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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곡선미를 뽐내는 보성차밭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그 너머로 영천저수지가 보인다.
 유려한 곡선미를 뽐내는 보성차밭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그 너머로 영천저수지가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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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겨울이지만, 진초록의 풍경이 싱그럽다. 바람도 상쾌하다. 산비탈을 따라 층계를 이룬 차밭도 멋스럽다. 능선을 따라 유려하게 일렁이는 차밭 이랑의 선율이 매혹적이다. 겨울에도 멋진 보성차밭이다.

차밭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다향각 아래, 차밭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영천저수지에도 어둠이 찾아들었다. 주변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저수지가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그 풍경도 아름답다.

빛축제를 위해 설치된 LED조명도 하나씩 불을 밝힌다. 삭막하던 도로변의 나무가 화려한 불빛의 옷을 갈아입는다. 봇재다원에서는 이순신 장군 형상의 대형 트리가 깜박거린다. 적진을 향해 진격 명령을 내리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한국차문화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보성차밭 빛축제. 여느 축제처럼 화려한 조명의 불빛이 겨울 밤을 밝히고 있다.
 한국차문화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보성차밭 빛축제. 여느 축제처럼 화려한 조명의 불빛이 겨울 밤을 밝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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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해변에서도 열리고 있는 보성차밭 빛축제. 겨울 밤 바다를 배경으로 오색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다.
 율포해변에서도 열리고 있는 보성차밭 빛축제. 겨울 밤 바다를 배경으로 오색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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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 빛축제가 시작됐다. 해마다 겨울밤을 밝히는 밤축제다. 하지만 작년과 사뭇 다르다.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축제의 주무대가 차밭에서 한국차문화공원으로 바뀌었다. 차밭과 조금 떨어져 있다. 율포해변의 빛축제는 그대로다.

차문화공원에서는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과 보성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과 보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인다. 보성군청 옆 보성초등학교 터는 당시 열선루가 있었던 자리이다.

열선루는 조정으로부터 수군철폐령을 받은 이순신 장군이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는 장계를 쓴 곳이다. 한창 조선수군 재건에 매달리던 1597년 8월 15일(양력 9월 20일)이었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철폐령에 맞서 장계를 썼던 열선루의 주춧돌들. 보성군청 마당에 전시돼 있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군철폐령에 맞서 장계를 썼던 열선루의 주춧돌들. 보성군청 마당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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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박곡마을의 양산원의 집 터.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다량의 군량미를 손에 넣었던 곳이다.
 보성 박곡마을의 양산원의 집 터.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다량의 군량미를 손에 넣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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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내마을과 박곡마을은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많은 군량미를 손에 넣은 곳이다. 고내마을에는 조양성의 군량 창고인 조양창이 있었다. 이틀 동안 쉬며 몸을 돌본 김안도의 집도 고내마을에 있었다. 박곡마을에는 기묘영현의 후손인 영해부사 양산원의 집이 있었다.

명교마을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말을 쉬게 하고, 군사들을 도열시켜 점검했다. 군학마을은 뭍에서의 병참활동을 마친 이순신 장군이 처음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목적지는 회령포였다. 열두 척의 배를 갖고 있던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순신 장군은 회령포에서 열두 척의 배를 인수받은 다음 강진 앞바다를 거쳐 해남, 진도로 향했다.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날 13대 133의 명량대첩을 그리면서.

보성 군학마을 풍경.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뭍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을 재건하던 이순신 장군이 뭍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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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군학마을 앞 해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뭍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여기서 향선을 얻어 타고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나러 회령포로 갔다.
 보성 군학마을 앞 해변.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뭍에서의 병참활동을 끝내고 바다로 나아간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여기서 향선을 얻어 타고 경상우수사 배설을 만나러 회령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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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 빛축제에 이순신을 테마로 한 빛의 거리를 만든 이유다. 차문화공원에 거북선의 용머리와 판옥선, 이순신의 투구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빛으로 세웠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의미의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조형물도 불을 밝혔다.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빛의 터널에도 이순신 장군 형상을 세웠다. 차문화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율포해변은 정유년 닭의 해를 상징하는 조형물들로 채워졌다. 해변 솔밭에서 일렁이는 빛 물결도 아름답다.

봇재다원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모습. 드넓은 차밭의 규모에 비해 트리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봇재다원에 설치된 이순신 장군 모습. 드넓은 차밭의 규모에 비해 트리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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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차밭 빛축제의 '금신전선 상유십이' 조형물. '아직도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연상케 한다.
 보성차밭 빛축제의 '금신전선 상유십이' 조형물. '아직도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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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빛축제를 이순신과 연결시킨 건 좋지만, 보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차밭이 빠진 탓이다. 차밭 이랑을 따라 불을 밝힌 빛의 물결을 올해는 볼 수 없었다. 캄캄한 그 차밭을 거닐 수도 없다.

해마다 차밭을 통째로 물들인 오색 불빛이 발길 오래 머물게 했지만, 올해는 아니다. 다른 지역의 빛축제와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차밭이 빠진 탓이다. 축제장의 규모도 왠지 작아진 느낌이다.

빛축제 무대의 상설화를 고민하면서 축제장을 옮겼다지만, 행정 편의일 뿐이다. 먼 길을 찾아온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없다. 겨울밤 차밭의 운치도 반감된다. 관람객을 먼저 생각하는 축제가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남는다.

지난 12월 31일 보성차밭 빛축제를 찾은 여행객들이 빛터널에 소망카드를 매달고 있다.
 지난 12월 31일 보성차밭 빛축제를 찾은 여행객들이 빛터널에 소망카드를 매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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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열렸던 보성차밭 빛축제 풍경. 드넓은 차밭에 오색 불빛이 설치돼 낭만 넘치는 차밭 풍경을 연출했다.
 1년 전 열렸던 보성차밭 빛축제 풍경. 드넓은 차밭에 오색 불빛이 설치돼 낭만 넘치는 차밭 풍경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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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성빛축제, #보성차밭, #이순신, #조선수군재건, #열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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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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