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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몽골(원나라)과의 동맹만을 중시하고 백성들의 안위는 무시해버린 고려 충렬왕. 그의 아버지인 원종은 경상도 마산에 몽골군의 일본 침략기지인 정동행성을 건설해주었다. 요즘으로 치면, 사드를 유치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충렬왕은 몽골의 제1차 일본 침공에 가담했고, 제2차 일본 침공 때도 군인과 물자를 보내 몽골의 침공을 도왔다.

그랬던 그가 1297년 몽골 정부에 사람을 보냈다. 임금을 그만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당시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고 있었으므로, 몽골 정부가 고려 정부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었다. 몽골 정부가 일종의 헌법재판소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려왕이 몽골 정부에 자진 사퇴를 신청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자진 사퇴를 알리는 것에 비유될 만했다. 이런 일이 있은 1297년 역시 정유년 닭띠해였다. 

이듬해인 1298년 연초, 충렬왕은 몽골 정부의 결정으로 퇴진했다. 나라의 자주권을 팔아버린 충렬왕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좋아하는 백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의 힘으로 직접 성취한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의 이익과 무관하게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충렬왕은 퇴진한 그 해에 몽골 정부의 결정으로 복귀했다. 남의 나라의 세계전략을 위해 고려를 희생시킨 충렬왕과 그 세력이 권력을 회복한 것이다. 끝까지 신경 쓰며 주의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충렬왕의 퇴진과 복귀는 이것을 보여준다. 

소강상태였다, 다시 타오른 전쟁의 불길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졌던 전쟁의 불길이 다시 타올랐다. 부산상륙작전을 감행한 뒤 평양까지 밀고 올라갔던 일본군은 조선 민병대(의병부대)와 명나라 파견군에 밀려 한반도 남부로 내려가 있었다. 그러다가 전열을 정비하고 전쟁을 재개했다. 대륙 진출, 군사대국화의 야망으로 불타던 옛날판 '아베 신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일을 벌였다. 일본이 조선 침략전쟁을 재개한 1597년 정유재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유년에 발생한 해전. 서울시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정유년에 발생한 해전. 서울시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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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으로부터 360년 뒤. 1957년, 이때도 정유년이었다.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가 '한 건'을 크게 했다. 2015년에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과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처럼,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도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미일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이 이승만 독재로 시끄럽고 야당이 대통령에 대한 경고 결의안을 발의하던 그 해에, 기시 총리는 미일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미일동맹 강화 및 자위대 활동범위 확대를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해에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 되었다. 전쟁 범죄를 일으켰으니 죄인처럼 살아야 할 나라가 패전 12년 만에 미국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정유년엔 좋은 일도 있었다.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해 고구려를 세운 일로 인해 고구려와 동부여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같은 혈통이면서도 서로 으르렁댔다. 그런데 동부여에 남아 있던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세상을 떠나면서 양측 관계에 해빙의 바람이 불었다. 기원전 24년, 정유년의 일이다. 기원후에는 정유년이 항상 7로 끝나지만, 기원전에는 항상 4로 끝났다. 지금 우리가 쓰는 서양식 양력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

동부여 정부는 유화의 장례식을 태후(대비)의 장례식으로 치르고, 유화의 사당도 신당 즉 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인정했다. 격하게 감동한 주몽은 사신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얼어붙은 민족 내부가 이로 인해 따스해졌다.

체제가 불안정해진 1177년 정유년

서기 817년 정유년에는 국가의 존재의의를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흉년으로 농업생산이 감소하여 불경기가 되자 굶주려 죽는 백성이 많았다. 그러자 신라 헌덕왕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지방정부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준 것이다. 백성들의 세금과 병역으로 살아가는 정부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사건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의 눈에 확 들어오는 사건들이다.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있건 간에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로 지난 2500년간의 정유년을 다시 돌아보았다. 체제가 강화됐느냐 불안정해졌느냐 아니면 별다른 변화가 없었느냐를 기준으로 정유년을 되돌아본 것이다.

그랬더니 정유년은 중국·일본에 비해 한민족 쪽에서 상대적으로 변화가 많은 해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민족 내부 상황은 한민족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외부 상황은 그것을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대신 한민족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때와 같은 시기를 일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기원전 504년부터 2016년까지 정유년은 총 42회 있었다. 이 42회의 정유년을 '체제 강화냐 체제 불안정이냐'의 관점으로 분류하면, 이런 수치가 나온다. 민족 내부 상황이 체제를 강화시킨 해는 4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해는 9개년, 특별한 변화가 없었던 해는 29개년이다. 외부 상황이 민족의 체제를 강화시킨 해는 7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해는 3개년, 특별한 변화가 없었던 해는 32개년이다.

서기 517년에는 KBS 드라마 <화랑>의 배경인 신라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신라 중앙정부가 지방 군사권을 흡수하고 국방의 중앙집권화를 이룬 것이다. 이 해에 병부 즉 국방부가 창설된 것이 그 증거다. 이것은 신라의 국가체제 혹은 질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었다.

고려 무신정권 때인 1176년에는 충남 공주의 명학소란 천민 구역에서 망이·망소이의 신분해방운동이 터졌다. 이 민중반란이 1177년 정유년에는 한층 더 격렬해졌다. 반군이 개경까지 진격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였다. 결국 진압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신분질서를 위협하고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1177년 정유년은 체제가 불안정해진 해였다. 이런 체제 불안정은 서민대중한테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조선 1717년 정유년, 전염병과 기근이 심각

조선 숙종 때인 1717년 정유년에도 체제 불안정의 신호가 커졌다. 이 해에는 전국적으로 전염병과 기근이 심각했다. 역병이 도는 데에다가 농업생산마저 감소했다. 흉작은 다음해까지 이어졌다. 조세수입 부족으로 호조(재정경제부)의 경비가 고갈될 지경이었다. 나라에 돈이 부족해지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혈액 순환에 장애가 생기는 것과 같다. 1717년 정유년의 조선 숙종 정부는 '혈액 고갈'로 어려움을 겪었다.

