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년에 중년의 부부가 유럽 다녀온 여행 이야기입니다. 독일, 이태리, 프랑스를 두 달 동안 자동차와 기차 그리고 버스로  자유롭게 다녔는데요. 맛과  명소를 탐방하는 관광과는 조금 다른 여행 얘기를 담고 싶습니다.

안전망 없이 어쩌다 길 위에 있게 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되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건을 겪거나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곤 하는데요. 

길 위에선 수없이 많은 직관적 판단을 하게 되더군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고 때로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서 보면 과거의 또 다른 경험을 떠올리며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대한  견해를 얻는 과정을 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정말 우리가 부러워할 만큼  매력적이고 행복한 곳인가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함께 꿈꾸고 고민하는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자 말

2016년 5월 23일 낮 12시 15분에 떠난 서울발 루프트 한자 비행기가 경유지인 '뮌센'(독일인은 뮌헨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고 뮌센으로 발음한다)에 현지 시각 오후 4시 45분에 도착했다. 독일과의 시차는 8시간이니깐 12시간을 비행한 셈이다.

뮌센은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주에 위치한 도시이다. 종착지인 중동부 작센 주의 중심 도시 드레스덴까지는 환승한 비행기로 약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

서울에서 뮌센까지 함께 오며 북적거렸던 수많은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드레스덴으로 가는 길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양인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부부 한 쌍과 우리 부부밖에 없는 것 같았다. 100명 남짓해 보이는 승객을 가득 실은 작은 비행기로 갈아탔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삼 십분 이상 출발이 지연되어 8시경에 드레스덴으로 출발했다. 시간 개념이 철저한 독일에선 비행기 출발 지연이나 연착 따위는 없을 걸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드레스덴으로 출발하기 전 날씨가 잔뜩 흐린 뮌센 공항의 모습
▲ 뮌센 공항 드레스덴으로 출발하기 전 날씨가 잔뜩 흐린 뮌센 공항의 모습
ⓒ 김성수

관련사진보기


심한 기상 악화, 결국 비행기는 뮌센으로 귀항

뮌센을 이륙할 때부터 날씨는 이미 꽤 흐려 있었는데 드레스덴에 가까워지면서부터 더 악화됐다. 비바람이 심해지더니 드레스덴 공항 주변에선 마치 심한 난류(turbulence)를 만난 듯한 상황이었다.

비행기가 아래위 좌우 쌍방향으로 곡예를 하듯 심하게 흔들려 연신 가슴은 울렁거렸고, 칡흙같이 어두운 창밖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은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불안감과 함께 환전을 많이 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정액 이상 환전한 고객을 위한 보너스 여행자 보험에 하나 더 들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들 그런 상황에 익숙한 분위기였다. 크루의 안내 방송이 있었고 그 시간을 받아들이며 즐기는 건지 곳곳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까지 들리는 게 아닌가? 누구하나 동요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는 듯했다. 결국 드레스덴 공항 상공을 삼십분 남짓 빙빙 돌며 착륙을 시도하던 비행기는 결국 뮌센으로 귀항했다.

귀항하는 비행기에서 안내 방송으로 그날 밤 숙박과 다음 날 드레스덴으로 가는 비행기 등의 스케줄을 간략하게 알려줬다. 그리고 도착한 뮌센 공항의 루프트 한자 부스에서 승객별로 그날 밤 묵을 뮌센의 호텔들을 배정받고, 다음날 비행기 시간을 선택한 후에 준비된 택시로 이동했다. 물론 모든 비용은 루프트 한자 부담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4성급 호텔 Dolce. 동행한 루프트 한자 승객들을 위해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에 준비된 간단한 뷔페로 저녁을 먹었다. 편안하고 포근한 잠자리였지만 가시지 않는 긴장감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뮌센 근교의 4성급 호텔인데 5성급 호텔 못지 않게 잠자리와 분위기가 
아주 아늑했다.
▲ 호텔 돌체 뮌센 근교의 4성급 호텔인데 5성급 호텔 못지 않게 잠자리와 분위기가 아주 아늑했다.
ⓒ 김성수

관련사진보기


예상치 못한 사태를 맞은 항공사의 대처 과정이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승객들도 아무런 동요없이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따랐다. 마치 계획된 일을 진행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질서 정연했다. 아무런 소란도, 항의도 동요도 없이.
이래서 선진국이라는 건가 싶었다.

2002년 일본의 미야코지마에 갔을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그 섬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지역 축제인 트라이애슬런 스트롱맨 대회에 참가했을 때다.

아침 7시에 3km 거리의 바다 수영을 1시간 50분의 제한 시간 안에 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의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한 적이 있다. 1500명 이상의 인원이 한꺼번에 바다 수영을 하다 보면 때론 몸싸움도 벌어지며 부상이 날 수도 있고, 심장 마비 등의 사고에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바다 위를 수영하며 한국에선 상상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물밑이 훤히 보이는 남태평양 바다 속에서 안전 사고에 대비한 안전 요원 잠수부들 수백명이 마치 물고기 떼처럼 줄지어 위를 관찰하며 수영하는 선수들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대회를 치르면 고작 바다 위에 작은 구명 보트 몇 대 띄우며 안전 요원들이 선수들 여기 저기 쳐다보기 바쁜데 말이다.

메이지 유신 시대에 탈아 입구(脱亜入欧)를 외치며 서양을 미치도록 닮고 싶어 했던 일본의 철저한 준비성과 재난에 대비하는 역량은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독일과 상당히 흡사해 보인다.

독일식 합리주의는 자신들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견고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다고 믿게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던 걸까?

국민이 국가와 공적인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나라 그래서 불안한 한국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뮌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아침 다시 드레스덴으로 출발하기 위해 탑승하는 승객들.
▲ 뮌센 공항 비행기 뮌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날 아침 다시 드레스덴으로 출발하기 위해 탑승하는 승객들.
ⓒ 김성수

관련사진보기


폭우나 폭설 짙은 안개나 난기류 또는 강풍과 같은 기상 악화 상태에서는 항공기 운항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2016년에 제주 공항에서 폭설로 승객들이 공항에서 밤새 노숙하며 대혼란이 벌어진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016년 제주 관광객이 1600만 명에 육박하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예상치 못한 재난에 대처하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태그:#루프트 한자 , #독일인의 합리주의, #뮌센 공항 , #탈아 입구 , #뮌센 호텔 돌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