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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끈질긴 싸움이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포근한 봄날씨 속에 여느 토요일과 마찬가지로, 4일 오후 제 19차 촛불집회가 90만 국민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반대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탄핵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태극기가 펄럭였다. 헌재의 결정이 다가올 수록, 양 극에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외침은 더욱 갈라져만 간다.

촛불집회, 그 시작은 매우 미미했다. 10월 29일 약 2만여 명이 모인 제 1차 촛불집회는 그렇다할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여느 정권에나 있었던, 권력 저항 집회로 비추어졌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그러들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던 시기였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11월 12일에 열린 제 3차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1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가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대통령의 2선 후퇴라는 '질서있는 퇴진'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 일부 정치인들이 시위에 놀라 본격적인 탄핵을 고려하기 시작한 순간이 이 때였다.

버스까지 대절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낮이 되면 상행선 기차표가 매진이고, 저녁이 되면 하행선 기차표가 매진인 경우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상경하지 못한 국민은 고향에서라도 촛불을 들었다. 보수의 상징 대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 국민이 촛불과 함께했던 지난 5개월이었다.

5달에 이르는 사람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광화문 광장은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5달에 이르는 사람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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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명박 대통령 광우병 촛불집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단지 '박근혜 퇴진'과 '박근혜 탄핵'만을 부르짖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한(恨)을 광장에 모인 100만명이 넘는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었다. 외신도 한국의 이러한 집회를 심도 있게 보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축제였다. 평소 시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조차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에 이끌려 광장에 나왔다. 정당도, 고향도, 이념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국민의 의견이 뜻을 모을 뿐이었다. 지난 대선 여당을 지지한 자들은 참회하며, 야당을 지지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진정한 정의를 되살릴 수 있다는 소망을 담아 촛불을 흔들었다.

이들에겐 미동도 하지 않는 청와대보다 훨씬 강한 적이 있었으니, 날씨였다. 날씨가 따뜻하다면 언제까지고 시민들은 촛불집회에 꾸준히 참석할 수 있지만, 겨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길게 이어가지는 못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 예상과는 반대로 국민들은 추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집회를 봄까지 이어가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촛불집회는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축제'였다.
▲ 제 9차 촛불집회(12월 24일) 당시 산타복을 입은 참가자들 촛불집회는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축제'였다.
ⓒ 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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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3월 7일 선고 일자를 발표하겠다고 못 박아 놓은 상태이고, 선고 일자로는 10일과 13일이 강력하게 고려되고 있다. 만일 10일에 선고가 되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11일 토요일 광화문에서는 '박근혜 탄핵'을 들을 수 없다. 대신 박근혜 탄핵을 찬성하는 80%의 국민들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주일 뒤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시청역 앞의 탄핵 반대 물결을 볼 수 있듯이, 자의와 타의에 상관없이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이 20%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중에서도 윤상현 등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매주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여 탄핵 기각을 부르짖고 있다.

대통령 측근들의 범죄 혐의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대통령과 관련된 사항들 역시 밝혀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박근혜가 무엇을 했는지 역시 끈질긴 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탄핵 기각은 1500만 촛불시민의 논리에는 부합하지 못할 것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보고 싶어하는 국민들이 탄핵 각하와 기각을 받아들일 리 없다.

이번 심판 이후로, 세월호 인양 등 해야 할 일들이 산적이다.
▲ 304개의 구명조끼 이번 심판 이후로, 세월호 인양 등 해야 할 일들이 산적이다.
ⓒ 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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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달간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였다. 무능의 단계를 넘어선 식물의 수준이었다. 미국의 정권이 바뀌고 세계정세가 급변할 수 있는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였다.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혼란을 재촉하는 정책들만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복원이 제 1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실로 밝혀진 문화계와 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헌법에 보장된 자유는 철저하게 보장되도록 사회적 인식을 정부가 책임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보수정권 10년동안 배불린 재벌 개혁과, 받아야 할 사람이 수혜받지 못하는 기초수급자 제도 역시 고쳐야 할 일이다. 우리 삶을 더욱 윤택하는 정책들은 둘째치더라도, 모든 국민들의 의식주 정도는 보장할 수 있는 정부는 상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최근 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의 현장이자 역사의 현장이었다.
▲ 촛불로 가득 메워진 광화문 광장 최근 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의 현장이자 역사의 현장이었다.
ⓒ 서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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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난 5달간, 우린 승리했다. 정부가 퇴보시킨 민주주의를 보다못한 국민들이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2015년 민중총궐기 이후 시위대를 테러범으로 낙인찍으려 한 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는 평화적인 집회도 한 몫 했지만,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고 싶어하는 평범한 국민들의 마음이 모아진 것이 제일 컸다.

디지털 미디어 사회가 가속화되는 사회에서,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는 정말 쉽지 않다. 더불어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회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집회는 광주민주화항쟁과 6월 항쟁과 더불어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민주주의의 한 장으로서 남겨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승리자였다. 집회는 시간이 어찌 되었건 끝나겠지만, 1500만 촛불 국민들이 남긴 발자취는 끝나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촛불을 든 본인에게, 우리 가족에게, 강인한 우리 국민에게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의미의 격려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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