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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해남에 활짝 핀 매화. 발버둥치던 겨울을 탄핵하고 인용된 남도의 '꽃봄'이다.
 '땅끝' 해남에 활짝 핀 매화. 발버둥치던 겨울을 탄핵하고 인용된 남도의 '꽃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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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탄핵되고, 꽃봄이 인용됐다. 때아닌 눈까지 내린 꽃샘추위까지 보내며 물러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긴 겨울이 이제 끝났다. 그 자리에 남도의 새봄이 활짝 열렸다. 봄꽃들도 그동안 머리를 맞대고 심리를 하며 평의를 했는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일찍부터 겨울의 탄핵을 감지한 매화가 먼저 피어 절정을 향하고 있다. 노란 산수유 꽃도 속속 피어나고 있다. 동백꽃과 할미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남도의 꽃봄이다.

꽃봄의 유혹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매화가 활짝 핀 '땅끝' 해남으로 간다. 인지상정이다.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보해매실농원이다. 꽃이 절반 가까이 피었다. 아직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는 않지만, 꽃구경을 하는 데는 충분하다. 절정은 3월 중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남에 활짝 핀 매화. 연녹색의 풀꽃과 어우러져 더 멋스럽다. 3월 9일 오후 모습이다.
 해남에 활짝 핀 매화. 연녹색의 풀꽃과 어우러져 더 멋스럽다. 3월 9일 오후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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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매화. 화사한 남도의 새봄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매화. 화사한 남도의 새봄을 더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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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매실농원은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에 있다. 보해양조에서 매실 음료와 술을 만드는 재료로 쓰려고 1978년에 부러 조성한 매실밭이다. 매실나무 재배면적이 46만㎡에 이른다. 나무만 1만 4000그루가 심어져 있다. 단일 면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넓은 매화밭이다.

매실나무가 평탄한 황토밭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넓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평지여서 누구라도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좋다. 매화도 빨간색의 동백꽃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보리밭과도 조화를 이뤄 멋스럽다. 매실나무 아래에서 자라는 들풀도 싱그럽다.

연녹색의 들풀과 어우러진 매화. 3월 9일 오후 해남 보해매실농원 풍경이다.
 연녹색의 들풀과 어우러진 매화. 3월 9일 오후 해남 보해매실농원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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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날, 풀밭에 돗자리 펴고 앉아 잠시 쉬는 것도 행복하겠다. 동행끼리 간식을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여느 매화밭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봄소풍이라도 온 것 같다.

농원의 매화는 하얀 꽃이 주종을 이룬다. 간간이 홍매화와 청매화도 섞여 있다. 색다른 멋이다. 만발한 매화가 Y자로 터널을 이룬 풍경도 멋스럽다. 한 나무에서 홍매화와 백매화가 같이 핀 것도 보인다. 매화밭에 봄바람이라도 흩날리면 더 황홀하겠다. 봄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걸어도 운치가 별나겠다.

화사하게 피어난 홍매화. 하얀 매화와 함께 남도의 꽃봄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화사하게 피어난 홍매화. 하얀 매화와 함께 남도의 꽃봄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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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꽃봄을 활짝 열어 준 매화. '땅끝' 해남에 있는 보해매실농원 풍경이다. 3월 9일 오후다.
 남도의 꽃봄을 활짝 열어 준 매화. '땅끝' 해남에 있는 보해매실농원 풍경이다. 3월 9일 오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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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향이 오감으로 호흡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매화밭에서 멀지 않는 우수영으로 간다. 해남 우수영은 임진왜란 7년을 종식시키는 결정타가 된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서남해안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해온 지역임. 유네스코 세계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강술래도 전승되고 있다.

요즘엔 문화마을로 단장이 돼, 시쳇말로 뜨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아 작년과 재작년 2년 동안 추진됐다. 울돌목과 강강술래를 테마로, 예술인과 주민들이 힘을 합쳐 우수영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마을로 탈바꿈시켰다.

해남 우수영 마을 골목길의 벽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연상케 한다.
 해남 우수영 마을 골목길의 벽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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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길을 끄는 건, 변화된 골목길이다. 삶의 길, 추억의 길, 끝이고 시작인 길 등 3가지 주제로 나눠 우수영의 과거와 현재를 스토리텔링화했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강강술래, 농요 등 독특한 지역성이 묻어나는 벽화들이다.

