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치원에서 처음 맞는 스승의 날, 다른 선물은 일절 받지 않고 아이들의 편지만 받는다고 유인물이 왔다.

우리 집 꼬맹이가 글씨를 쓰는 건 불가능하고,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앞에 놓아주곤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다. 사실 딴 짓을 하며 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살짝 집중을 했다.

"감사. 감사. 거미하고 사이렌 그린 거야."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아이의 그림
▲ 스승의 날 아이의 첫 편지 담임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아이의 그림
ⓒ 송희

관련사진보기


혼자 중얼대더니 색연필로 작대기 하나 그리며 씩 웃고선 무수히 많은 선들을 휘갈겼다. 담임선생님을 도와주시는 보조 선생님께도 드릴 그림을 그려보자고 하니, '1'자를 쓰더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 그렸어."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시잖아. 감사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고 그리자."

몸을 배배꼬긴 했지만 그래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거미와 사이렌' 그림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그게 아이에겐 최고의 감사표현이었다.

보조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그림 '거미와 사이렌'
▲ 선생님 감사합니다 보조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그림 '거미와 사이렌'
ⓒ 송희

관련사진보기


고생을 많이 하신 원감 선생님께 드릴 것도 해보자고 할 땐, 솔직히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어떤 그림보다 정성을 담아서 그렸다.

"원감선생님은 폴리스카 좋아해."

원감선생님께서 아이와 경찰차로 잘 놀아주셨는지, 아이는 가장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아이에게 네모나 동그라미, 자동차 같은 그림들을 어떤 식으로 그리는 건지 알려주질 않아서 형태를 갖춘 그림을 완성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선생님께 감사함 마음을 담아서
▲ 아이가 그린 경찰차 선생님께 감사함 마음을 담아서
ⓒ 송희

관련사진보기


내 눈에만 그래 보이는 건지 몰라도 정말 나름대로 자동차의 몸통과 바퀴의 형태를 그려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나도 엄마라서 다 예뻐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치원에 편지를 보낼 때, 스케치북 종이라 어떤 봉투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선물 받은 옷의 포장지가 천으로 되어있고 크기도 알맞아 편지들을 넣어 보냈다. 그런데 편지만 받으시고 포장지조차도 돌려보내셨다.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어떤 학교에서는 종이로 된 카네이션조차 학생대표만 선물할 수 있다고 정해졌다고 들었다.

내 초중고 시절에는 선생님께 케이크와 화장품 같은 선물을 드렸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선생님께 어떤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할지 고민한 것도 좋은 추억이었지만, 사실 감사한 마음보다 물질적이고 보이는 것에 치중했던 것도 같다. 지금은 그런 고민보다 편지로 마음을 담고 감사함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생하시는 걸 잘 알기에 멋진 선물을 드리고 싶기도 하지만, 아이에게도 선생님께도 가장 좋은 건 그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마음보다 큰 선물은 없을 테니까. 


태그:#스승의 날, #그림 편지, #아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