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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정말 고마웠다는 걸 또박또박 다 말씀드릴 걸 그랬습니다. 담당의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못 들을 것 같지만 다 듣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다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보름쯤 병상에 누워계시던 형수님이 몇 시간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담당의가 가족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으니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다 하라며 시간을 주었습니다. 식구들이 차례로 형수님 앞에 섰습니다.

어머니 뻘 되는 형수님이었기에, 가슴에서는 생전 아들처럼 잘 보살펴주어 고맙다는 말이 절절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검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무표정하기만한 형수님 앞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려니 어색하기만 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책을 읽다보니 그때 좀더 또렷한 목소리로 막내 시동생이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렸다면 죽음을 마주하고 있던 형수님이 조금은 더 편안하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이별하는 법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지은이 모니카 렌츠 / 옮긴이 전진만 / 펴낸곳 책세상 / 2017년 3월 25일 / 값 15,500원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지은이 모니카 렌츠 / 옮긴이 전진만 / 펴낸곳 책세상 / 2017년 3월 25일 / 값 1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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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지은이 모니카 렌츠, 옮긴이 전진만, 펴낸곳 책세상)는 누구나 다 맞이해야 하지만 누구도 다 알지 못하는 죽음을 좀더 아름답게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임종학 강의서입니다.

책은 정신종양학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17년간 보살피던 임종을 앞둔 환자 1000여 명 중 680여 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해 얻은 연구 결과, 죽음전이 연구조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동서고금,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태어난 이들은 다 죽었다는 걸 알지만 그러함에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금기어에 가까울 만큼 터부시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과거, 그나마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시대에는 가족 속에서 대물림을 하듯 죽음을 맞거나 마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려고 하면 준비를 했습니다. 수의도 짓고 집 주변도 청소했습니다. 임종을 맞았다고 무조건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슬픔을 억누른 채, 냉정하리만큼 차분하게 정해진 절차를 따랐습니다.

죽음의 기로에선 사람 앞에서 우왕좌왕, 울고불고 하는 건 불안만을 가중시키는 행동이기에 슬픔도 절차에 따라 표했습니다. 언뜻 의식에 얽매인 허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배려였으며, 죽음을 마주하는 절제된 의식이었습니다.

그것을 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까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함에도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시대에는 집에서, 이웃집에서 어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나 절차 등을 가풍이나 집안내력으로 익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종잡을 수가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은 죽음을 '소유'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 죽음은 개별적으로 일어나고,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17년간 임종 준비를 해왔지만 늘 불안했다. 죽음을 긍정하고 인정하도록 하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부당한 요구를 해올지를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84쪽-

세 번째로 우리가 돌보면서 깨달은 것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알게 해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간병, 환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작별 인사가 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행동에 반응을 보일 거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것이 좋다. -128쪽-

죽음은 원초적으로 불안한 것

죽음은 17년간 임종을 준비해 온 저자조차도 불안하게 한다고 하니 공부로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함에도 맞고 싶지 않고,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맞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게 죽음인 것 또한 분명합니다.

책에서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추출해 낸 심리적 상태, 표현과 반응, 단계별 과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막연하기만 했던 죽음을 좀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씨줄이 되고, 준비된 마음으로 이별을 할 수 있는 날줄이 돼줄 것입니다.

책은 자신이 마주해야 할 죽음은 물론 누군가가 마주하고 있는 죽음을 막연히 생의 마지막으로 지켜보던 두려움을 준비된 마음으로 이별할 수 있는 여유, 인생을 좀더 여유롭게 살피게 해줄 인생 여유서로 읽힐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 지은이 모니카 렌츠 / 옮긴이 전진만 / 펴낸곳 책세상 / 2017년 3월 25일 / 값 15,500원



태그:#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전진만,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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