옛 우수영성의 동문과 남문에는 상징 조형물이 설치됐다. 비어있던 점포는 전시관과 아트샵, 특산물 판매장으로 변신했다. 폐교된 옛 우수영 초등학교에는 아트캠프가 들어섰다. 문을 닫은 부동산 자리는 '복덕방'이란 이름을 달고, 강강술래를 체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마을 이야기를 담은 만화 갤러리도 생겼다. 주민들의 사진과 영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아카이브관도 보인다. 골목 구석구석이 이야기 거리로 가득하다.

마을의 빈 집을 고쳐 만든 전시관. 우수영 문화마을 프로젝트로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
 마을의 빈 집을 고쳐 만든 전시관. 우수영 문화마을 프로젝트로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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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여관의 부엌을 고쳐 만든 정재카페. 생활사 갤러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이다.
 옛 여관의 부엌을 고쳐 만든 정재카페. 생활사 갤러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공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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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카페도 눈길을 끈다. '정재'는 부엌의 지역말이다. 옛 부엌을 고쳐 만든 카페다. 옛 뱃사람들의 쉼터였던 제일여관 건물을 생활사 갤러리로 꾸미면서, 이 여관의 부엌을 카페로 바꾼 것이다.

옛 생활유물을 활용한 카페다. 부뚜막이 재현돼 있고 풍로, 소쿠리, 오래된 술병, 키, 체 등이 걸려 있다.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작고 허름한 옛 부엌이지만,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공간이다.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갈 수도 있다. 주민협의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생활사 갤러리에 꾸며진 옛 초등학교 교실. 검정고무신으로 만든 천장의 장식이 눈길을 끈다.
 생활사 갤러리에 꾸며진 옛 초등학교 교실. 검정고무신으로 만든 천장의 장식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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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에는 정재카페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다양한 기록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우수영 오일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과 주민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은 갤러리도 있다. 우수영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흑백사진으로도 보여준다.

오래된 책걸상과 난로, 도시락, 검정고무신, 풍금 등을 볼 수 있는 옛 학교 교실도 있다. 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전통문화예술을 현대미술로 표현한 공간도 있다. 우수영을 찾는 외지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우수영 마을 골목길의 벽화. 옛 우수영성의 성곽을 연상케 한다.
 우수영 마을 골목길의 벽화. 옛 우수영성의 성곽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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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 갤러리로 변신한 제일여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1970년대까지 운영되다 문을 닫았다. 생활사 갤러리로 꾸미면서 간판도 손님들이 묵던 방(旅館)에서 여관(餘館)으로 바꿨다. 우수영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생활사 갤러리는 법정스님의 생가터 앞에 있다.

우수영의 볼거리는 이뿐 아니다. 관광자원으로 변신할 법정스님의 생가터가 있다. 주민이 살고 있던 집터를 해남군에서 사들였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확정짓지 못해 개방하지는 않고 있다. 지금은 밖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문화 골목으로 단장된 우수영 마을. 끝에 보이는 파란 지붕의 집이 법정스님의 생가 터다.
 문화 골목으로 단장된 우수영 마을. 끝에 보이는 파란 지붕의 집이 법정스님의 생가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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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에 세워져 있는 명량대첩비. 옛 우수영성의 동문 밖에 세워져 있다.
 우수영에 세워져 있는 명량대첩비. 옛 우수영성의 동문 밖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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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수영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암반에 세워진 명량대첩비의 유서가 깊다. 1688년(숙종8년) 전라우수영의 동문 밖, 지금의 자리에 처음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해방 이후 주민들이 다시 가져와 세웠다.

명량대첩비 부근이 옛 우수영의 성터였다. 명량대첩비 뒤편이 동헌 자리였다. 당시 우수영성의 면적이 6000㎡를 넘었다고 한다. 석축의 둘레가 1100m가 넘을 정도로 컸다. 당시 우수영의 수군들이 먹는 물로 이용했다는 방죽샘이 있다. 우수영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망해루도 복원돼 있다.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조형물. 우수영 마을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다.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는 조형물. 우수영 마을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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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매화, #보해매실농원, #우수영, #우수영문화마을, #정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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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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