정유년에는 민족 내부 상황이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경우가 좀 더 많았지만, 외부에서 발생한 상황은 정반대로 작용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체제를 강화시키는 경우가 좀더 많았다. 일본이 전쟁을 재개한 1597년 정유재란의 인상이 강렬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체제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외부에서 많이 발생했다.

일례로, 서기 37년에는 고구려가 중국의 낙랑군을 침공하여 없애자, 그곳 주민들이 신라로 대거 귀화했다. 고구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좋은 일이지만, 신라로 난민들이 유입된 것도 좋은 일이었다.

오늘날에는 난민이 자기 나라에 유입되는 것을 꺼리지만, 고대에는 달랐다. 고대에는 인구밀도가 낮아 토지보다 노동력이 더 필요했기 때문에, 난민이 유입되면 산업생산이 증가하고 국가 재정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37년 사건은 신라에 좋은 일이었다. 이런 일은 217년과 337년의 고구려에도 있었다.

397년에는 고구려가 만주의 거점 중 하나인 요동성을 점령하는 일이 있었다. 중국의 분열을 틈타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광개토태왕(태왕이 정식 칭호)이 이룩한 성취였다. 고대의 왕들은 전쟁 전에 점을 치는 일이 많았으므로, 광개토태왕 역시 "정유년에 잘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전쟁을 벌여 그런 성취를 얻어냈을 것이다. 

고대의 군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의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고대의 군대,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의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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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인 1357년 정유년에는 불길한 일이 외부에서 유입됐다. 대마도·일본 해적인 왜구가 고려를 침략하더니, 충선왕의 영정을 훔쳐간 것이다. 왕조 시대에는 죽은 왕이 신으로 격상됐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왕의 영정이 사라지면, 왕실은 물론 백성들도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이것은 반(反)몽골 자주화 정책을 추구하는 고려 공민왕의 발목을 살짝 잡아채는 일이었다. 우리 민족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외부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유년에는 민족 외부에서 발생한 상황이 체제를 안정시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일은 서기 6세기 이전에 많았다. 중국 왕조가 허약하고 분열됐던 시기에 그런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 후로는 정유년에 발생한 외부 상황이 한민족한테 이익이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한편, 중국의 경우에는 정유년에 중국대륙 내부 상황이 기존 체제를 강화시켜준 때가 3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때가 6개년,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은 때가 33개년이다. 그리고 중국대륙 외부 상황이 체제를 강화시켜준 해는 1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해는 2개년, 별다른 일이 없었던 해는 39개년이다. 내부 상황이 체제를 불안하게 만든 정유년이 6개년이었다는 점이 중국의 경우에는 가장 인상적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정유년에 내부 상황이 체제를 안정시킨 때가 4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때가 5개년, 별다른 일이 없었던 때가 33개년이다. 외부 상황이 체제를 안정시키는 해는 2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해는 3개년, 별다른 일이 없었던 해는 37개년이다. 일본에서는 정유년에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변화가 좀더 많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 민족의 경우에는, 정유년에 내부 상황이 체제를 강화시키기보다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이 더 많았다. 과거의 경향이 미래에도 그대로 되풀이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을 볼 때 과거의 경향이 2017년 정유년에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7년에도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퇴임시키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박근혜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이런 흐름에 어떻게든 저항할 것이다. 앞서 소개한 충렬왕을 복귀시킨 사람들처럼 그들도 구체제를 어떻게든 회복시키려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선 정국과 개헌 정국까지 함께 맞물려 작동할 것이므로, 내년에는 민족 내부 상황이 체제 불안정을 부추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민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함께 발생할 것이므로, 내년에는 체제가 한층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와 아베, 한국 체제 불안정하게 만드나

지난 2500년간의 정유년에는 민족 외부 상황이 체제를 강화시키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또 그런 일이 주로 6세기 이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6세기부터는 민족 외부 상황이 체제를 강화시켜준 해가 1개년, 불안정하게 만든 해가 3개년이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6세기 이후의 경향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자기 생애에 통일을 이루려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끊임없이 압박을 가할 게 뻔하다. 또 돈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도 내심으로는 대외관계의 축소를 바라면서도, 일단은 미국의 영광과 자존심을 보여주고자 북한·이란·중국 등을 상대로 엄포를 놓을 가능성이 있다. 또 맡겨둔 돈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신조의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자민당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한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군사대국화의 발판을 구축하려 하는 것이다.

일본 총리는 임기가 없다. 집권당 총재의 임기가 끝나면, 총리의 직무도 자동으로 끝난다. 연임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지금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까지 일을 마무리한 상태에서 자기 조국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아베 신조의 목표다. 더 이상 과거사 문제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 필요하면 전쟁도 할 수 있는 일본의 위상을 도쿄 올림픽을 통해 과시하겠다는 목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기 종료 1년 전인 2017년에는 아베의 행보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가 활력적으로 움직이거나 그의 일이 잘되는 것은 한민족한테는 안 좋은 일이므로, 내년에는 트럼프와 더불어 아베 신조 역시 한국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2017년 정유년에는 내·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체제가 더욱 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불안정이란 단어는 부정적 이미지를 풍기지만, 이것은 좋은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판이 흔들리는 게 유리하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 독점체제 하에서, 굴욕적이고 사대적인 한미일 동맹체제 하에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온 일반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변화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는 해라는 점에서 2017년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태그:#정유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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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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