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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몽골의 수도인 하르호린(Kharkhorin)이 청나라에 의하여 폐허가 되자 이흐 후레로 천도를 하여, 이흐 후레는 몽골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인 울란바토르가 되었다.
몽골에서 가장 큰 이 문화유산을 향해 큰 대로들이 정렬하듯이 뚫려 있다.
▲ 간단사. 몽골에서 가장 큰 이 문화유산을 향해 큰 대로들이 정렬하듯이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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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오늘 몽골에서 가장 큰 문화유산을 찾아가기로 했다. 울란바토르(Ulaanbaatar) 칭기즈칸 광장에서 서쪽으로 접어든 이흐 토이로(Ikh Toiruu) 대로로 접어들자 시내 간선도로들이 이 문화유산을 향해 정렬하듯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이곳은 몽골의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 간단 텍칭렝 사원(Gandan tegchinlen Monastery)이다. 중국 티베트에 있는 간덴쓰(甘丹寺)를 모델로 해서 지어진 이 사원을 한국에서는 간단하게 간단사라고 부른다.

'간단(甘丹)'은 미륵보살이 수행하는 정토인 도솔천(兜率天)을 가리키는 말로서, 간단사는 완전한 즐거움을 주는 위대한 사원이라는 뜻이다. 이 간단사는 몽골에서 가장 이름 있는 사찰로서 외국 여행객이라면 빠트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그리고 이 사원은 몽골 불교신자들이 죽기 전에 꼭 와서 기도를 드리는 첫 번째 순례코스이기도 하다.

나와 아내는 차에서 내려, 다음 세상의 부처 미륵보살이 머물며 불법을 알리는 하늘 위의 정토, 도솔천으로 들어섰다. 몽골 도심에서 살짝 서쪽에 있는 간단사 앞은 먼 교외로 나온 듯이 한적하다. 하지만 이 간단사는 울란바토르 시와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는 큰 사원이다.

몽골 국민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이 사원을 많은 몽골인들이 찾는다.
▲ 간단사 경내. 몽골 국민들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이 사원을 많은 몽골인들이 찾는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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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원래 명칭은 이흐 후레, 큰 울타리라는 뜻

울란바토르의 원래 명칭인 '이흐 후레(Ikh Khuree)'는 큰 울타리라는 뜻이다. 울란바토르 도심에 있던 간단사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 이름이 명명된 것이다. 그 후 원래 원래 몽골의 수도인 하르호린(Kharkhorin)이 청나라에 의하여 폐허가 되자 이흐 후레로 천도를 하여, 이흐 후레는 몽골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인 울란바토르가 되었다.

간단사의 본전으로 향하면서 보니 사찰의 전각 배치가 시원스럽게 넓다. 그 동안 보았던 다른 몽골의 사찰들과는 다른 거대한 스케일이 느껴진다. 간단사의 최대 전각인 관음대불전 등 법당과 승가대학, 도서관 및 직원 숙소 등을 포함해 모두 10여 동이나 되는 건축물들은 몽골, 티베트, 만주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치 동아시아의 불교 건축양식을 모두 모아 놓은 듯이 건축양식이 다양하다.

관음대불전 앞에 관음대불전과 관음불의 복원내력을 적은 작은 비석이 서 있다. 비석 내용에는 수난의 몽골 현대사를 담은 간단사의 역사가 담겨 있다. 간단사는 1838년에 도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고, 1843년에 새로운 법당과 도서관 건물 9개 동이 완공된 이후, 백 여년간 몽골의 대표적인 최고 불교사원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1938년에 사회주의 정권의 종교탄압에 의하여 시설이 파괴되고 본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함께 간 몽골친구가 그 당시 몽골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놀라지 마. 몽골의 수도 한복판에 자리한 간단사는 당시 러시아 군대의 마구간으로 이용되었어."
"아무리 러시아의 힘이 강했다고 하더라도 몽골 국민의 마음의 고향을 그렇게 난도질해도 되나?"

"종교말살 정책에 대한 외국의 비판이 쏟아지자 간단사는 1945년에 외국인을 위한 '참배소'로 재개관하게 되었지. 그래서 이곳은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몽골 유일의 불교 사찰로 명맥을 유지했어. 이 간단사는 종교활동이 금지된 암흑시대 속에서도 몽골인들이 미륵불에게 미래를 염원하며 불법을 놓치지 않았던 한 가닥의 끈이었지."

