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학생들이 뽑은 알바 하고 싶은 브랜드는 어딜까'라는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남녀 대학생 1219명을 대상으로 '브랜드 알바 선호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에 'CGV(49.7%, 복수응답)'가 선정됐다. 하지만 CGV에서 일하는 '미소지기'들도 같은 생각일까.
지난 23일, CJ그룹은 '퇴근 이후나 주말 등 휴식 시간에 문자메시지·카카오톡 등으로 업무 지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캠페인 발표로부터 1주일 가량 지났지만, CJ그룹의 계열사인 CJ CGV에서는 그룹 차원의 캠페인 내용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2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17개 CGV지점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18명(평균 근속기간 8개월)을 대상으로 취재한 결과, '업무 시간 외 SNS 등을 이용한 업무 지시' 등의 행위가 지속되고 있었다. 하루 이틀 누적된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수시로 올라오는 공지사항, 퇴근 이후 확인해야 하는 미소지기
CGV에는 전국적으로 약 6000명의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미소지기'가 근무한다. 이들은 영화표 발권, 음식 판매, 영화관 청소 등 일선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한다.
CGV 미소지기는 출근 후 10분 정도의 조회에 참석하지만, 업무에 필요한 공지사항을 전달받고 숙지하기에는 꽤 짧은 시간이다. 바쁜 날에는 조회조차 참석하지 못하고 바로 근무에 투입되기 때문에 당일 업무사항을 숙지하지 못한 채 노동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CGV 관리자들은 업무 관련 공지사항을 싸이월드 같은 SNS에 올린다. 이 공지에는 미소지기 업무에 관련한 필수적인 내용이 담기게 된다. 결국, 미소지기는 근무 관련 숙지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SNS를 통해 개인적으로 공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근무시간과 사적시간의 구분이 좀 더 명확하면 좋겠다. 근무시간이 길어져도 근무 시간 내에 업무교육이 이뤄진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 CGV A지점 ㄴ 미소지기
하지만, 문제는 SNS에 공지사항이 수시로 올라온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영화관은 평일 평균 19시간, 주말 평균 21시간 동안 3교대 근무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별 직원과 선임 미소지기는 지시할 업무사항이 생길 때마다 게시판에 수시로 글을 올린다. CGV A지점의 SNS 게시판을 보면, 지난 3월 1일부터 5월 8일까지 2개월 동안 605개의 글이 올라왔다.
CGV가 미소지기에게 지급한 근무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때문에 어떤 물품도 소지할 수 없다. 설령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근무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부정으로 간주된다(부정 적발 시 경고 사유서를 써야 하며, 경고 사유서 2회 작성 시에는 퇴사 조처가 이뤄진다). 결국 미소지기는 근무시간 내에 공지를 확인할 수 없어, 근무시간 외에 공지글을 확인하고 업무를 숙지할 수밖에 없다.
"알바 노동자일 뿐인데, 온종일 CGV에 얽매인다." -CGV A지점 ㄱ미소지기"미소지기 스스로의 시간에 맞춰 일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스케줄에 맞춰 공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데 따로 시급이 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 항상 불만이다." -CGV C지점 ㄹ미소지기"(일부 직원들이) 근무시작 전에 공지사항을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도 한다." - CGV D지점 ㅁ미소지기 공지사항 미확인자는 실명 공개에 사유서 그리고 면담까지
CGV A지점 미소지기 중 공지사항이나 새로운 업무지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이가 있다면 다른 미소지기에게 눈총을 받기 일쑤다. 업무 관련 게시물을 확인하지 못한 미소지기를 취합해 실명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17개 지점 중 3개 지점은 게시판에 직접 공지글 미확인자 명단을 공개했다. 나머지 지점은 조회 시간 등에 실명을 거론하는 등의 방식을 취했다.
