 엄마.
 아이를 품에 안고 가는 엄마.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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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마이뉴스> 평양 특파원입니다

내가 하염없이 걸어가자 경미가 시간이 없다면서 어서 차로 돌아가자고 재촉한다. 발길을 돌려 되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와 마주친다. 아이는 한 손에 쥐어진 빵을 먹으면서 또 한 손으로는 엄마의 목덜미를 꼭 부여잡고 매달려 있다. 이제 걸어도 될 만한 나이로 보이지만 엄마는 행여 아이가 떨어질까 두 팔로 아이를 단단히 감싸 안는다. 너무나 평범한 모습임에도 콧등이 시큰거려 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기자들이 나와있다. 족히 200명은 되는 것 같다. 이들과 함께 섞여 있자니 도저히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정식 기자가 아니라서. 이들이 내 목에 걸려 있는 싸구려 '똑딱이' 카메라를 자꾸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우리 외신기자들은 여러 버스에 나눠타고 만경대로 향한다. 버스에 오르니 한 외국기자가 말을 걸어온다.

"어느 나라 언론사입니까?"
"남한(South Korea) 언론사입니다."

남한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마치 취재하듯 계속 질문을 한다.

버스에서 내린 외신기자들.
 버스에서 내린 외신기자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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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남한 언론사들도 취재가 허락됐습니까?"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습니까?"
"저는 국적이 남한이 아니라서…."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나는 말끝을 흩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신기자는 끈질기게 물어본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국적이 남한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남한 언론사 소속이라는 것을 북한 당국이 알고 있습니까?"

설명하기 복잡하다며 대답하기를 꺼리자 그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똑딱이' 카메라로 옮겨간다. 나를 의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내가 기자로 위장해 북한에 잠입한 불순분자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래도 이 기자가 나를 북한당국에 신고라도 할 것 같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고향집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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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쓸어버리자"는 구호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취재를 마친 우리의 오후 일정은 자유 취재다. 물론 안내원과 함께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밖에서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통제가 심하지는 않다고 외신기자들은 말한다.

한 외신기자를 안내하는 북측 안내원은 "일부 서방의 기자들이 안 좋은 장면만 촬영해 왜곡 보도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기사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서방의 기자들이 올려놓은, 고의적으로 편집된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북한 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역앞에 오니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미제가 덤벼든다면 지구상에서 영영 쓸어버리자"라고 새겨져 있다. 북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했던 건, "남조선을 쓸어버리자" 같은 구호를 북한에서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평양 거리에서 마주친 구호.
 평양 거리에서 마주친 구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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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우리 자리 맞은편에 귀여운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다. 말을 시켜도 아무 대답 없이 큰 눈망울만 깜빡거린다. 남편이 아이를 웃겨보려고 온갖 얼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이런저런 몸짓을 다 해봐도 아이 대신 오히려 할머니만 계속 웃으신다.

내릴 무렵 나이를 물으니 좌석 위에 얹어놓은 손가락을 약간 움직여 보인다. 과자라도 주고 싶은데 항상 손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스낵이 오늘따라 없다. 내려서 객차문이 닫히기 전 손을 흔드니 마침내 아이가 팔을 뒤로 움직이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오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출·퇴근하고, 손녀와 외출도 하고, 단지 내에서 장기도 두고

지하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와 손녀.
 지하철에서 만난 한 할머니와 손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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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린 평양시민들.
 지하철에서 내린 평양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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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려 일상생활을 취재해 보려고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두 분이 장기를 두고 계신다. 그 옆에서 손자인지 아니면 동네 아이인지 한 소년이 장기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훈수를 두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한 할아버지께서 언짢은 표정으로 안내원 경미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진 찍지 말라고 하라우."
"우리 동포입니다."
"기래? 동포구만. 오데?"
"재미입니다."(재미: 재미동포)

동포라니까 마침내 우리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이 할아버지 역시 여타 북한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질문을 하신다. 담배를 연상 피우시던 다른 할아버지께서 화를 내신다.

"어서 장기 두라우."

장기를 두는 두 할아버지와 가운데서 훈수 두는 소년.
 장기를 두는 두 할아버지와 가운데서 훈수 두는 소년.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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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가 몹시 배가 고프단다. 서두르느라 아침을 먹지 못한 모양이다.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식탁에 앉자마자 우리는 맥주부터 주문한다.

고작 반나절 취재를 다녔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힘이 쭉 빠진다. 기자가 내 직업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오늘 오후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로 했다.

내일은 남편이 기다리는 북한 정규군 열병식 사진을 기자의 자격으로 찍을 수 있는 날이다.

급히 오느라 아침 식사도 못 했다는 안내원 경미.
 급히 오느라 아침 식사도 못 했다는 안내원 경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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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평양, #북한, #신은미, #특파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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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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