몽골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던 1991년에 비로소 민주정부에 의해 관음대불전 등에 대한 복원작업이 시작되었고 1994년에 국가보호유적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국민의 시주에 의해 시작된 관음대불전 등의 복원불사는 1996년에야 끝을 맺게 되었다.

몽골인들은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내세에도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몽골의 불교신자들은 관음대불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초록색 지붕의 웅장한 본당, 관음대불전을 향해 걷는다. 나도 그들을 따라 관음대불전 앞에 섰다. 성벽 같은 2층 높이의 흰색 벽체 위에 2층의 목조지붕이 올라간 이 관음대불전은 내부가 한 통으로 뚫려 있다. 절의 전각이 이렇게 큰 이유는 전각 내부에 무려 26m에 달하는 관음대불 입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불법을 세상에 퍼트리기 위한 법륜은 몽골의 주요사원에서 볼 수 있다.
▲ 간단사 법륜. 불교의 불법을 세상에 퍼트리기 위한 법륜은 몽골의 주요사원에서 볼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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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대불전 지붕에는 두 마리 사슴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사슴은 부처님을 영원히 지켜주기로 약속한, 불교를 상징하는 가까운 벗이다. 이 사슴이 큰 전각 위에 마주보고 앉은 이유는 사슴 가운데에 세워진 불법의 수레바퀴 법륜(法輪), 허럴(Khorol)을 지키기 위함이다. 사슴의 보호를 받고 있는 법륜은 윤회의 세상 속에서 부처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절이 파괴될 때 유일하게 남은 기둥, 소원 비는 나무가 되다

몽골인들은 이 영검한 나무에 손을 대고 문지르며 소원을 빈다.
▲ 소원 나무. 몽골인들은 이 영검한 나무에 손을 대고 문지르며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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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대불전 앞을 보고 있으려니 불전 동남쪽 아래에 몇 명의 청년들이 붉은 색 나무기둥 주위에 모여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중 한 몽골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이 나무가 무엇인데 나무 주위에 삥 둘러 서 있나요?"
"이 나무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무입니다."

"어떻게 소원을 비는데요?"
"나무를 자세히 보면 갈라진 부분과 작은 구멍들이 보이지요? 거기에 대고 소원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예요."

"이 평범해 보이는 나무가 그런 영검한 힘이 있나요?"
"이 나무기둥은 보통 기둥이 아니에요. 공산주의자들이 이 간단사를 파괴할 때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기둥입니다."

사람들이 손을 많이 문지른 곳은 마치 구멍을 파 놓은 것 같이 움푹 들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간 기둥은 나이테가 모두 드러나 있고 사포로 문질러 놓은 듯이 반질반질하다. 나무에 기름칠까지 해두어 이제 이 나무는 껍질이 다 벗겨진 목재 기둥이 되어 있다.

나는 몽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손을 대고 있는 곳에 끼여 들어갔다. 나는 손을 대고 소원을 빌었다. 나도 그들같이 나무기둥의 구멍에 손을 대고 나의 소원을 빌었다.

사원 내부에 관광객들이 있지만 약 150여명의 라마승들이 거주하는 사원 내부 분위기는 대체로 경건한 편이다. 관음대불전 동쪽에는 승려들이 예불을 드리고 생활을 하는 전각들이 고요함 속에 길게 이어져 있다. 관음대불전 서쪽에는 학승들이 공부하는 승가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1970년에 설립된 이 간단 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들이 현재의 몽골불교를 이끌어가고 있다.

몽골인들은 사원에 올 때마다 마니차를 돌리며 자신들의 소원을 빈다.
▲ 마니차. 몽골인들은 사원에 올 때마다 마니차를 돌리며 자신들의 소원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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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사 경내에서는 울란바토르 시민들의 종교와 관련된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관음대불전 앞 좌우에는 티베트 식 스투파들이 서 있고, 이 스투파를 행렬 이루듯이 사방으로 둘러싼 마니차가 있다.

