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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의해 피격된 직후의 모습. 이 사진은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였던 네이선 벤 기자가 연세대학교 정문 앞 굴다리 위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의해 피격된 직후의 모습. 이 사진은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였던 네이선 벤 기자가 연세대학교 정문 앞 굴다리 위에서 촬영한 것이다.
ⓒ 네이선 벤,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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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군사 독재에 맞서 직선제 쟁취를 위해 싸웠던 1987년의 6월항쟁은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서술돼 있을 만큼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당시 6월 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의해 이한열(당시 경영2) 열사가 사망함으로써 6월 항쟁은 더욱 격렬한 반독재투쟁이 됐고, 결국 전두환 정권의 직선제 수용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분열로 또다시 군부 출신의 노태우 정권이 탄생하고 이어 3당 합당으로 정국은 또다시 얼어붙었다. 이에 사회는 직선제 쟁취라는 승리의 기쁨보다 대선 패배의 슬픔이 현실을 압도하면서 이한열 열사에 대한 추모는 그저 몇몇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30년이 지나 6월 항쟁 30주년을 맞는 올해 이한열 열사가 피격된 바로 날을 얼마 앞두고 김학민(이한열기념사업회이사장), 우영옥(연세민주동문회 회장),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등 몇몇 동문들이 그동안 이한열 열사에 미안하리만큼 소규모로 치러졌던 행사를 이제는 연세대학교에서 학교 차원의 공식행사로 거행해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서명운동에 호흥하는 동문들의 뜻을 모아 학교 측에 전달하고 앞으로는 6월 9일의 기념식을 학교 차원에서 더욱 뜻깊게 거행해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매년 6.9 기념제를 추진해 온 김학민 이사장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이 단지 한 학교의 투쟁에 머물지 않았으며,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음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서명문 전문] 이한열 열사 '6.9 기념제'에 관한 연세 동문의 요구

이한열열사 '6.9기념제'를학교 공식행사로 치러줄 것을 요구합니다.

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벌써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당시 6월 9일 우리 교정에서 개최되었던 '연세인 결의대회'와 그 투쟁에서 불꽃처럼 산화한 이한열 열사의 숭고한 희생이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우리 연세인들도 6월항쟁에서 매우 빛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야권분열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우리는 승리의 기쁨보다 좌절이 앞섰으며, 이한열 열사의 희생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연세인들의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가 우리 사회는 물론 후배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6월항쟁을 기억하는 몇몇 연세인들이 '연세 6.9투쟁' 속에서 산화해 간 이한열 열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6.9 문화행사'를 조촐하게 진행해왔습니다. 이렇게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 곁에서 떠난 이한열 열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이에 비록 늦었지만 6월 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그와 함께 싸운 우리 연세인들의 자랑스런 6.9 투쟁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연세대학교는 향후 이한열 열사를 기념하는 '6.9기념제'를 학교 공식행사로 거행해주기를 요구합니다.

김학민(경제67, 이한열기념사업회이사장)
우영옥(사회80, 연세민주동문회회장)
박래군(국문81, 인권재단사람 상임이사)

2017년 5월 22일

☞ 서명하러 가기(클릭)


태그:#이한열, #연세민주동문회, #연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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