게시글에 지속적으로 댓글을 달지 않은 미소지기는 퇴근 이후에 사유서를 작성하고 직원과의 면담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와 같은 조처는 미소지기들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대놓고 면박을 주는 느낌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안 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면담이 이뤄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미소지기들 사이에서 소문이 도니까 힘들다." - CGV A지점 ㄱ미소지기"실명이 공개되는 건 강압적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CGV C지점 ㄹ미소지기"제가 다니는 CGV B지점은 댓글을 안 달 경우 페널티를 준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미소지기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모자, 카디건을 집에서 빨아오라는 지시가 나온 적도 있었다." - CGV B지점 ㄷ미소지기"면담은 미리 댓글로 일정을 신청 받고 진행했다. 퇴근 후 바로 진행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한정적이고 휴무에 와서 면담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 CGV E지점 ㅂ미소지기CJ CGV A지점 점장은 "이 건(업무시간 이외 공지사항 게재 및 미확인자 실명공개 등)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라면서 "본사에 문의하라, 더 이상은 답하지 않겠다"라고 반론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CGV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공지 등이 올라오는 SNS는 미소지기들의 자발적 커뮤니티"라면서 "미소지기들의 업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끔 하는 데 목적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명공개 및 면담·사유서 작성에 대해서는 일부 미소지기들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라며 "공지 확인 댓글을 달지 않은 것이 면담이나 사유서 작성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면담도 업무를 함에 있어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조언 차원의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노무법인 '필' 김재민 노무사는 "SNS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것을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업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법률적으로 봤을 때 업무인가 아닌가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하지만 공지사항을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을 실명 공개하는 것과 댓글을 달지 않았다고 해서 페널티가 부과되는 것 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퇴근 이후에 면담이 진행되는 것도 원칙적으로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업무 시간 외 이뤄지는 직무평가... CGV "개선해 나가겠다"
한편, CGV 미소지기들의 월말 직무평가와 미소지기 명찰을 취득하는 시험은 업무와 관련된 일임에도 퇴근 뒤에 진행된다. 직무교육이 법령에 따라 의무화돼 있거나, 직무와 관련이 있고 사업주에 의해 참여가 강제되는 등의 경우에는 근로시간으로 간주된다.
CGV 17개 지점 취재 결과 16개 지점이 퇴근 이후에 근로시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명찰시험, 직무평가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직무평가를 치르지 않으면 사유서 제출과 함께 직원 면담을 받게 된다. 시험을 치르더라도 점수가 낮은 노동자는 퇴근 시간 이후 개인적으로 사무실에 찾아가 직무평가 시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결국,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일을 하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직무평가를 받지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은 채 개인의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직무평가 이외에도 미소지기 평가와 명찰 시험은 필수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퇴근 후 개인 시간을 투자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직무평가든 명찰시험이든 신경 쓰는 게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다. (시험을) 안 보면 안 본다고 뭐라고 하니까 안 볼 수가 없다" CGV A지점 ㄱ미소지기CGV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이미 퇴근 후 직무평가 등과 관련한 지적을 충분히 반영, 공지를 통해 개선을 강구하고 있다"라면서 "일부 지점에서 관련 내용을 잘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퇴근 후 교육 등의 문제는 없어질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업무교육엔 열 올리지만 의무교육은 '거짓 처리' 하는 CGV
대조되는 점은 업무교육에 비해서 안전·보건 등에 관한 의무 교육은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7개 지점 취재 결과, 모두 의무 교육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관련 법조항을 살펴보자.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 (안전, 보건교육) : 사업주는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에 대하여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기적으로 안전, 보건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CGV는 업무와 관련된 사항들은 중요시 여겨 퇴근 이후에 참여를 강제하고 있지만, 의무적인 교육들은 진행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와 같은 교육들이 영화관을 찾는 수많은 관객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CGV A지점의 경우, 의무 교육은 진행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서명만 돌려 받았다. 기자가 취재한 17개 지점 중 모든 곳이 이와 같이 의무 교육을 형식적으로 했다고 '거짓 처리'했다.
"난 의무 교육을 몇 시간이나 받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CGV에서 1년 넘게 일하면서 의무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서비스교육만 받았을 뿐이다." - CGV B지점 ㄷ미소지기"관련 기관에서 나오면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교육은 진행되지 않고 사인만 한다." - CGV D지점 ㅁ미소지기김재민 노무사는 "퇴근 이후에 직무평가, 명찰시험이 진행되는 것과 의무교육이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서명만 이뤄진 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CGV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전사적으로 관련 교육 시행에 대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라면서 "연 1회 대피훈련은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다, 미소지기의 경우 조회시간 등을 통해서 관련 내용을 알리는 걸 '안전·보건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 않다'라고 오해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소지기들과 협력하면서 불편한 사항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귀담아듣겠다"라고 덧붙였다.