이 마니차를 수많은 몽골 사람들이 돌리고 있는데, 이들은 시계방향으로 스투파를 세 바퀴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마니차는 크기도 다 다르고, 마니차에는 큰 문자 몇 개만 적혀 있는 것도 있고 깨알 같이 많은 문자가 새겨져 있는 것도 있다.

마니차는 불경이 적힌 통으로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불교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해서 몽골인들은 정성을 담아 마니차를 돌리고 또 돌린다. 몽골인들은 불교사원에 오면 항상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마니차를 돌린다.

이들은 경전을 읽는 것만 아니라 기도를 하며 자신들의 복과 소원을 빈다. 몽골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돌리는 마니차는 그들의 손길을 맞아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지금 저 사람은 마니차를 돌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는 마음 속에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 것인가?

불교사원에서 오체투지로 큰 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건한 마음이 든다.
▲ 오체투지. 불교사원에서 오체투지로 큰 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건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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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들이 간절한 마음을 품고 소원을 비는 모습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스투파 바로 앞에는 긴 나무판이 있는데 이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곳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듯한 한 모녀가 정성스럽게 우리 앞에서 오체투지의 시범을 보여준다. 이 모녀 뒤로도 불교식 큰절을 올리기 위한 행렬들이 계속 이어진다. 손쉽게 마니차를 돌리는 것보다 고통을 동반하는 오체투지는 보는 이들을 더욱 경건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

몽골인들의 생일축하 파티에 북한 여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접대를 하고 있다.
▲ 북한식당. 몽골인들의 생일축하 파티에 북한 여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접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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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몽골에서의 마지막 여정으로 간단사 주변의 북한식당을 찾아갔다. 울란바토르 시민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고려민족식당이었다. 식당 내부에는 몽골의 한 대가족이 생일잔치를 하고 있었고 분홍색 저고리와 푸른색 치마를 곱게 차려 입은 북한 여종업원들이 바쁘게 접대를 하고 있었다. 북한 아가씨들은 평안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한 나의 몽골친구가 이북 사투리가 재미있다며 웃는다.

메밀로 만든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 평양냉면. 메밀로 만든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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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랭면'이라고 적힌 평양냉면을 가장 먼저 주문했다. 메밀과 전분으로 만든 면 위에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이 풍성하게 올라 있고 국물에는 잣 열매도 떠 있다. 메밀이 많이 들어간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국물의 맛이 시원하다. 순대를 좋아하는 나와 아내는 돼지 창자인 '돼지밸'에 밥을 넣어 만든 순대찜도 함께 먹었다. 조미료를 많이 넣지 않아 순대의 맛이 담백하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북한의 순대는 맛이 아주 담백하다.
▲ 순대찜과 김치 지짐. 조미료를 넣지 않은 북한의 순대는 맛이 아주 담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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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닭볶음탕을 주문했다. 닭볶음탕은 닭다리가 들어간 탕에 감자, 홍당무, 양파인 '옥파', 피망인 '사자고추'를 넣고 끓였는데, 한국에서 먹는 맛과 별반 차이가 없다. 우리는 통김치와 달걀을 밀가루로 반죽한 김치 지짐도 추가로 주문했다. 우리는 메뉴를 보다가 북한 여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북한 사람들은 된장국을 토장국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다.
▲ 토장국과 닭볶음탕. 북한 사람들은 된장국을 토장국이라고 부르며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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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토장국이 뭐예요?"
"아, 남한 말로 하면 된장국입니다. 배추, 돼지고기, 호박, 감자, 두부, 풋고추, 버섯을 넣고 끓이지요. 우리 북한에서 직접 가져온 토장을 가지고 끓입니다."

앳되어 보이는 그녀는 토장을 직접 조국에서 가져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 아가씨는 생일잔치 가족을 위해 바쁘게 계속 움직였다.

오랜만에 한식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 북한식당에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북한에서는 핵무기 실험을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의 자금 줄을 끊기 위해 북한 식당 출입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올해에는 이런 어둠이 걷히고 남북관계에도 햇살이 비췄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집에 돌아와 서재에 앉아있지만 아직도 별이 쏟아질 듯 빛나는 몽골의 밤하늘이 생각난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울란바토르, #간단사, #북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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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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