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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보다는 파르제로 부르는 게...

이란국립박물관
 이란국립박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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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립박물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고대 이란박물관이고 또 하나는 이슬람시대박물관이다. 그 중 우리는 고대 이란박물관만을 견학했다. 고대 이란박물관은 2층의 상설전시관을 갖고 있으며, 그 중 2층이 선사시대, 1층이 역사시대 전시물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시대라고 하면 전기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3300년 정도까지를 말한다. 유물을 모두 7개 구역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역사시대라고 하면 문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도시를 이뤄 생활하기 시작하는 때를 말한다. 이때부터 건축과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고, 상거래가 시작된다. 이때를 이란역사에서는 초기 엘람(Elam)시대로 보고 있다. 엘람시대에 이르러 청동기가 제작된다. 그 다음 시대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시작되는 철기시대다. 철기시대는 3기로 나눠 기원전 550년경까지 지속된다.

박물관의 전시실
 박물관의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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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년 파르스를 중심으로 아케메네스 왕조가 시작되고, 키루스왕에 이르러 서쪽으로 메디아,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지역을 정복하고 동쪽으로 파르티아, 박트리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정복해 대제국을 형성한다. 이 나라를 우리는 페르시아 또는 아케메네스 제국이라 부른다. 페르시아는 그 어원이 Pars다. 파르스는 자그로스산맥 동남쪽 끝 고원지대를 말한다. 현재 쉬라즈를 주도로 하는 파르스주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파르스는 현대식 표현이고, 아케메네스제국 시대 사람들은 파르세(Parseh)라 불렀다고 한다.

그것을 그리스 사람들이 페르세스(Πέρσης)라 불렀고, 로마시대에 와서 페르시아(Persia)로 정착된 것이다. 성경의 에즈라서, 에스더서, 다니엘서 등에서도 페르시아가 언급되는데 히브리어로 파라스(Paras, פרס)라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도 페르시아라는 이름 대신 페르세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나라 이름으로 불러주는 게 맞기 때문이다.

도자기와 청동기에서 실용성과 예술성이 느껴진다

기원전 3,000년대의 진흙 조형물
 기원전 3,000년대의 진흙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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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페르세의 유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봐야 할 1층의 역사시대 전시관은 7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시대순으로 역사시대 전기/엘람시대 전기, 청동기시대/엘람시대, 철기시대, 아케메네스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제국, 사산제국의 7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유물이 기원전 3000년대 수사지역에서 만들어진 진흙 조형물(Clay Ball)이다. 이곳에는 문자나 형상이 있어 당시의 역사와 생활상을 알려준다.

문자는 규범을 적어놓는 것일 수도 있고, 수치나 연산 같은 거래기록일 수도 있다. 형상은 염소 또는 사슴 같은 동물, 인물, 도자기 같은 생활용품 등이다. 흰색 또는 검은색 대리석에 형상을 새긴 조각도 보인다. 그렇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기와 테라코타다. 그것은 이들에 형상을 그리고 채색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 역시 기원전 3000-4000년 수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카샨의 시알크(Sialk) 유적에서 발견된 것도 있다.

기원전 2,000년대 시스탄 지방의 도자기
 기원전 2,000년대 시스탄 지방의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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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에서 발견된 꽃병은 그곳에서 나는 붉은색 황토를 구워 만들었다. 형태를 만들어 구운 다음 흰색 또는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그림을 그려넣은 것 같다. 가운데 뿔이 근사한 영양을 그려넣었다. 시알크에서 발견된 용기는 굽이 높은 대접 형태다. 가운데 사람을 그려넣었다. 도자기의 역사는 북쪽의 알부르즈 산맥에서 남쪽의 자그로스 산맥 쪽으로 내려온 것 같다.

엘람시대 초기인 기원전 3000년 이후 도자기가 이란 동남쪽 시스탄(Sistan) 지방의 슈흐레 소흐테(Shhre-Sokhteh)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비례와 균형이 뛰어난 이 용기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췄다. 용기 중간에 대지를 나타내는 줄을 세 개 그은 다음 그 위에 긴 뿔을 가진 영양 또는 아이벡스를 표현했다. 영양 양쪽으로는 나무를 그려넣었다.

도자기 잔
 도자기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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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꽃병은 배가 불룩한 형태다. 중간 아래 선을 두 줄 긋고, 그 위에 식물을 그려넣었다. 두 개의 잎 사이로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것을 표현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도자기로 만들어서 그렇지 포도주를 마시는 현대의 유리잔과 형태가 똑같다. 자기로 만든 포도주잔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손잡이가 달린 탕기(湯器)다. 뜨거운 용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손잡이를 달았다. 이 탕기는 그림이나 무늬가 없어 조금은 투박하게 느껴진다.

