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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의 한기호 선생은 청년의 열정을 가졌다. 출판계를 향한 쓴소리와 비판의 글에도 '애정'이 담겨있고, '책과 함께 잘 살자'라는 몸부림이 배어있다.

그가 쓴 <인공지능 시대의 삶>에서조차 '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냄새만 난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쓴 그의 글에서는 배타성이라든가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더라도 그렇다. 작년에 한기호 선생이 운영하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와 출판 계약을 맺고 올해 <독서 만담>을 출간했지만, 사실 독자로서는 훨씬 이전에 인연을 맺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책과 출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책을 읽고, 한기호 소장의 글을 접하기 마련이다. 내가 연구소에서 나온 이런저런 오래된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기호 선생의 최신작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를 펼치다가 반가운 대목을 발견했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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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쓴 '최성일' 선생과 그 가족의 저작을 다룬 꼭지다. 내가 한참 절판본과 희귀본 수집에 열중하고 있을 때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멘토로 모셨다.

수집이라는 행위는 '광기'와 '탐욕'이라는 양념이 동반되기 때문에 희귀본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꼭 필요하거나, 읽고 싶어서 뿐만 아니라 '희귀본이기 때문에' 무작정 사냥하고 보는 습성이 있다.

심지어는 왜 그 책이 많은 사람이 손에 넣기 위해 환장하는지도 모르고 비싼 값을 감수하기도 한다.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일단 내 손아귀에 넣고 보는 버릇이 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가 절실히 필요해졌다.

그 책을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왜 내가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고, 이 책이 왜 귀한 대접을 받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책은 이런 책이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할 수 있어야겠더라는 것이다.

명색이 책 수집가가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하튼 귀하고 비싼 책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잖는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들인 서양 사상가들의 저작들에 대해서 '그 책은 이런 책이고 그 책을 쓴 아무개는 이런 삶을 살았어'라고 알려주었다. 사상가 218명의 생애와 저작을 다룬 백과사전식의 책이지만 지루하지도 딱딱하지도 않다. 책에 살고 책에 죽는 한 독자의 흥미로운 탐험이 가득한 책이다.

무려 13년간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의 저술에 매달린 최성일 선생이 뇌종양으로 쓰러져 고생하고 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한기호 선생이 원래 5권으로 구성된 것을 합본호로 다시 출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판매 수입금을 전부 기증한다는 눈물겨운 소식을 접하고 나는 합본호를 기꺼이 구매했더랬다. 내가 한기호 선생을 기억하게 된 계기였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유가족으로 남은 최성일 선생의 아내 신순옥 여사가 <남편의 서가>를 집필한 과정과 뒷이야기를 포함해서 '초보 저자' 20명의 삶과 첫 책을 낸 사정 및 그들만의 글쓰기 비법 등이 담겨 있다.

블로그 마케팅에 대한 한 편의 글로 인생을 바꾼 이수영씨, 시간강사에서 대리운전 기사가 된 저자 김민섭씨, 글 쓰는 편집자가 된 이홍씨,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글쓰기로 새로운 삶을 사는 김민영씨 등 평범한 사람의 감동적인 '책 쓰기'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간이라든가 글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글쓰기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한기호 선생의 책이 딱딱한 주제이지만 감칠맛이 나는 이유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가 다루는 초보 저자 20명의 저작이 소중한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몰입한 경험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글솜씨는 부족하더라도 주제의 참신함과 내용의 진정성은 대가의 책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는다. 초보 저자의 책들은 저자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담은 것이고, 독자들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인생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누린다.

편의점에서 18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온 경험을 토대로 쓴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의 성공을 보면서 '대한민국 편의점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김도균이 '편의점 생활'에 관한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의점에서 1억 원을 썼다면 분명 그만큼의 재미난 경험을 보유하고 있을 터이고, 나만 해도 기꺼이 그 경험이 담긴 김도균의 책을 냉큼 살 것이다.

한기호 선생은 한 가지에 몰입하는 평범한 사람과 출판의 가교역할을 꾸준히 해왔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누구나 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저자가 되는 비결을 잘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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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저자가 되어야 한다 - 내가 만난 초보 저자와 글쓰기 비법

한기호 지음, 북바이북(2017)


태그:#저자, #출판, #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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