이곳에는 자기가 아닌 돌로 만든 용기도 있다. 대개 속을 파내고 겉에 정교하게 조각을 한 병들이다. 이들은 케르만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흑녹색의 이암(泥岩)으로 대리석과 비슷한 종류다. 사람과 양 같은 구상도 있고, 선, 물결, 삼각형, 원 등 추상도 있다. 이들은 기원전 2500-1700년 고(古) 엘람시대 물건으로 여겨진다. 엘람시대 유물로는 청동기가 두드러진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의 모습을 한 청동기가 있다.

청동기: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
 청동기: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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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中) 엘람시대는 기원전 1500-1000년 사이로 본다. 이때 청동기로는 쟁반형태의 청동기가 있다. 바닥에 염소 두 마리를 표현했다. 도끼날을 청동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란 중서부 루레스탄(Lurestan) 지방에서 출토된 기원전 1200년경 장식핀도 있다. 신(新) 엘람시대는 기원전 1000-600년 사이로 본다. 이때의 대표적인 청동기가 멋진 뿔을 가진 사슴이다. 등에 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엘람제국의 대표유물은 초가잔빌 지구라트에서 나왔다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를 지키는 수호동물 황소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를 지키는 수호동물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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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람시대 중기 엘람 문명은 정치와 문화에서 전성기에 이른다. 이 시대의 문화유산 중 대표적인 것이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다. 이곳에서는 수호동물인 황소가 나왔다. 흙을 구워 유약을 칠해 만든 도기 테라코타다. 이것이 현재 이란 국립박물관에 있다. 명문도 있다고 하는데, 어디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알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중요한 유물로는 관모양의 유리가 있다. 이것은 현재의 유리와는 달리 투명하지 않다. 그리고 흰색 바탕에 푸른색이 들어가 있다. 이 유물은 현재 유리도자기박물관에 있다. 그 외 도자기로 만들어진 손잡이,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개가 있다고 하는데, 시간에 쫓겨선지 박물관에서 확인은 하지 못했다. 일부 물건은 수장고에 있을 수도 있다.

말리크 공동묘지에서 나온 붉은색 테라코타
 말리크 공동묘지에서 나온 붉은색 테라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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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부르즈주의 카라지(Karaj)시 말리크(Marlik) 공동묘지에서 나온 붉은색 테라코타는 아주 특이한 유물이다. 두 마리의 동물이 끄는 마차에 사람이 타고 있는 형상이다. 마차는 네 개의 바퀴가 달려 있다. 기원전 1260-1000년 사이 작품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는 좀 더 붉은색 테라코타로 황소 모양을 하고 있다.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용기로 보인다. 이들 외에 양 모양의 토기들도 상당히 많이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유물을 통해 우리는 엘람사람들이 유목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 엘람시대 대표유물은 시알크에서 출토된 주둥이가 있는 도자기다. 이 도자기에 이르면 문양이 훨씬 복잡해지고, 자기의 수준도 높아졌다. 카샨의 시알크 유적에서 나왔다. 후제스탄주 람호르무즈(Ramhormuz)에서 발견된 잔이 여러 개 달린 도기도 용도가 궁금하다. 서부 아제르바이젠의 하산루(Hasanlu)에서 나온 손잡이가 달린 용기도 특이하다. 손잡이 끝에 강아지 같기도 하고 여우 같기도 한 조각이 있어 재미있다. 이때는 이미 철기시대(1500 B.C.-)가 시작되어, 쇠로 만든 소발굽도 만들어졌다. 

아니, 중요한 유물이 어째 복제품인 거지?

함무라비 법전 석비
 함무라비 법전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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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국립박물관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돌에 새긴 함무라비 법전이다. 함무라비는 바빌로니아의 왕으로 기원전 1792년부터 1750년까지 통치를 했다. 이 석비는 나중에 엘람인들에 의해 그들의 수도인 수사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것이 재발견된 것은 1901년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비석이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가 있다. 그것은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수사지역 발굴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서 발굴된 유물이 루브르에 가 있는 것이 아쉬워 이처럼 복제품을 만들어 놓았다. 비문의 서문에 함무라비는 태양신 마르둑(Marduk)으로부터 왕권을 받았고, 그로부터 받은 법을 공포함을 밝히고 있다. 이들 법조문은 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처벌이 가혹해 죄인을 죽이거나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형을 가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Eye for eye, tooth for tooth)'라는 처벌규정이 여기서 처음 나온다.

석비 상단부 조각
 석비 상단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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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또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 나온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양자가 증거를 제시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처벌된 죄를 상고를 통해 경감하거나 변경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식으로 표현하면 단심제가 된다. 함무라비 법 규정은 후대에 모세와 유대교의 율법에 상당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같은 셈족이고,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태그:#이란국립박물관, #엘람시대, #도자기, #청동기, #함무라비 법전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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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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